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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주진우 "블랙리스트, 죄 안되려면 다 안되고 되면 다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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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3년 전에 수사했던 주진우 전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는 최근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산업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만 규명되면 처벌이 어렵지 않은 사건”이라고 말했다. 주 전 부장검사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이던 2019년 4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을 기소했다.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25일 산자부를 압수수색 하면서 김 전 장관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을 수사 재개의 이유로 언급했다.

3년 만의 검찰 수사와 관련한 중앙일보의 통화 요청에 주 전 부장검사는 법리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죄가 안 되려면 다 같이 안 되고, 되려면 둘 다 돼야 하지 않나”고 반문했다. 그는 자신이 수사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유죄 확정판결에 대해서는 “불공정의 원인이 된 낙하산 인사에 대해 형사법적인 규정이 이뤄졌으니 이젠 공정한 인사시스템이 확립되길 바란다”는 소회를 밝혔다. “박근혜 정부 때의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의혹도 결국 유사한 구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 전 부장검사는 환경부 수사 당시 청와대를 두 번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이후 좌천성으로 평가받는 인사 발령이 나자 검찰을 떠났다. 현재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인선 작업과 관련한 검증 업무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1월 대전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1월 대전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주진우 “한날한시에 사표, 정상적 장면 아냐”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정권 교체기의 관행이 된 ‘코드 인사’ 강행을 사법당국이 불법으로 규정한 대표 사례 중 하나다. 김은경 전 장관은 환경부 공무원에게 지시해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했다는 등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업무방해)로 기소됐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가 2017년 9월 임기가 남은 산하 기관장들을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로 불러 사표 제출을 요구했다는 게 골자다. 이에 대해 주 전 부장검사는 “각 회사 사정이 다르고 잔여 임기도 다른데 한날한시에 호텔로 불러 사표를 받는 것 자체가 정상적 장면이 아니다”며 “일괄적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표를 받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9년 2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및 상임위간사단 연석회의'를 국회에서 열고 있다. 변선구 기자

지난 2019년 2월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및 상임위간사단 연석회의'를 국회에서 열고 있다. 변선구 기자

법원, “계획적이고 대대적인 사표 징구”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이 사건과 같이 계획적이고 대대적인 사표 징구(徵求·내놓으라고 요구함) 관행은 찾아볼 수 없다”며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2심에선 ‘일부 임원의 임기가 이미 만료된 상태였다’는 이유로 일부 무죄 판단이 나와 김 전 장관의 형량이 징역 2년으로 줄었고, 이 판결이 지난 1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3년 전 동부지검 수사팀은 환경부 관련 수사를 마무리한 뒤 산업부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이어나가려 했고 일부 참고인 조사가 진행된 것으로 파악됐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2019년 3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우상조 기자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2019년 3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우상조 기자

“산업부 의혹, 문체부·환경부 사건과 유사”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문체부 1급 공무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한 혐의를 받았던 사건이다. 대법원은 지난 2020년 1월 일부 혐의에 대해 재심리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으나 김 전 실장 등이 공무원에게 사직을 요구한 행위는 유죄로 판단했다.

주 전 부장검사는 “산업부가 발전소 사장들을 불러서 사표를 받는 장면은 과거 문체부 공무원들에게, 환경부가 산하 기관장들에게 사표 받은 장면과 유사하다”고 했다. 반면, 여권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에 블랙리스트는 없다”거나 “블랙리스트가 아닌 체크리스트”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10월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공동취재단]

주 전 부장검사는 대법원 판결을 보고 검찰이 강제수사에 나섰다는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한 사건을 기소한 뒤 판결이 나올 때까지 관련 사건 수사를 멈추고 기다리면 어떻게 시의적절한 수사와 처벌이 가능하겠느냐”며 “법리 검토 때문에 수사가 늦어졌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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