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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윤석열-시진핑 통화는 뭘 말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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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5일 첫 전화 통화를 가졌다. 시진핑 주석이 윤 당선인에게 ‘당선 축하’ 축전을 보낸 지 2주 만의 일이다. 인사성 전화라 덕담이 오갔다. 그러나 윤 당선인 측과 중국이 각기 발표한 통화 내용을 보면 비록 정제된 언어로 포장돼 있긴 하지만 양측의 미묘한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 서로 강조점이 다르다. 향후 5년의 한중 관계가 과연 탈 없이 안전 운행할 수 있을지 긴장감마저 느껴진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5일 첫 전화 통화를 가졌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25일 첫 전화 통화를 가졌다. [연합뉴스]

시 주석이 윤 당선인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 뭘까.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발표 내용을 토대로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인사로 당선에 대한 축하의 뜻을 재차 표했다. 두 번째는 한중 관계인데 앞으로 양국 관계를 어떻게 이끌고 갔으면 좋겠다는 시 주석의 의미심장한 바람이 담겼다. 핵심적인 말은 “올해가 중한 수교 30주년으로 쌍방은 이를 계기로 상호존중을 견지하고 정치신뢰를 강화하며 민간우호를 증진해 중한 관계를 안정되게 오래 가도록 하자”는 것이다.
시 주석은 한중 간 상호존중과 정치신뢰, 민간우호 세 가지를 강조했다. 바꿔 말하면 이 세 가지가 현재 불안하다는 이야기다. 중국이 말하는 상호존중은 무얼 뜻하나. 한국의 대선 결과가 나온 뒤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지난 11일자 사설에서 밝힌 내용에 힌트가 있다.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문재인 정부의 ‘3불 입장’이 “상호존중을 실천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3불 입장은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사드 추가 배치, 미사일방어(MD) 구축, 한미일 군사협력’ 등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을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뉴시스]

그렇다면 사드를 추가 배치하는 건 상호존중의 자세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는 윤 당선인의 “사드 추가 배치” 공약과 정면 충돌한다.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또 “서로의 핵심이익과 중대한 우려를 존중하는 건 건전한 양국 관계의 근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사실 중국은 미국을 상대로 ‘상호존중’이라는 말을 쓴다. 중국이 미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할 테니 미국도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해달라고 한다. 그런 관계를 중국은 미국과의 ‘신형(新型) 대국관계’라고 말한다.
상호존중이라는 말에는 이처럼 핵심이익 존중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다.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이 말을 쓰는 건 한국에 배치된 사드가 중국의 핵심이익을 해친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중국은 “사드는 한국의 방어 수요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데 여기서 중국에 묻고 싶은 게 있다. 사드 배치를 촉발한 북핵에 대해서 중국이 제대로 역할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 “북핵을 키운 절반의 책임은 중국에 있다”는 말이 있다. 중국이 언제나 북한에 뒷문을 열어줘 북핵 억제를 위한 국제사회의 제재와 같은 노력을 반감시켰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한중 간 상호존중 견지와 정치신뢰 강화 등을 강조했다. [신화=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한중 간 상호존중 견지와 정치신뢰 강화 등을 강조했다. [신화=뉴시스]

아무튼 시 주석은 윤 당선인과의 첫 통화인 점 등을 감안해 민감한 용어인 ‘사드’를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상호존중’이라는 말을 통해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이어지는 ‘정치신뢰 강화’도 같은 맥락을 가진다. 양국 간 정치신뢰가 부족하기에 이를 강화하자는 것인데 이 또한 사드와 관련이 깊다. 추궈훙(邱國洪) 전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1월의 한 한중 세미나에서 사드 갈등의 최대 원인으로 “양국 간 정치신뢰 부족”을 꼽은 바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한중은 2016년 7월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경색된 관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문재인 정부의 3불 입장 표명 이후 한중 관계가 개선된 것처럼 말하지만, 과연 실제가 그런가. 문재인 대통령이 두 번이나 중국을 방문하고 수행 기자가 폭행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음에도 시진핑 주석의 답방은 아직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 주석이 상호존중과 정치신뢰에 이어 언급하는 ‘민간우호’가 왜 금이 갔나. 이 또한 중국이 사드 보복 차원에서 한한령(限韓令)과 금한령(禁韓令)을 내린 결과가 아닌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의 공약인 “사드 추가 배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장하는 “상호존중 견지”와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의 공약인 “사드 추가 배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장하는 “상호존중 견지”와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인수위공동취재단]

이처럼 이번 통화에서 사드 관련 언급은 없었지만, 사드 문제가 계속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윤 당선인 측이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으로 내건 상황임을 고려하면 땀이 다 난다. 시 주석은 통화에서 상호존중과 정치신뢰, 민간우호의 세 축을 통해 양국 관계를 “안정되게 오래 가도록(行穩致遠)” 하자고 했다. 이 표현은 지난 11일의 축전 때도 나왔다. “수교의 초심(初心)을 견지하며 중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안정되게 오래 가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한중 관계와 관련해 처음 등장한 문구다.
한중 관계와 관련한 시 주석의 말을 종합하면 결국 상호존중과 정치신뢰, 민간우호가 이뤄지지 않으면 양국 관계는 불안하고 멀리 가지 못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그리고 이 모든 배후엔 사드 문제가 도사려 있고, 이 사드 문제와 뗄 수 없는 미국과의 문제가 통화의 세 번째 주요 내용이다. 시 주석은 복잡한 국제 정세를 언급하면서 공급망 문제에서의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또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거버넌스 시스템의 중요성을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협력을 강조해 미국 견제의 뜻을 나타냈다. [AFP,, 로이터=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협력을 강조해 미국 견제의 뜻을 나타냈다. [AFP,, 로이터=연합뉴스]

모두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건 천하가 아는 바다. 또 미국의 중국 견제 조치가 내려질 때마다 중국은 미국의 일방주의라며 세계 문제는 유엔을 중심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 주석이 윤 당선인 측에 보낸 국제문제에서의 협력은 결국 미국 마음대로 되는 세상은 안 되니 중국과 보다 많이 협력하자는 이야기다. 미·중 마찰의 시대에 미국에서 한국을 떼어내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려는 시 주석의 속내가 이번 통화 내용의 곳곳에 보인다.
반면 윤 당선인이 시 주석과의 통화에서 가장 강조한 “북한의 도발로 한반도와 역내 긴장이 급격히 고조돼 국민적 우려가 크다”는 점은 중국 측 발표 내용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지역 평화 유지”라는 말 정도로 대변되고 있다. 또 “윤 당선인 취임 후 이른 시일 내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질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이란 한국의 발표 내용에 대해 중국은 단지 “한국이 중국과 밀접한 고위층 교류를 바란다” 정도로 처리했다. 시 주석 방한은 요원하다는 이야기다. 결국 윤 당선인과 시 주석 간의 첫 통화 내용을 보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올해가 수교 30주년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이 같은 걱정을 기우로 만드는 노력이 양국에서 경주되기를 바랄 뿐이다.

시진핑 주석이 강조한 ‘상호존중’과 ‘정치신뢰’는 #윤 당선인 측 ‘사드 추가 배치’ 공약과 정면 충돌 #시진핑 주석의 공급망 협력 강조하자는 발언은 #미국 겨냥한 것으로 미·중 사이에 낀 한국엔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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