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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하다, 거대한 톱니바퀴 현대사회····독일 거장 거스키의 국내 최초 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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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Amazon), 2016, © 안드레아스 거스키 , [사진 스푸르스 마거스 ]

아마존( Amazon), 2016, © 안드레아스 거스키 , [사진 스푸르스 마거스 ]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 Chicago Board of Trade III ), 2009, ©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 스푸르스 마거스]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 ( Chicago Board of Trade III ), 2009, ©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 스푸르스 마거스]

 크루즈( Kreuzfahrt), 2020, ©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 스푸르스 마거스]

크루즈( Kreuzfahrt), 2020, ©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 스푸르스 마거스]

가지가 앙상한 나무와 잡초만 보이는 겨울 강가, 거대한 화면 속에 보이는 사람들이 마치 깨알 같다. 그런데 모두 밖에 나와 있지만, 얼음을 지치며 즐겁게 노는 풍경이라 하기엔 여기저기 흩어져 각자 따로인 사람들 모습에 기쁨은 없어 보인다. 얼음 위에 간격을 두고 서 있는 모습이 '따로 또 같이'다. 독일 출신의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67)의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2021), 차갑고 건조한 이 화면에 코로나 시대의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녹아 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31일 개막 #총 40점, 신작 2점 최초 공개 #"시대정신과 통찰 담은 걸작"

스펙터클한 화면에 인류와 문명에 대한 통찰을 담아온 현대사진의 거장 거스키의 개인전이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31일 개막한다. 국내 최초의 거스키 개인전이다. '파리 몽파르나스'(1993), '99센트'( 99 Cent)'(1999, 리마스터 2009) 등의 대표작을 포함해 1980년대 중반 초기작부터 올해 제작된 신작까지 총 40점을 선보인다. 세로 2m, 가로 4~5m에 달하는 대형 작품이 즐비한 전시에 '얼음 위를 걷는 사람'와 '스트레이프'(2022)' 등 신작 두 점은 세계 최초 공개다.

거스키는 1990년대 중반부터 기하학적 수평과 수직적 요소를 강조하는 독특한 화면으로 현대성의 단면을 표현해왔다. 획일화된 아파트 입면, 현기증 날 정도로 상품이 빼곡하게 진열된 할인점 진열장, 정형화된 사무 공간 등 현대사회의 풍경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초반엔 아날로그 카메라로 작업했으나 1990년대 초중반부터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촬영 후 이미지를 다듬고 조합하는 '후작업'으로 사진의 틀을 넓히는 실험을 지속해왔다.

거스키의 작품은 현실을 닮았지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과 장면을 보여준다. 눈앞의 사물이나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이미지를 재구성함으로써 작가로서 자신의 영역을 '이미지 촬영'에서 '이미지 제작'으로 전환했다. 우혜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부관장은 "거스키는 공장이나 아파트와 같이 현대 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를 포착해 거대한 사회 속 개인의 존재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며 "이번 회고전을 통해 현대 사진 예술에 큰 족적을 남긴 거스키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한 장 50억원 기록 

 라인강 III ( Rhein III ) 2018, ©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 스푸르스 마거스 ]

라인강 III ( Rhein III ) 2018, ©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 스푸르스 마거스 ]

이번 전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거스키의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äufer). 2021, ©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 푸르스 마거스]

이번 전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거스키의 신작. 얼음 위를 걷는 사람 (Eisläufer). 2021, © 안드레아스 거스키 [사진 푸르스 마거스]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선 그의 1999년 작 '라인강 II (Rhein II)'가 433만 달러(약 50억)원에 낙찰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사람과 건물이 없는 독일 뒤셀도르프 외곽의 라인강을 몇 개의 수평 선으로 담아낸 것으로, 당시 사진 작품으로는 세계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번 전시에선 '라인강 II' 대신 이 작품의 연장선에 있는 2018년작 '라인강 III'를 볼 수 있다. '라인강 II'와 배경과 구성은 거의 같지만, 분위기는 천국과 지옥처럼 극과 극이다. 초록의 생기 있는 분위기는 '라인강 III'에서 잿빛의 황량한 풍경으로 바뀌어 있다. 우 부관장은 "두 사진은 같은 계절(여름)에 같은 배경과 구성으로 촬영된 것"이라며 "그러나 2018년 가뭄으로 강 수위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고 동식물이 살기에 가혹한 환경이 된 사실을 반영했다. 디스토피아적인 장면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최근 논의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평양 VI ( Pyongyang VI ), 2017(200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평양 VI ( Pyongyang VI ), 2017(2007),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안드레아스 거스키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안드레아스 거스키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가장 중요한 대표작 중 하나는 초대형 화면에 격자형 아파트의 획일적인 입면을 담아낸 1993년 작 '파리 몽파르나스'다. 작가가 '디지털 후작업'을 통해 이미지를 제작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발표한 것으로 거스키는 이 사진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꽉 짜인 인공 구조물을 직시한 장면으로 시대의 감성과 정신을 날카롭게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현대문명

거스키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시카고 선물거래소 III'(2009)와 '아마존'(2016)다. 특히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위치한 아마존 물류센터를 촬영한 '아마존'은 압도적인 스케일과 디테일이 특징이다. 현실에선 한눈에 다 잡히지 않는 거대한 매장의 상품을 모두 각각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디테일로 담아냈다. 각각의 진열 선반을 따로 찍은 후 디지털로 합성한 이 작품은 소비 지상주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걸작으로 꼽힌다.

거스키는 1955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나 뒤셀도르프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사진관을 크게 운영해 어릴 때부터 카메라 장비에 둘러싸여 자랐고, 1980년 뒤셀도르프 미술아카데미에서 '유형학적 사진의 선구자'라 불리는 베른트· 힐라 베허 부부로부터 배웠다. 현재 '베허학파'라 불리는 거장 작가들인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러프, 칸디다 회퍼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초기엔 깨알처럼 작은 인간들이 등장하는 산, 캠핑장, 수영장 등을 컬러 파노라마로 찍었던 거스키는 후에 ‘디지털 후작업’으로 추상 회화와 같은 실험적 작품을 선보여왔다. 200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이어진 순회전을 열었으며 퐁피두 센터(2002), 시카고 현대미술관(2002),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2003), 헤이워드 갤러리(2018)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우 부관장은 "이 전시를 위해 거스키가 2018년 한국을 방문한 것을 비롯해 총 3번을 한국을 찾았을 정도로 3년간 공을 들였다"며 "거스키의 전시가 현대문명과 거대한 톱니바퀴 같은 현대사회 속 개인의 삶을 돌아보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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