ADVERTISEMENT

코로나 폐해 이 정도였나...'이날치' 보컬도 통탄한 '서울대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동아리 양극화]①코로나에 손 든 동아리의 맏형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406호 마당패탈 동아리실 모습.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학생들이 쓴 문구가 적혀 있다. 이병준 기자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406호 마당패탈 동아리실 모습.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학생들이 쓴 문구가 적혀 있다. 이병준 기자

‘시간이 많이 흘렀네. 모두 잘 살아.’
서울대 관악캠퍼스 학생회관 406호 동아리방. 방 안의 화이트보드에 적힌 인사말은 수년 전 동아리 활동을 한 선배가 적은 것이라고 했다. 51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대 마당극 동아리 ‘마당패 탈’의 전통이 담긴 작별인사. 그런데 그게 현실이 됐다. 마당패 탈이 올해 문을 닫기 때문이다.

마당패 탈은 1971년 ‘민속가면극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서울 소재 대학 중 처음으로 출범한 전통 마당극 동아리다. 맏형 격인 동아리의 ‘충격적인’ 소식에 서울대 동문들도 놀라고 있다. 폐부 이유는 신입 부원이 없어서다. 올해 신입 부원은 0명이고 네 명 남은 부원은 모두 졸업과 취직을 앞두고 있다. 지난 2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발이 묶여 공연과 연습은 한 차례도 하지 못했다. 올해까지 4년째 동아리 회장직을 맡고 있는 15학번 설완석(26)씨는 “이 상태로 내가 졸업을 하면 (조건 미달로) 타의에 의해 동아리가 없어지겠다는 생각에 올해 초 자의로 폐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마당패 탈은 서울대 동아리연합회 비상대책위원회와 협의 하에 오는 9월까지 동아리방을 비울 예정이다.

6일 찾아간 마당패 탈 동아리방은 을씨년스러웠다. 왼편 악기 보관 선반 맨 위 칸에는 가죽피를 벗긴 장구통이 있었고, 그 아래로 북과 징, 꽹과리, 태평소, 단소 등이 놓여 있었고, 대본과 방명록, 공연 노트 등이 질서없는 책장을 채우고 있었다. 십수년 전 대본에 적힌 밑줄, 새까맣게 적힌 글씨만이 과거 어느 날 흥겨웠던 마당극의 한 장면을 증언하고 있었다.

문 닫은 51살 서울대 마당극 동아리

지난 6일 찾은 마당패탈 동아리실 모습. 빨간색 노끈으로 묶은 책들이 책장과 동아리실 바닥에 놓여 있다. 그 옆에 놓인 장에는 북과 징, 꽹과리, 태평소 등이 있다. 이병준 기자

지난 6일 찾은 마당패탈 동아리실 모습. 빨간색 노끈으로 묶은 책들이 책장과 동아리실 바닥에 놓여 있다. 그 옆에 놓인 장에는 북과 징, 꽹과리, 태평소 등이 있다. 이병준 기자

마당패 탈의 2016년 가을학기 공연 당시 모습. 사진 설완석 씨 제공

마당패 탈의 2016년 가을학기 공연 당시 모습. 사진 설완석 씨 제공

마당패 탈은 ‘범 내려온다’로 히트한 밴드 ‘이날치’의 보컬을 배출한 거로도 유명했다. 서울대 국악과 99학번 출신 보컬 안이호(42)씨는 폐부 소식에 “마지막까지 고생한 후배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대학 1학년 때 마당패 탈에 입부했다는 그는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 모두 많이 아쉬워했지만, 공통된 반응은 ‘오래도 버텼다’였다”고 말했다. 그가 학교 다닐 때에도 ‘졸업하면 곧 문을 닫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안씨는 “활동 특성상 많은 시간을 들여야 유지가 가능한데,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나 대학문화 자체도 많이 바뀌다 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까스로 버티다가 2년간 이어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안씨 소개로 마당패 탈에 들어왔다는 이날치 보컬 이나래(36·서울대 국악과 05학번)씨도 “10년 전부터 매년 새로 들어오는 부원이 참 귀했다. 공연을 하는데 대학원생, 휴학생, 졸업생이 악사를 맡아 공연을 돕는 게 보통이었으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마당패 탈 초대 회장 채희완(74)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명예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학 탈춤 연관 동아리가 130개가 넘었다”면서도 “그랬던 것이 90년대로 넘어와 숫자가 급감해 남아 있는 곳이 20개도 되지 않는다. 통탄해 마지않는 일”이라고 했다.

경희대 ‘청년’ 벽화 그린 동아리도 역사 속으로

사상 초유의 팬데믹에 ‘대학생활의 꽃’ 동아리 문화가 급격하게 시들고 있다. 경희대에선 1980년대에 문과대에 벽화 ‘청년’을 그린 동아리 ‘생활놀이미술공동체’가 지난해 폐부했다. 2020년까지만 해도 20여명에 달했던 부원은 코로나19에 따른 집합 제한으로 1년간 한 차례도 모이지 못했다. 벽화 그리기, 비누 만들기 등 기존 활동을 비대면으로 전환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마지막 회장을 맡았던 A씨(23)는 “코로나 영향이 컸다. 신입 부원들은 서로 본 적이 없고, 몇 명 남아 있는 회원들은 다 졸업반이었다. 이름만 있는 동아리였다”고 씁쓸해 했다.

20년 된 한양대-한양여대 연합 수화 동아리 ‘두리하나’도 대면 봉사가 불가능해지면서 지난해 문을 닫았다. 지난 2020년 회장을 맡았던 김모(22)씨는 “이전에는 소아 수업이나 봉사를 많이 갔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활동이 거의 막혔다. 사회 분위기가 ‘하면 안 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한양대 중앙 동아리 부원수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양대 중앙 동아리 부원수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3년 만에 부원 40% 안팎 감소

십수 년 전부터 전반적으로 내리막길을 걷던 동아리 활동은 코로나19로 크게 위축되는 형국이다. 한양대 동아리연합회에 따르면 2019년 1학기 1616명에 달했던 중앙동아리 전체 부원 수는 2022년 1학기 1064명으로 34.2% 감소했다. 특히 문화예술 부문 동아리의 타격이 컸다. 연합회가 공연예술 분과로 구분한 동아리의 부원 수는 같은 기간 342명에서 183명으로 46.5% 줄었다. 반면, 경영·프로그래밍 동아리가 있는 학술 분과는 부원 수가 감소하다가 지난해부터 증가세를 보였다. 작년 1학기(153명)보다 31.4% 는 201명의 부원이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부터 진행되던 대학 동아리 흥망의 양극화 현상이 코로나 기간을 거치면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나는 ‘양극화 시즌2’에 접어든 셈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가에 극단적 단절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아리 문화라는 비공식적인 지식·경험이 공유가 안 되고 있다”며 “사람들 간의 사회적 거리가 전반적으로 멀어졌고 인터넷으로 취향이 맞는 사람만 만나는 경우가 늘다 보니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대면 접촉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앙일보가 대학생 취업플랫폼 사람인과 함께 20·30대 회원 150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대학 교내 활동 경험을 경험하지 못한 응답자는 30.3%(456명)였고, 그중 52.6%가 ‘딱히 하고 싶은 활동이 없어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교내 활동 모임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교내 활동 모임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