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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태환의 반박불가

러시아 편드는 당신, 일본 제국주의자 논리와 같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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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회사원 신태환씨. SNS에 꾸준히 국제관계·외교 관련 깊이 있는 글을 써서 ‘아마추어 전문가’로 통합니다. 그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해 쓴 글 두 편을 묶어 소개합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한·일 관계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또 러시아가 소련으로 회귀한 게 아니라 1930년대 독일과 같은 나라가 됐다고 주장합니다. 본인 뜻에 따라 소속 회사와 얼굴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연합]

〈러시아 정당성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교수 등 러시아 편을 드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한 번 생각해 보라. 중국이 만약 한국에 600년 동안 중화 질서에서 잘살았고 열심히 조공 바치던 모범국이었으니 마땅히 중화 세계에 들어와야지, 라고 말하면 거기에 수긍할 한국 사람이 어디 있겠나?

물론 중국도 한미동맹의 존재를 잘 알고 있어 저런 무지막지한 요구를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미동맹이 갖는 중요성을 잘 인식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크라이나가 원했던 건 바로 저런 확실한 보장을 제공해주는 ‘동맹’이었다. 폴란드나 체코는 소련이 무너지자 광속으로 서방에 붙었는데, 우크라이나는 타이밍을 놓쳤다.

아무튼 우크라이나는 싫다고 하는데 러시아는 계속 마땅히 ‘루스키 미르’(러시아 언어·문화를 공유하는 세계)에 들어와야 한다고 하니 짜증 나고 무서운 거다. 그래서 우크라이나는 1990년대부터 나토에 가입하고자 했다. 러시아가 방해할수록 우크라이나인들의 집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생각해 보라. 19세기 일본은 줄곧 조선의 독립과 주권을 위해 중국·러시아에 맞선다고 선전했다. 일본이 조선을 먹어치우겠다고 내세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본은 조선의 부정부패를 지적하면서, 조선은 자치능력이 없다고 했다. 조선이 허약하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먹어치울 우려가 있으니 너그러운 일본이 조선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일본은 1. 조선인들에게 조선의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근대적 정치를 선물하겠다고 선전했고(우크라이나의 탈(脫)나치화) 2. 일본인들에게는 대동아의 위업을 완수하고 있다고 선전했으며(루스키 미르의 숙원) 3. 서양인들에게는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어쩔 수 없는 자위권 발동이라고 선전했다(나토 확장에 맞선 자위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하는 말과 똑같다.

일부 인사들은 맨날 ‘친일파 척결’을 외치면서 왜 19세기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나?

1940년 10월 프랑스 앙다예(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 지역)역 플랫폼 열병식. 나치 독일의 히틀러(왼쪽)와 스페인의 프랑코가 독일 의장대에 파시스트식 답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40년 10월 프랑스 앙다예(2차 대전 당시 독일 점령 지역)역 플랫폼 열병식. 나치 독일의 히틀러(왼쪽)와 스페인의 프랑코가 독일 의장대에 파시스트식 답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러시아는 1930년대 나치즘 독일과 유사〉
일각에서 푸틴의 러시아를 ‘소련으로의 회귀’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완전히 잘못된 진단이라고 본다. 푸틴의 러시아와 소련은 전혀 다르다. 소련은 스탈린 집권기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되던 나라였으며, 공산주의라는 보편적 이념을 적용하려 했던 나라였다. 공산주의는 민족주의와 종교를 배격하며, 계급 타파를 모토로 삼았다.

푸틴의 러시아는 다르다. 푸틴이라는 개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 소련보다도 제도화의 정도가 낮으며, 민족주의와 종교를 도구로 활용한다. 특히 러시아 정교회는 국가의 전폭적 후원을 받아 과거 제정 러시아의 교회와 같은 위세를 자랑하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푸틴은 소련의 붕괴가 “20세기의 가장 거대한 지정학적 비극”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소련의 힘과 영향력을 그리워한 발언일 뿐 소련의 국가 제도나 이념을 그리워해서 나온 말이 아니다. 푸틴은 오히려 볼셰비키(레닌 중심의 소련 공산당)를 피해 유럽으로 망명한 극우 사상가 이반 일린(Ivan Ilyin)과 이념적으로 가깝다.

사실 푸틴은 소련, 정확히 말하면 볼셰비키를 혐오한다. 그는 지난해 볼셰비키가 러시아를 희생양 삼아 “인위적 실험을 한 결과 인위적 나라들(우크라이나 등)”이 탄생했다고 비난했다.

푸틴 시대에 제작된 사극들을 보면 레닌이나 볼셰비키 계열 트로츠키는 악당처럼 묘사되고 오히려 백군(볼셰비키에 대적한 반 혁명군)이 보다 자비롭고 인간적인 사람들로 그려진다. 러시아를 영광스러운 시대로 이끌었던 예카테리나 대제에 대한 블록버스터 사극도 푸틴 집권기에 제작됐다. 참고로 크림반도를 처음 러시아 땅으로 만든 장본인이 예카테리나 대제다.

그리고 푸틴은 광신적인 민족주의를 앞세우고 러시아가 겪은 온갖 수모를 서방 탓이라고 비난한다. 소련처럼 스스로 인류의 미래를 선도하겠다는 야심 따위는 없고, 자민족 우선주의에 입각한 기회주의적 권모술수밖에 없다. 푸틴 치하의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세계혁명''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같은 슬로건은 없다. 오직 “러시아 민족이 겪은 치욕”이나 “러시아 민족이 쟁취해야 하는 위대함”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러시아는 1930년대 독일과 가장 유사하다. 실제로 학계 일각에서 바이마르 현상(바이마르 공화국, 1918~33년 히틀러 나치 정권 수립 전 대통령이 매우 강력한 권한을 가졌던 독일 공화국)이라고 한 건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