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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미국의 중국과 러시아 혼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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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구촌엔 미국의 세계 패권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두 나라가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다. 러시아는 경제력은 크지 않지만, 군사력은 강하다. 반면 중국은 군사력이 미국에 필적할 수준은 아니지만, 경제력은 강하다. 이들 두 나라의 공통점은 지도자가 권좌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권위주의적 통치가 횡행하다 보니 사회는 숨이 막힌다. 패권 유지도 그렇지만 민주와 인권의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으로선 눈엣가시다. 두 나라를 어떻게 처리할 건가.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 때리기에 나선 거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미국의 패권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러시아엔 경제적 타격을, 중국엔 군사적 타격을 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미국의 패권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러시아엔 경제적 타격을, 중국엔 군사적 타격을 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먼저 러시아 경우다.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물론 러시아가 저지른 일이지만 미국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과거 러시아에 나토를 동진(東進)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 미국의 말이 바뀌었다. “나토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고. 게다가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군사적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의지를 부추긴 셈이다.
한데 막상 전쟁이 터지자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한 주 동안에만 10억 달러(약 1조 2345억원) 규모의 첨단무기를 제공하는 등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무려 20억 달러에 육박한다. 직접 참전은 하지 않으면서 구(舊)소련 연방의 국민끼리 피를 흘리며 싸우게 만들고 있다. 이이제이(以夷制夷)에 가깝다. 전쟁이 푸틴의 예상대로 쉽게 끝나지 않으면서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서방 제재에 부닥쳐 자칫 국가부도의 위험에까지 몰리고 있다.

지난 1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여성이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해 아이와 함께 황급하게 대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6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여성이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해 아이와 함께 황급하게 대피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맥도날드를 포함한 글로벌 기업 300여 개가 러시아 내 영업을 중단하거나 축소했으며 미국과 유럽연합은 러시아와의 무역과 관광을 금지했다.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중단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제재도 가해졌다. 러시아 화폐 루블의 가치가 미 달러 대비 40% 폭락하는 등 금융체계가 휘청거린다. 글로벌 경제에서의 고립으로 인해 러시아 경제가 30년은 후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 국민의 생활이 혼란에 빠지며 푸틴의 입지가 흔들릴 전망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주의력을 집중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중국 때리기 또한 늦추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11일 바이든 대통령이 2022년 회계연도 연방정부 교부금 관련 법안에 서명했는데 이게 중국을 격분시키고 있다. 법안 내용 중에 미 행정부가 대만 영토를 부정확하게 표시한 지도를 제작하거나 구매하는 걸 금지하는 게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뭐가 대만 영토를 부정확하게 표시한 걸까. 뜻하는 바는 대만을 중국과 같은 색깔로 표시해 중국의 일부로 보이게 하면 안 된다는 거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선 결과 미국과 서방 주도의 제재에 부닥쳐 자칫 러시아 경제가 30년은 후퇴할 것이라는 위기에 놓였다. [로이터=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선 결과 미국과 서방 주도의 제재에 부닥쳐 자칫 러시아 경제가 30년은 후퇴할 것이라는 위기에 놓였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 내정에 대한 난폭한 간섭으로 대만 지역 지도 문제를 핑계로 ‘하나의 중국, 하나의 대만’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격하게 반발했다. 중국이 다른 나라와 수교할 때 기본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미국이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세상에는 중국과 대만이라는 두 나라가 있는 게 아니라 중국이란 하나의 나라밖에 없다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1979년 미·중 수교 때 미국도 인정한 바다. 한데 이제 미국이 그 수교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중국은 그동안 중국 지도에 대만이 빠져 있으면 거칠게 항의하며 기업에 대해선 불매운동을 벌이곤 했다. 웬만한 글로벌 기업은 한 번쯤 다 혼이 난 경험이 있다. 그만큼 중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문제다. 그런데 이 같은 미국의 중국 자극이 단순 실수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트럼프 정부 이래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드는 작업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2019년 1월 말 중국은 붉은색, 대만은 녹색으로 표시한 미 백악관의 한 지도가 언론에 노출돼 중국을 경악시켰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이 대만을 방문해 지난 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마이크 폼페이오 전 미 국무장관이 대만을 방문해 지난 3일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그리고 그해 5월 말 발표된 미 국방부 보고서에선 대만을 몽골,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과 함께 우방 국가(country)라고 표시했다. 미국이 대만을 독립된 국가로 보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논란을 불렀다. 바이든 정부가 주최한 지난해 12월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선 대만 대표가 역시 중국은 붉은색, 대만은 녹색으로 칠한 지도를 슬라이드 쇼에 등장시켜 문제가 됐다. 그리고 이번엔 미 행정부가 대만에 대한 지도 표시는 중국과 달라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키기에 이른 것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미국이 노리는 건 뭘까.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의 마지노선으로 중국의 도발을 유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산다. 그러잖아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듯 중국도 대만 통일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중국 내 일부 민간 정서가 있다. 이를 방증하듯 주펑롄(朱鳳蓮)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중국 정협(政協) 위원들 사이에서 ‘조국통일법’ 제정 제안이 있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중국은 2005년 대만의 독립을 억제하는 ‘반(反)국가분열법’을 제정했다. 이는 방어적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입장에서 대만 통일은 조국통일 대업을 달성한다는 의미에서 각별한 것이다. [AF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입장에서 대만 통일은 조국통일 대업을 달성한다는 의미에서 각별한 것이다. [AFP=연합뉴스]

한데 이젠 ‘조국통일법’을 추진해 대만 통일을 촉진시키겠다는 공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권좌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입장에서도 대만 통일은 너무나 매력적인 사안이다. 탈 없이 대만을 차지할 수 있다면 조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지도자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고, 또 그 같은 업적을 바탕으로 롱런 가도를 닦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력으로 대만 통일을 이룰 능력이 되느냐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많다.
바로 그런 시점에 미국이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 자칫 중국이 군사적 모험을 감행한다면 중국은 재앙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개혁개방 40여 년을 통해 쌓은 경제적인 부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할 공산이 큰 것이다. 한데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 흔들기로 중국을 계속 자극하고 있다. 그래서 군사력이 강한 러시아는 경제적 타격을 입혀 잡고, 경제력이 강한 중국은 군사적인 충돌로 누르려는 게 미국의 진짜 속내가 아닌가 하는 관측이 중화권에서 나온다. 러시아는 덫에 걸린 듯한데 교토삼굴(狡兎三窟, 꾀 많은 토끼는 굴 세 개를 파 위험에 대비한다)의 성어를 갖고 있는 중국이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군사력 강한 러시아는 경제적 타격 입혀 잡기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경제 30년 후퇴 전망 #경제력 강한 중국은 군사적 충돌 유도하나 관측 #대만 문제로 ‘하나의 중국’ 원칙 흔들며 중국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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