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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투자병원 내국인 진료 가능해졌다...정부 “다른 지역 확대 안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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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모습. 최충일 기자

2019년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모습. 최충일 기자

국내 1호 영리병원, 즉 투자개방형병원(이하 투자병원)인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내국인 진료가 가능해졌다. 제주지법 행정1부(김정숙 수석부장판사)는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이하 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해 5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지난 1월 대법원은 녹지병원에 대한 제주도의 개설 허가 취소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녹지병원이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데 장애가 사라지면서 병원 문을 열면 내국인ㆍ외국인 구분 없이 환자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만약 녹지제주가 병원 문을 열게 되면 김대중 정부가 2002년 인천 송도 등 경제자유구역 내에 투자개방형병원을 허용한 이후 20년 만이다. 그동안 규제의 벽에 막히면서 녹지병원 측이 다 지은 병원 건물과 부지를 제 3자에게 매각한 상태라 당장 문을 여는 건 불가능하다. 녹지 측이 "내국인 진료만 허용하면 언제든지 병원을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밝혀온 점에 비춰 재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녹지 측이 잇따라 승소하면서 국제 소송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날 판결 소식이 알려지자 의료 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이날 “정부는 법에 따라 2015년 투자병원 사업계획을 승인한 것이고, 병원 운영과 관련한 세부 사항은 제주도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는 이어 “제주특별법에 녹지병원의 설립 승인을 내줬을 뿐이다. 앞으로 제주 외 다른 지역에 투자병원 형태의 의료기관을 확대할 계획이 전혀 없다”라고 못박았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17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설 허가 취소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17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설 허가 취소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녹지병원은 출자총액 778억원 47병상의 소규모 의료기관이었다. 피부미용·성형시술을 목적으로 설립했는데, 이를 두고 그동안 과도한 우려가 집중돼 왔다. 의료 민영화로 이어지면서 한국 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그것이다. 하지만 '의료 민영화'의 개념이 모호하다. 일각에서는 미국처럼 민간보험회사가 운영하는 민영의료보험 형태로 건강보험 체계가 바뀌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 이로 인해 의료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라는 괴담이 횡행했다.
 하지만 한국 의료체계의 근간은 건강보험이고, 보험료로 운영하는 공보험 체계가 바뀔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한국에서 의료업을 하려면 반드시 건강보험 환자를 받아야 한다(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성형·미용·모발이식 같은 질병치료와 무관한 행위는 비급여(건보 미적용)로 하게 돼 있다. 녹지병원이 내국인 환자에게 성형·미용 치료를 하게 되더라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건보 재정을 축낼 이유가 없다.
 녹지병원은 '복지부(사업계획 승인)-제주도(의료기관 개설허가)'의 2단계 규제를 받았다. 복지부는 2015년 12월 녹지병원 설립을 승인했다. 당시 복지부는 “투자병원 사업계획서를 검토한 결과 출자 총액 전액(778억원)을 모기업인 녹지그룹이 조달하고, 응급의료체계를 갖추는 등 법령상 요건을 충족했다”며 승인했다. 하지만 제주도 허가 과정에서 걸렸다. 부담을 느낀 원희룡 제주지사가 2018년 12월 '내국인 진료 제한'을 조건으로 개설을 허가했다. 그러자 녹지 측이 반발해 개원을 미룬 채 소송을 제기했다. 시간이 지체되면서 제주도가 개설 허가 석달 이내 개원하지 않은 점을 들어 2019년 4월 허가를 취소해 버렸다. 이후 지리한 소송전이 이어졌다.
 국내 대형병원과 종합병원은 학교법인·사회복지법인·의료법인 소속의 비영리기관이 대부분이다. 수익을 내더라도 병원 밖으로 가져갈 수 없고,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없다. 다만 동네의원과 개인병원은 그렇지 않고 영리기관처럼 운영된다. 투자병원은 일반 기업처럼 투자를 받을 수 있고, 운영 수익금을 배당할 수 있어 '주식회사형 병원'으로 불린다.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 무상의료 원조국가인 영국에서도 허용된다.
 하지만 보건의료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이번 판결은 기존의 의료법을 뒤집고 영리병원을 합법화하는 초석이 될 수 있다"라며 "영리병원의 도입은 대형 자본 투자로 이어지고 결국 의료는 이윤 창출의 도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있는 한 녹지병원 하나가 생긴다 해서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료민영화 우려에 대해 “우리나라 의료의 공공성이 워낙 취약하다보니 조금이라도 영리적이고 상업적인 걸 허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라며 “의료산업이 발전하려면 역설적으로 공공의료를 더 강화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녹지병원이) 건보 적용이 안 되니까 환자들이 몰리지 않을 터라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우리나라에서 건보를 당연 적용받지 않는 병원이 생긴다는 점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민영화 논쟁이 일어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고, 시민단체 등에선 충분히 우려할 만한 상황일 수 있다고 본다”며 “실리가 없는 법원의 판결이 나와 논쟁의 여지를 남겼다”라고 지적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녹지병원은 피부 미용ㆍ성형 진료를 주로 하는 소규모 병원이다. 전국에 성형외과·피부과가 수만개인데, 내국인이 굳이 제주까지 가서 진료 받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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