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종남의 퍼스펙티브

진정한 자식사랑은 노후 독립, 돈과 배움 둘 다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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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00세 시대’ 어떻게 대비할까

퍼스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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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 필자는 통계청장으로 부임해서 어린 시절 성대하게 치르던 환갑잔치가 시들해진 점에 주목했다. 생명표를 살펴보고 1960년 52.4세이던 평균 수명이 2000년엔 75.9세로, 40년 사이에 무려 23.5세가 늘어난 사실을 알게 됐다. 대부분 70세까지는 살게 된 마당에 환갑잔치를 거창하게 치를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평균 수명이 1년에 반 살 정도씩 늘어난다면 2000년에 48세이던 필자는 90세까지 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를 토대로 ‘21세기 삶의 공식: 30+30+30’이라는 것을 만들어 보았다. 예전에는 부모 보호 아래 30년 살다가, 부모 노릇 하며 30년을 살고, 환갑 이후는 자투리 인생, 즉 여생(餘生)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환갑 후 30년을 더 살 수도 있겠다고 본 것이다.

자식 보험 기대 말고 젊을 때 돈 벌고 불리는 데 신경써야
음주·흡연부터 중단하고 규칙적인 운동으로 성인병 예방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 감사하고 배려하는 마음 필수
새 정부는 조기 연금개혁으로 고령층 생활 안정시켜야

새 천년을 맞은 지 불과 20년이 지났을 뿐인데 과학계와 미래학자들은 ‘100세 시대’, 심지어 ‘120세 시대’의 개막을 예고한다. 벌써 21세기 삶의 공식을 ‘30+30+40’으로 바꿔야 할 때가 된 듯하다.

장수는 우리 모두의 소망이었다. 막상 장수 시대가 되니 장수가 축복이 아닌 재앙일 수도 있다는 걱정이 다가온다. 환갑 때 노후 대비가 안 돼 있다면 장수는 재앙이라는 점에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미리미리 노후 준비를 해두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

고령층 절반 이상 연금 못 받아

장수 시대 준비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의 실상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는 정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것으로 해외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우선 정치적으로는 1987년 헌법 개정을 통해 5년 단임 대통령제를 확립하고 그해 12월 제13대 대통령 선거부터 지난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평화적 정권 교체의 전통을 확립했다.

경제 발전 또한 경이로웠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첫해인 1962년 100달러 미만이던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3년 407달러가 되며 세계은행이 정한 ‘1인당 국민소득 하루 1달러’ 빈곤선을 돌파했다. 이어서 1977년에 1000달러, 1994년에 1만 달러, 2006년에 2만 달러, 2017년에 3만 달러가 됐다. 한마디로 삼시 세끼를 걱정하던 나라가 다이어트를 생각하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그림자도 있다. 무엇보다 자살률이 세계 1위다.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연간 자살률은 25명에서 30명 사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1명의 2배가 넘는다. 과거 나라 발전의 주역이었던 고령층의 자살률은 무려 53명으로 OECD 평균 18명의 3배에 가깝다. 더구나 자살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이 가장 많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경제 발전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통계청이 55세에서 79세까지의 1476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 고령층의 경제 사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월급 생활자들이 회사를 떠나는 연령은 평균 49.3세다. 그 가운데 48.4%만 연금을 받고 51.6%는 아예 못 받고 있다. 연금을 받더라도 월평균 64만원에 불과하다.

환갑 이후 아쉬운 소리 말아야

자식 보험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자식에게 노후를 기대기도 어렵다. 저출산 여파로 자식이 하나나 둘 뿐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누구나 90세나 100세까지 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설령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자동차보험에 가입하듯 100세 이전에 사망하더라도 일단 100세 시대에 대비하는 편이 낫다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가 문제다. 첫째,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부지런히 돈을 모아서 환갑 이후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할 정도는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돈 버는 일과 불리는 일 양쪽 다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제는 자식 보험이 유효하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식에게 ‘올인’할 것이 아니라 절반 정도는 노후를 위해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진정한 자식 사랑은 노후에 자식에게 부담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마다 입장이 다른 만큼 각자 처한 상황에 맞추어 준비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둘째, 기대수명 못지않게 건강수명이 중요함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지식·돈·명예·권력도 건강이 뒷받침될 때 그 가치가 빛난다.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근력을 유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암이나 고혈압 등으로 인한 고통도 크지만, 근육 감소로 인한 일상생활의 불편함 또한 문제다. 음주·흡연 등 잘못된 생활습관을 바로 잡아 성인병을 예방할 일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명심하고 하루하루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나누고 베풀어야 행복해져

셋째, 행복을 추구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말했듯이 사람은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고 나면 물질적인 풍요만으로 행복을 느끼기는 어렵다. 행복이란 자기가 바라는 바를 얼마나 이루었는가에 따라 그 수준이 정해진다. 그러므로 바라는 바를 낮추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남과 나누고 배려하는 삶이 진정 행복에 이르는 방법이 아니겠는가?

끝으로 배우는 기쁨 또한 중요하다. 급변하는 세상에 배우지 않고서는 쫓아가기도 힘들거니와 설사 생활에 꼭 도움이 안 된다 해도 배움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100세 시대 준비는 언제부터 시작해야 하나? 언제 시작해도 너무 빠르지도 늦지도 않다. 남은 삶에서는 오늘이 가장 빠른 순간이다. 부담되는 노인이 아니라 도움 주는 어른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미래를 설계하고 실천에 옮겨야 할 일이다.

앞서 노후 대비는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5월 10일 출범하는 새 정부에게 머지않아 고갈 위기에 처한 국민연금을 대선 공약대로 출범 초기에 제대로 개혁함으로써 고령층의 생활 안정에 도움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분수 지키기와 주제 파악하기

‘백세 쇼크’라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행복한 노후를 방해하는 3대 요소로 빈곤·질병·고독감을 든 바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빈곤 문제는 젊었을 때부터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은퇴 후에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현역 시절 벌어들이는 소득으로 종잣돈을 만들어 슬기롭게 불려서 노후에 대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은 흔히 소득 격차와 빈부 격차를 혼동하곤 한다. 소득은 일정 기간 벌어들이는 수입이고 부(富)는 어느 시점에 내가 소유한 재산이다. 여기서는 소득 격차가 아닌 빈부 격차 문제를 말하고자 한다. 똑같이 사회에 나와 매월 비슷한 소득을 올리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들이 어떻게 소득을 불리느냐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둘 사이에 빈부 격차가 생길 것이다. 종잣돈에 융자를 보태서 자기 집을 마련한 사람과 계속 전셋집에 사는 사람 사이에 시간이 흐른 후 벌어진 빈부 격차를 보면 더욱 극명해진다.

필자는 강연 때면 우스갯소리 삼아 산수 시간에 배운 ‘분수’와 국어 시간에 배운 ‘주제 파악’을 ‘노후 대비 실천 방안’으로 말하곤 한다. 먼저 ‘분수 지키기’다. 부를 축적하려면 소득 범위 내에서 지출하고 나머지를 저축해야 한다. 이때 지출이 소득보다 많은 ‘가분수’가 되면 부채가 늘게 된다. 요즘의 가계 부채 문제도 이러한 지출 행태에서 나온 결과다. 다음은 ‘주제 파악’이다. 자신의 소득이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소비 행태를 따라서 돈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올바른 소비 생활이 아니다. 목돈을 어느 정도 모을 때까지는 저축해서 종잣돈을 만드는 습관이 필요하다.

종잣돈을 불려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여기에는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자기에게 적합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전문성이 없이 남들 따라 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를 가끔 본다. 누구에게나 통하는 묘책은 없지만, ‘복리 개념’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재산은 처음에 불리기가 어렵지, 시간이 가면 원금에 이자가 붙고 이자에도 다시 이자가 붙는 식으로 불어나 가속이 붙는다. 이것이 ‘복리의 마법’이다. ‘분수 지키기’와 ‘주제 파악’이야말로 노후 자금 마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오종남 서울대 과학기술최고과정 명예주임교수, 전 IMF 상임이사, 리셋 코리아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