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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에 위임장 1000여장 날렸다…CEO 떨게 한 개미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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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 본사 전경.

엔씨소프트 본사 전경.

#1. 지난달 30일 열린 엔씨소프트 정기주주총회(주총)에선 주주들의 '쓴소리'가 쏟아졌다. 한 주주는 김택진 대표를 향해 "게이머가 아이템을 산 돈으로 야구 선수 연봉을 100억원, 200억원씩 쓰면서 회사의 영업비용이 커지고 있다"며 "야구단 운영을 지속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이에 김 대표는 "야구단 운영이 엔씨의 기업 이미지를 새로 만들고 지탄받는 게임에 관한 인식을 제고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전날 열린 HDC현대산업개발 주총에서는 한 주주가 "붕괴 사고 손실 추정액은 적절히 추계가 된 것이냐"며 "내부 징계가 적절히 이뤄졌는지도 보고해달라"고 요구했다.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HDC현대산업개발 제4기 주주총회에 주주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HDC현대산업개발 제4기 주주총회에 주주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2. 지난달 16일 삼성전자 주총에서 한종희 부회장은 갤럭시S22 성능 강제 저하 논란에 대한 주주의 질문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고객 여러분의 마음을 처음부터 헤아리지 못한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단상 앞으로 나와 주주들에게 허리를 숙였다. 25일 열린 셀트리온 주총에선 서정진 명예회장이 전화 연결로 '깜짝 등장'했다. 서 명예회장은 "기업가치가 저평가돼 본의 아니게 상처를 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주주에게 사과했다.

기업들, 목소리 커진 주주 달래기

올해 주총의 달라진 풍경들이다.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경영진이 '주주 달래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에는 정보력을 가진 소액주주들이 많은 데다 주주연대나 시민단체 등과 연계한 집단 소송 등의 가능성도 커져 기업 입장에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SM엔터테인먼트 주총에선 위임장 1000여 장이 도착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그 결과 주주 측은 SM 창사 이래 첫 배당을 끌어낸 것은 물론 주주 측이 제안한 후보를 감사로 선임하는 데 성공했다.

24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사옥에서 열린 주총에서 인공지능 서비스 로봇 ‘달이’가 주주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24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사옥에서 열린 주총에서 인공지능 서비스 로봇 ‘달이’가 주주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올해 주총에선 로봇 등 미래 먹거리가 중요 어젠다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주총에서 로봇과 메타버스를 미래 사업으로 낙점했다. LG전자도 주총에서 의료기기 제작·판매업, 블록체인 등을 신규 사업으로 추가하는 정관 변경을 승인했다. 현대차는 주총에 서비스 로봇 '달이'를 등장시켜 로봇 사업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달이는 현대차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서비스 로봇으로 얼굴 인식, 자연어 대화 기술, 자율이동 기술을 탑재했다.

3월에만 여성 사외이사 58명 선임 

지난해에 이어 환경·사회적가치·지배구조(ESG) 관련 이슈도 주총의 '단골 메뉴'로 부상했다. SK텔레콤은 지난달 25일 열린 주총에서 'SKT ESG 2.0' 경영 계획을 발표했다. 이 회사는 KT·LG유플러스와 함께 ESG 기술을 보유한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펀드(400억원 규모)를 조성했다.

여성 사외이사 선임도 확산하는 추세다. 8월부터 시행되는 새 자본시장법은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사의 이사회를 특정 성(性)이 독식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에 나섰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3월 정기주총에서 선임된 신규 사내이사 96명과 신규 사외이사 151명 중 여성은 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58명이다. 특히 현대중공업지주(HD현대)와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중후장대 기업들이 올해 주총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롯데지주·㈜GS 등 지주사도 최초로 여성 사외이사를 뽑았다.

김윤정 이베스트 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업 입장에선 글로벌 투자 유치와 기업 이미지 제고라는 측면뿐 아니라 새 자본시장법 도입과 K-ESG 가이드라인 등 대외적인 환경으로 인해 ESG 경영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16일 오전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삼성전자 정기주총. [공동취재단]

지난달 16일 오전 경기도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삼성전자 정기주총. [공동취재단]

오너가 3세 경영 승계 본격화    

올해 주총에선 3세 경영 승계 작업을 본격화하려는 움직임도 많았다. ㈜한화는 주총에서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을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자 현대가 3세인 정기선 HD현대 사장도 HD현대·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에 올랐다. 효성그룹 오너가 3세인 조현준 회장과 동생인 조현상 부회장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효성티앤씨와 효성첨단소재 사내이사에 각각 선임됐다. SK네트웍스도 주총을 통해 그룹 3세인 최성환 사업총괄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최 총괄은 최신원 전 회장의 장남이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조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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