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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는 제안한다

12,13세도 형사처벌엔 찬성…하지만 그게 다여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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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의 한 장. 문구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 그래픽=김은교 기자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의 한 장. 문구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 그래픽=김은교 기자

“부모가 노력하지 않으면 자식은 달라지지 않아.”
최근에 본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김혜수 분)가 한 말이다. 소년범을 수사하는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여청과)에서 근무하다 보니 절로 무릎을 탁 칠 정도로 이 발언에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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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 경찰청 본청 근무 때만 해도 달랐다. 부산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이나 인천 초등생 납치살인 사건 등 강력 소년범 사건을 겪으면서 14세 미만은 어떤 죄를 저질러도 최장 2년 소년원 생활에 처하는 소년법은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년범 강력범죄는 나날이 증가하는데 강간을 해도, 사람을 죽여도 고작 ‘소년원 2년형’이라는 현실이 단단히 잘못됐다고 여겼다.

제대로 된 어른 하나 없다니 

그런 내가 막상 일선 경찰서 여청과에서 소년 사건을 직접 마주했을 때 느낀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안타까움’이었다. 이 아이 옆에 제대로 된 어른이 단 한 명만 있었더라면 경찰서를 들락거릴 일은 없었을 거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언론보도와 달리, 12~13세 무렵에 경찰서까지 오는 소년은 그리 많지 않다. 기껏 해봐야 무인점포 아이스크림을 훔치거나 자전거를 훔쳐 타고 버리는 수준이다. 그마저도 대개는 부모가 사과하고 변제하면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해 사건이 일단락된다.

그런데 촉법소년(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처벌 대상 소년)이 저지르는 ‘강력사건’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상당수는 어른이 한 짓 못지않게 잔인하다. 수법도 대담하다.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놀이터로 불러내 유사 강간을 하거나, 알코올 중독 아버지를 마구 때리고, ‘조건 만남’ 남성을 집단 구타하고 협박해 돈을 뺏고, 무인모텔에서 술 마시고 기물을 파손한 후 도리어 업주에게 "우리는 촉법소년이니 어디 한번 신고해 보라"고 했던 사건의 가해자 모두 촉법소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서운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처벌은 소년원 생활 2년이다. 아이들 스스로 소년법 적용을 받는 촉법소년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반성은커녕 때로는 피해자와 수사기관을 조롱하기도 한다. 법이 이러니 어쩔 수 없겠지만 처분을 내리는 판사조차 이 시간이 아이를 교화하고 교정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하는지 늘 의문이다.

처분 결과 통보도 못 받는 피해자 

이쯤에서 촉법소년 범죄 피해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가족)는 잔인한 범죄의 가해자가 고작 10대 초반이라는 점에 한 번 놀라고, 최대 소년원 2년이라는 처벌 수위에 다시 놀라며, 피해자를 배제한 채 진행하는 소년부 재판에 마침내 좌절한다. 보호 처분을 심리하는 소년부 재판은 비공개가 원칙이라 피해자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피해자는 재판 날짜를 알 수도 없고, 처분 결과에 대한 통지조차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피해자만이 아니다. 담당 조사관도 처분 결과를 모른다. 소년범 특성상 사는 곳과 범죄를 저지른 곳이 가깝고, 드러나지 않은 공범이 있을 확률이 커 피해자가 느끼는 불안이 엄청난데도 일부 성폭력 범죄를 제외하고는 가해자의 접근 금지를 명할 법적 근거도 없다. 피해자가 오히려 도망치듯 서둘러 이사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유상범 대통령직 인수위 사법행정분과 위원이 지난달 29일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포함한 사법정책 방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뉴스1]

유상범 대통령직 인수위 사법행정분과 위원이 지난달 29일 촉법소년 연령 하향을 포함한 사법정책 방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뉴스1]

지난달 29일 법무부가 형사미성년자 및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만 14세 미만에서 만 12세 미만으로 낮추도록 소년법을 개정하겠다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공약이었고, 공감하는 여론도 높은 만큼 법률 개정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학령기 인구가 꾸준히 주는데도 불구하고 촉법소년 범죄 수는 오히려 늘어난 현실을 반영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12세 이상 14세 미만 소년범들은 2년의 소년원 생활보다 무거운 처벌을 받고 사회와의 격리 기간도 늘어나기에 그 기간 동안만이라도 범죄를 저지르지 못해 자연스럽게 재범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처벌받지 않는다는 안도감에 빠져 수사기관과 피해자를 조롱하는 일도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촉법소년 기준 연령 하향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면 나는 ‘절대 찬성’이 아닌 ‘조건부 찬성’이라고 답하겠다. 처벌만으로 교화할 수 없지만, 처벌 없이 제대로 교화할 수 없다고 믿어서다. 살짝 질문을 바꿔, 소년범 재범을 낮추기 위해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을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교정 시스템 개선’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처분을 받고 왔을 때 맞닥뜨린 환경이 범죄를 처음 저질렀을 때와 똑같은 환경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소년범 재범은 왜 높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소년원이든 교도소든, 2년이든 20년이든, 적어도 그 공간 그 기간에서만큼은 소년범에 대한 제대로 된 교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한 수용실에 10명 이상의 소년이 범죄의 경중과 관계없이, 때론 공범과 뒤섞여 생활하면 오히려 서로의 범죄를 학습하거나 새 범죄를 모의해 출소 직후 함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만 커진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소년범의 재범률은 지난 10년간(2010~2019년) 35.1%에서 40%로 증가했고, 촉법소년과 이들에 의한 강력범죄 역시 증가 추세다. 이런 추이가 계속되면 '소년원이 소년범을 양산한다'는 오명을 쉽사리 벗지 못한다. 교정시설 과밀 수용 문제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아이가 차분히 책상에 앉아 자신의 범죄를 반성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 편지는 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둘째, 가정법원 또는 소년부 판사의 처분에 재량도 늘려야 한다. 차후에 만 11세 범죄가 증가한다고 또다시 법을 고쳐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더 낮추는 작업을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에 대한 대안은 처분 다양화다. 현행 소년법상 보호처분 중 가장 가벼운 감호위탁은 아이를 다시 범죄를 저질렀던 그 환경, 그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병행처분을 감안하더라도, 전체 처분 중 60%를 차지한다. 가장 엄한 10호 처분은 최대 소년원 2년 송치다. 처분이 가볍든 무겁든 아이에 대한 벌만 있고, 보호·감독의 의무를 내팽개친 부모에 대한 조처는 없다. 소년법 개정을 통해 보호처분 기간을 늘리고, 담당 판사에 재량으로 언제든 사회로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부모 교육 시스템도 꼭 갖춰야 한다.

'소넌범 대부'로 불리는 천종호 부장판사. 현재 대구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다. [중앙포토]

'소넌범 대부'로 불리는 천종호 부장판사. 현재 대구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다. [중앙포토]

사법형 그룹홈(대안 가정)은 좋은 제도다. 사법형 그룹홈은 일반 가정집처럼 거실과 방으로 꾸며진 곳에서 시설 관계자가 부모를 대신해 10명 이내 소수의 소년범을 데리고 살면서 사회 적응을 돕는다. '소년범 대부'로 불리는 천종호 판사 주도로 만들어진 이 제도는 2010년부터 부산ㆍ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때 전국에 최대 20개까지 운영됐다. 아이들은 회복센터의 보호 아래 정상적인 가정으로부터 제공 받았을 규칙적인 운동, 교과목 수업, 영화, 독서 감상을 하고 나아가 직업 또는 재활 교육도 받는다. 센터장을 비롯한 운영진의 헌신과 희생, 정부의 예산 지원을 토대로 실제로 이곳을 거친 소년범의 재범률이 18.5%까지 떨어진 사례도 있으니 고무적이다. 그런데 더 늘어도 모자랄 이 제도가 운용상 어려움 때문에 벌써 몇 개의 시설이 문을 닫았다니 안타깝다.

드라마 ‘소년심판’의 대사를 "사회가 노력하지 않으면 소년범은 달라지지 않아"로 바꿔보면 어떨까. 부디 다음 정부의 대책은 70년 가까이 된 낡은 법을 뜯어고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교정 시스템을 전면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김대근의 인정불가]청소년 범죄 정말 심각해졌나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과 가벼운 처벌의 문제를 지적하는 현직 경찰관 김영인 경정의 칼럼과 함께 읽으면 좋을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의 글이 있습니다. 그는 청소년 범죄가 과연 늘었는가, 흉폭해졌는가, 범죄의 저연령화가 이뤄졌는가를 묻습니다. 통계를 제시하면서 그렇게 볼 근거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의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