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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증거 확보에도 멈칫한 수사기관…뒷북수사에 유족만 울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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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 달아난 이은해(31)씨와 조현수(30)씨가 4개월째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수사기관의 책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씨 등의 혐의점을 입증할 증거를 확보했는데도 신병확보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사망한 남편 윤모씨의 유족은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①“휴대전화 분실” 주장 검증 못 했다? 

'계곡살인사건' 용의자인 이은해(31)씨와 공범 조현수(30)씨에 대해 검찰이 지난달 30일 공개수배에 나섰다. 사진 인천지검

'계곡살인사건' 용의자인 이은해(31)씨와 공범 조현수(30)씨에 대해 검찰이 지난달 30일 공개수배에 나섰다. 사진 인천지검

유족 측은 처음 이 사건을 맡은 경기가평서 수사에서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고 했다. 경기 가평경찰서는 2019년 6월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윤씨가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5개월간 내사한 뒤 변사사건으로 처리했다. 당시 경찰은 윤씨의 휴대전화를 받아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했지만, 계곡에 있었던 이씨 등의 휴대전화는 조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유족의 의혹 제기에 따라 경찰은 이씨에게 휴대전화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윤씨의) 장례를 치러야 해 통화할 곳이 많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이씨는 1주일 뒤에도 “가방과 함께 휴대전화를 통째로 분실했다”며 응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특별히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로 영장을 신청해 휴대전화를 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당시 가평서는 사건이 벌어진 용소계곡에서 이씨 등이 물놀이를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과 사진도 확보했지만, 특별히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판단하고 그해 11월 사건을 종결했다. 경찰 관계자는 “5개월간 최대한 수사를 했고 타살 정황이 발견되지 않아 변사 처리한 것”이라고 했다.

②살인미수 정황 추가 파악

2020년 재수사에 착수한 경기일산서부서 수사에서도 의문점이 제기된다. 당시 일산서부서는 이씨 등을 살인과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일산서부서는 가평 사건 현장에 있던 인물들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 중 일부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봤다고 한다. 이 시기 보험회사는 이씨가 청구한 윤씨의 생명 보험금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험사기를 의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이씨 등이 윤씨를 고의로 살해했다고 볼만한 정황을 파악하고 살인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강원 양양의 펜션(2019년 2월)과 경기도 용인의 낚시터(2019년 5월)에서의 살인 미수 혐의도 수사범위에 포함했다고 한다. 다만 해당 혐의를 적용하진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이 보험사기로 접수돼 이 부분을 위주로 들여다봤다”며 “다른 부분도 조사는 했다”고 말했다. 보험사기로 접수된 사건이라 그 부분에 집중해 수사했다는 취지다. 이 관계자는 “이씨 등이 변호사를 선임한 점, 수차례 조사 때마다 연락이 된 점, 출석요구를 할 때마다 응한 점, 사건이 벌어진 지 시간이 꽤 흐른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설명했다.

③구체적인 살인미수 정황 확인

일각에서는 현재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인천지검에도 의문 섞인 눈길을 보낸다. 검찰은 지난해 2월부터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방문해 3차례 현장 검증을 진행했다. 관련자 30여명을 불러 조사하고 이씨 등의 주거지를 압수수색 했다.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급받아 이들의 계좌를 추적하고 통화내용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검찰 관계자는 “재수사란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다시 훑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씨 등의 주변 인물들로부터 사건과 관련한 결정적 자료들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씨 등의 주거지를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대포폰 여러 개와 텔레그램 대화 등 추가 증거를 찾아냈다고 한다. 살인미수 혐의를 입증할만한 자료를 확보했고 지난달 30일 지명수배를 하면서 해당 혐의를 공개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를 통해 어느 정도 혐의가 입증된다고 보고 2차례의 살인 미수 혐의를 추가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구체적인 혐의를 파악했는데도 신병확보가 늦은 건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이씨 등이 살인이란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는 상황이었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었는데 이를 뒤집을만한 유의미한 증거를 포착했다면 조사 당일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들의 소재가 명확한 점 등을 토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씨 등을 제때 검거하지 못한 상태에서 뒤늦게 경찰에 공조 요청을 한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편 숨진 윤씨의 매형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초기 수사기관이 제대로 나서지 않아 직접 발로 뛰면서 자료를 수집했다”며 “아내(윤씨의 누나)는 동생의 억울한 죽음으로 아직도 마음 아파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제대로 대응했으면 이씨 등을 놓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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