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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현의 퍼스펙티브

"용산 이전 탁월하고 매력적...굳이 이번 봄일 필요는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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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어떻게 봐야 할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고, 앞마당을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조감도를 놓고 직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윤 당선인.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고, 앞마당을 시민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조감도를 놓고 직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윤 당선인. [뉴스1]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나른한 봄날이었나보다. 병아리떼 봄나들이에 좋은 날이었고 학생들은 소풍길에 나섰다. 그날 저녁 병아리색 민방위복의 대통령이 TV에 등장해 심드렁하게 물었다. 구명조끼 입었다는 학생들을 그렇게 발견하기 힘들더냐고. 대한민국의 허울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그 국가의 작동원리는 각자도생이더라는 게 드러났다. 대한민국은 쪼개져 나갔고 조각들은 무저갱(無底坑)으로 침몰했다. 청와대가 어떤 곳인지도 드러났다. 청와대는 과연 구중심처다. 청와대 이전 당위론이 더욱 확실히 떠올랐다.

조선시대 후반 1780년대가 되면서 독특한 문건이 하나 작성되는데, 그건 지도였다. 등고선으로 이루어진 추상적 도상법 이전 시대에 산과 물길을 보이는대로 그렸으되 전대미문의 정확도를 갖춘 도성도다. 남북이 뒤집힌 배향이 이 지도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단서다. 이건 어람용(御覽用) 지도였다. 창덕궁에서 남쪽을 보고 앉은 임금이 펴놓고 도성을 파악했던 것이다. 정조는 유독 궐 밖 행차도 많은 임금이었다. 그리고 무취불귀(無醉不歸), 취하지 않으면 집에 못 간다. 이건 정조가 신하들을 잡아놓던 구실이었다. 백성과 도성에 대한 호기심은 결국 지도를 통해 표현되어 남았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임금들은 구중궁궐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후의 도성도는 그냥 원본을 베껴 그린 것들만 몇 종류 전해진다. 조선은 침몰해갔다.

도시 일상과의 단절, 경내에서의 대통령 고립 해소가 관건
외국군 주둔지 주변의 기형·왜곡 개발의 역설 … 부지 보존돼
건강한 소통 이뤄지는 공간 되려면 숙고와 창의의 시간 필요
국민 자부심과 민주주의 작동 방식, 공간과 건축으로 구현해야

청와대의 문제는 풍수 아닌 단절

우리 시대로 오자. 청와대 이전론의 가장 유서 깊은 근거는 풍수지리다. 근대사를 돌아보니 역대 대통령의 후사가 흉사로 얼룩져 있으매 그건 다 청와대의 지기(地氣) 탓이라는 설명이다. 북악풍수 길흉론은 이 시대에도 배회하는 고려말 신돈의 존재 증언이겠다. 이에 비해 역사학자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에서 내내 이어가는 설명의 요체는 간명하다. 문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음택길지에서 발생하고 흥기하는 것이 아니다. 문명의 성공 요인은 금계포란형의 지세가 아니라 불굴의 응전 정신이다. 대통령의 말로가 흉흉한 것은 자연적 산세·물길·풍광이 아니라 정치적 대립·불신·보복 때문이다. 기말고사 낙제의 원인은 교실 좌향이 아니라 수험생의 노력 부족이다. 땅의 형세는 정치적 운명을 규정하지 않는다.

청와대의 문제는 풍수가 아니라 단절이다. 지적되던 문제는 두 종류였는데 하나는 도시 일상과의 단절, 다른 하나는 경내 대통령 집무실의 고립이었다. 그래서 청와대 광화문 이주 공약이 등장하곤 했다. 문제는 대통령 집무실이 갑남을녀 내방하는 백화점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느 국가에서나 국가원수 집무실은 첩첩한 기밀과 경호로 작동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지금 광화문이라 통칭되는 공간이 지닌 지고의 가치는 개방이다. 국가의 상징이면서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여 대한민국의 의미를 공간으로 표현하는 열린 거리여야 한다. 광화문의 청와대 이전은 국민에게 다가가는 게 아니라 민폐를 끼치는 일이다. 광화문은 굳이 대통령 집무실이 비집고 들어갈 곳이 아니더라, 그래서 그 공약들은 하릴없이 포기되었다.

청와대 경내 집무실 위치가 결국 대통령을 보좌진으로부터 고립시킨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래서 지금 대통령은 아예 보따리를 싸서 보좌관 집무공간으로 이주했다. 분명 적극적인 노력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한민국보다 미국 대통령 집무실 풍경이 국민들에게 자세히 알려져 있다는 이상한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대통령 집무실의 인터넷 이미지 검색으로 표현되는 미국이 일상이라면 대한민국은 연출과 이벤트다.

외국군대 주둔 공간 돌려받는 의미 배가돼

새로운 선거에서 새로운 후보자가 해묵은 청와대 이전 공약을 내걸고 당선이 되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푸는 방법의 하나는 문제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이 문제의 화두는 기어코 광화문 어딘가로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단절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런 공간을 찾으면 되는 것이었으니 결론을 먼저 짚으면 용산은 탁월하고 매력적인 대안이다. 용산이라는 대안으로 대통령 당선인은 현 대통령과의 선명한 차별화에 성공했다. 그것은 광화문만을 외통수 대안으로 전제하고 있던 사고에 대한 통렬한 반박이기도 하다.

용산의 이 지역이 지닌 가치는 도시적 맥락에서의 유연하고도 충분한 가능성이다. 청와대와 달리 적당히 도시와 붙어있고 적당히 떨어져 있으며 광화문과 달리 적당히 개발되어있고 또 적당히 덜 개발되어있는 곳이다. 100년 넘는 이국군의 주둔으로 주변 도시 공간을 기형적으로 왜곡하면서까지 도시화 이면에서 보존되어왔다는 초현실적 역설 덕분이다. 그곳 인근의 대통령 집무실 배치는 공간을 돌려받는다는 담담한 사실을 넘는 2차 광복 선언문 낭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공간이 인식을 지배한다. 건축학 교과서의 문구고, 대통령 당선인의 인용이다. 공간이 중요한 것은 그 배치방식이 우리의 관계를 정의하고 소통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식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고 관계라는 점에서 풍수와 의미가 다르다. 그런데 그 혁신적 제안의 실천방안부터는 건축적 상식과 많이 다르다.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대통령 집무실을 개보수하고 입주하는 일정이라니.

건축적 상식은 이렇다. 입주하려면 공사를 마쳐야 한다. 공사를 하려면 설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설계를 하려면 뭐가 필요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확인하고 검토하는 기획작업이 또 선행되어야 한다. 대통령 당선인이 들고나온 잔디밭 덮인 조감도는 설계도가 아니고 서둘러 그린 설명용 예시도다. 문제는 조감도만으로도 건물이 구현되리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조감도는 이해를 도울 뿐 실천을 담보하지 않는다.

집무실 이전 비용 추정 논란과 이전 과정의 안보 공백 시비는 기획부재의 직설적 표현이다. 기획이 없다는 것은 이후 단계를 순차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단 하나의 방법이 있으니 그건 날림공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 사업의 결과는 실패거나 시행착오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거듭, 공간이 인식을 지배한다는 데 동의한다면 그 공간의 생산과 조직 방식에 신중해야 한다. 다시 문제를 정의하거니와 지금 화두는 청와대 탈출이 아니고 대통령의 건강한 소통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공간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계약기간 5년의 월세 사무실 공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이라면 그 결과물이 대한민국의 꿈과 야심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은 건축으로 표현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며 이를 이뤄낸 국민의 자부심이 되어야 한다.

위계·상명하복의 국방부 청사 … 개보수 필요

그러나 지금 입주 대상으로 점지되었다는 국방부 청사는 무심한 콘크리트 덩어리다. 국방부라는 독특한 가치에 맞게 절대위계와 상명하복의 작동원리를 담고 있음이 확연한 건물이다. 그러기에 지난 세기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충실한 소비에트 블록 관청사라고 하면 믿어질 모습이다. 그 건물에 서둘러 입주한다는 것은 국민에게 한발 접근하기에 앞서 국민 자존심 훼손에 가깝다.

잔디밭 개방이 집무실 이전의 목적일 수는 없다. 민주주의를 미국에서 수입했다고 해서 대통령 집무실까지 모방할 필요도 없겠다. 21세기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백악관도, 국방부도 아닌 새로운 공간을 요구하고 거기 담아야 한다. 그것은 분명 훨씬 비위계적이고 탈중심적이고 불특정적인 공간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고 이를 공간으로 구현해낸 것이 기와집 풍경보다, 르네상스 양식보다, 전체주의 청사보다 더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그것은 기존 건물의 철거는 아니되 신축에 가까운 개보수를 요구할 것이다. 거기 숙고와 창의의 시간은 필요하다.

국민이 기대하는 대통령은 목욕탕에서 만난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지만, 옆집 아저씨처럼 하루 앞만 내다보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다음 대통령들의 인식도 규정하는 문제다. 중요한 것은 임기를 어디서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마쳤느냐는 것이겠다. 대한민국의 모든 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지지세력, 소속정당과 무관하게 모두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그게 자랑스런 우리의 대한민국이다. 대통령이 봄나들이의 시민들에게 먼발치에서라도 손이라도 흔들어주면 감동은 충분할 것이다. 용산에 꽃피면 그런 풍경도 좋을 것이다. 다만 그게 굳이 이번 봄일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은 그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므로.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