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양성희의 퍼스펙티브

'득템'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MZ세대 오픈런의 속내

중앙일보

입력 2022.03.31 00:35

업데이트 2022.03.31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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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그들은 왜 오픈런을 할까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번에는 33만원짜리 시계다. 지난 26일 스와치가 오메가와 협업한 시계 ‘문스와치’를 내놓자 전 세계 매장에 인파가 몰렸다. 이른 아침부터 매장 앞에 수십, 수백 명이 줄지어 대기하는 ‘오픈런’이 벌어졌다. 서울, 뉴욕, 도쿄, 런던, 홍콩, 제네바, 밀라노 등 전 세계가 다 비슷했다. 고객들이 몸싸움을 벌여 판매가 중단되거나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얼핏 보면 900만원짜리 오메가 명품시계 ‘문워치’와 비슷하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30일 리세일(중고) 플랫폼에는 문스와치 시계가 145만~290만원대에 올라왔다.

지난달 가수 박재범이 선보인 ‘원소주’ 출시 때도 오픈런이 벌어졌다. 젊은 소비자들이 매장 앞에 1000명 넘게 줄지어 섰다. 소주 치고는 비싸지만(1만4900원) 출시 일주일 만에 2만 병이 완판됐다. 고가품만 오픈런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 동네 편의점에서는 1500원짜리 포켓몬빵 오픈런이 한창이다. 포켓몬 캐릭터 스티커(띠부띠부씰) 15종이 무작위로 들어있어 원하는 캐릭터가 나올 때까지 사고 또 산다. 16년 만에 재출시돼 스티커 모으기 추억을 떠올리는 2030들이 열광한다. 품절 대란이라 입고 시간에 맞춰 대기 줄이 생긴다. 희귀 스티커들은 중고 사이트에서 4~5만원대에 거래된다. 포켓몬빵은 출시 한 달 만에 700만 개나 팔렸다.

시계·소주·빵 등 ‘새벽줄서기’ 열풍
돈 있어도 살 수 없는 물품 구매전

“물건이 나를 선택하는 시대” 역설
물질주의·소비만능의 그늘 보여줘

SNS에 올리고, 되팔아 돈도 벌고 …
MZ세대의 새로운 소비문화 주목

오픈런, 어디까지 해봤니…

지난 26일 서울 명동 스와치 매장 앞에서 오메가와 협업한 시계 ‘문스와치’를 사기 위해 줄지어 선 사람들. [뉴스1]

지난 26일 서울 명동 스와치 매장 앞에서 오메가와 협업한 시계 ‘문스와치’를 사기 위해 줄지어 선 사람들. [뉴스1]

“새벽 6시 45~50분부터 모바일 앱 접속을 준비하라. 스마트폰을 여러 대 사용할 수 있으면 2~3분 간격을 두고 차례대로 접속하라. 접속 대기 인원이 7만 명이면 20여 분, 4~5만 명이면 10분 조금 넘게 대기할 생각을 해야 한다. 7시 이전에  접속이 될 것 같으면 과감하게 ‘새로고침’해서 뒤로 빠져나왔다가 7시를 기다려라. 입력 취소가 될 수도 있으니 휴대폰을 절대로 흔들거나 건드리지 말고 바닥에 두고 대기하라.”

맘카페에서 회자한다는 스타벅스 굿즈 얻기 노하우다. (『트렌드 코리아 2022』) 일종의 ‘온라인 오픈런’이다. 유명 아이돌 콘서트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을 방불케 한다. 한정판 스타벅스 굿즈를 살 수 있는 자격(일정 횟수의 프리퀀시·적립 쿠폰)을 얻기 위해 음료수 수십 잔을 마시지 않고 버렸다는 일화마저 나돌았다.

오픈런의 원조는 ‘스타워즈’ 시리즈나 ‘해리포터’, 혹은 애플의 열혈팬들이 새 영화 개봉이나 소설, 신제품 발매일에 줄 서서 기다리는 팬 문화다. 샤넬 등 명품 오픈런, 명품과 협업하거나 리미티드 에디션 운동화 같은 한정판 오픈런을 거쳐 최근에는 ‘인기 있는, 희소성 있는, 수집벽을 자극하는, 되팔아 돈이 되는’ 아이템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물건뿐만 아니다. 유명 맛집 등 핫플레이스에서 대기를 타다 입장하는, 경험의 오픈런도 있다. 줄서기 대행 알바도 생겼다. 밤새며 대신 자리를 맡아주기도 하고, 아예 1등 자리를 판매하기도 한다.

오픈런 하는 트렌디한 나를 소셜미디어(SNS)에 인증하는 것은 기본이다. 미래보다 현재에 투자하며 과소비를 즐기는 ‘플렉스’문화, 평소에는 가성비를 따지다가도 마음에 드는 제품에는 거침없이 돈을 지르는 ‘앰비슈머(양면적 소비자·ambisumer, ambiguous+consumer)’의 탄생, 리셀(되팔기·resell) 마켓의 등장, 제한된 물량으로 고객의 갈망을 자극하는 ‘헝거(hunger) 마케팅’ 등이 결합한 새로운 소비문화다. 비싸게 되팔 수 있어 소비 아닌 투자, 재테크 성격도 있다. 오픈런이 기회의 평등에 민감한 2030에 잘 맞는다는 해석도 있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누구나 기회를 가질 수 있어 공평하다는 인식이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해 말 우리의 오픈런 현상을 조명하며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고기나 화장지를 사재기하는 대신 새벽 5시부터 백화점 앞에 줄 서서 9500달러 가방을 사는 관습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그 배경으로 ‘코로나 보복소비’와 함께 “집값 급등으로 집을 살 수 없다는 상실감에 빠진 2030이 현재를 즐기는 소비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실감 큰 2030의 보복소비

지난달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 출시일에도 서울 여의도의 임시 매장에 1000여 명이 몰렸다. [연합뉴스]

지난달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 출시일에도 서울 여의도의 임시 매장에 1000여 명이 몰렸다. [연합뉴스]

오픈런은 물질주의의 극대화, 속물사회의 한 상징이다. 사치의 대중화로 그저 비싼 명품만으로는 ‘차별화’ ‘구별 짓기’가 안되는 시대의 표상이기도 하다. 단지 값비싼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는 ‘희귀템’을 손에 넣는 ‘득템력’으로 나를 증명하는 시대, 득템력이 새로운 경제력이라는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등이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22』에 따르면 “득템력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단지 구하기 어려운 한정상품이 늘었다는 사실을 넘어, 상품의 희소성 개념이 바뀌는 새로운 시장의 탄생을 의미한다.”

매장 입장 고객 수 자체를 제한하는 샤넬 같은 명품 매장은 아무 때나 내가 원한다고 들어갈 수 없고, 돈이 있다고 상품을 살 수도 없다. 오픈런 끝에 입장해도, 입고되는 모델과 물량이 일정하지 않아 원하는 백을 사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기 모델을 사려면 수차례 오픈런을 하거나, 리셀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얹어 줘야 한다. 아니면 입장한 김에 매장에 있는 것 중에 하나 고르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이쯤 되면 내가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물건이 나에게 살 기회를 허락하는 형국이다. 상품과 소비자간 관계 뒤집기다. 비쌀수록 대중의 갈망은 더 커져, 샤넬은 지난 1년 새 6차례나 백 가격을 인상했다. 대표 모델인 클래식 플랩백(미디엄)은 2019년 715만원에서 1180만원으로 60% 가까이 올랐다. ‘샤넬은 오늘이 제일 싸다’ ‘샤테크(샤넬+재테크)’ ‘내가 샤넬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샤넬이 나를 선택해줘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샤넬 오픈런의 중심에는 명품시장의 새로운 큰손으로 꼽히는 MZ세대가 있다. 백화점 매출에서 2030의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고, 이들 덕에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국내 백화점이 11곳이었다. 역대 최다다. MZ세대가 명품 주 구매층이 된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는 명품 구매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있으며, 2025년에 명품을 사는 10명 중 7명은 40세 이하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은 지난 2003년, 수억 원 연봉에도 돈에 쪼들리는 젊은이들을 가리켜 ‘헨리(HENRY·High Earner Not Rich Yet)’라고 불렀다. 목돈을 모으기보다 소득의 대부분을 높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데 쓰는 MZ세대의 초상이 겹쳐진다.

소비평론 인플루언서들의 탄생

오픈런은 SNS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인스타그램에 업데이트되는 핫 아이템들을 보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는 날로 심해진다. 반면 오픈런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 포켓몬빵을 찾아다니는 과정을 애니메이션 속 인물들이 포켓몬을 사냥하러 다니듯 즐기고, SNS에 올리는 식이다.

2030 인플루언서들을 분석한 책 『구독 좋아요 알림설정까지』에 의하면 유명 인플루언서들은 세 가지 유형이다. 물질적인 부를 과시하는 ‘물질파’, 육체적 매력을 과시하는 ‘육체파’, 지식과 정보·인사이트 등 지적인 면을 과시하는 ‘정신파’다. 책에 따르면 오픈런을 하는 물질파들의 “자랑 콘텐트에는 우호적인 댓글이 많았다.”

반면 정교한 가품을 진품인 양 소개하는 유튜버들은 반감을 샀다. “가짜뉴스와 비슷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명품 라이프를 중계하며 MZ세대의 아이콘으로 추앙받다가 올 초 ‘가품 논란’으로 일시에 추락한 스타 유튜버 ‘프리지아’가 떠오른다. ‘영 앤 리치’의 상징이다가 일부 짝퉁 의상과 백을 착용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거센 비판을 받고 활동을 중단했다. 당시 명품 커뮤니티들이 나서서 가품 여부를 판정했었다. 부는 과시해도 좋지만 가짜로 속이는 반칙은 용납할 수 없다는 건데, 대중이 ‘진품 감정단’을 자처하며 진짜를 알아보는 감식안을 과시하는 심리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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