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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누구몫? 산업부·외교부, 벼랑 끝 로비전…30년째 이렇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외교부는 교섭 기능을 가져오는 데만 관심이 있다. 실무를 모르는 데 무슨 일이 되겠나.”(산업통상자원부 국장)
“정부조직법상 경제외교는 외교부의 몫인데 통상교섭은 산업부가 맡도록 칸막이를 세워놓는 바람에 자꾸만 엇박자가 난다.”(외교부 관계자)

산업부와 외교부의 ‘벼랑 끝’ 로비전이 한창이다. 산업부 산하에 있는 통상교섭본부 조직을 외교부로 옮기느냐, 마느냐가 쟁점이다. 지난 23일 대통령 인수위원회에서 정부 조직 개편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기로 하면서 두 부처 간 공방전이 더 달아올랐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 입구에서 회의 참석차 인수위를 찾은 각 부처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이 보안 검색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 입구에서 회의 참석차 인수위를 찾은 각 부처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이 보안 검색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인수위 업무보고 ‘통상교섭 누가’ 공방전 

24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도 두 부처는 논리 싸움을 벌였다. 인수위에 따르면 이날 산업부는 ‘산업 정책과 일체화된 통상 전략’을 주요 의제 중 하나로 보고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공급망 위기 등이 부각되는 상황에서 산업부 중심으로 통상 리더십을 이어가는 게 적절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산업부는 철저하게 방어 논리를 내세우는 중이다. 산업부 당국자는 “교섭 기능만으로는 복잡하게 돌아가는 통상 현안을 해결하기 어렵다”며 “외교부가 통상 조직을 맡는다 해도 결국 산업계 의견을 조율하는 등 실질적인 업무는 산업부가 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비효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산업계 역시 통상 조직을 산업부 산하로 유지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난 23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취임 1주년 기념 화상 기자간담회에서 “기업 입장에서 보면 통상 문제가 매우 중요한데, 기업을 얼마만큼 이해하는 쪽이 통상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산업부 주장에 힘을 싣는 발언이다.

반대로 외교부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통상 기능 이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외교부는 통상 교섭권을 가져와야 비로소 실질적인 경제안보 역량 강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 통상교섭본부장 산하 조직 중 통상교섭과 관련한 조직만 외교부로 가져온다면 국내 공급망 관련 산업부 고유 업무에도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피력하고 있다.

외교부 결의는 상당하다. 요소수 부족 사태, 탈원전 논란 등으로 산업부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지금이 통상 조직을 다시 뺏어올 적기란 판단이 자리한다.

이날 업무보고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산업부와 외교부 간 통상 조직 이전 여부를 둘러싸고 인수위는 물론 장외에서도 치열한 물밑 로비전이 이어질 전망이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반복됐던 일이다.

통상교섭본부 조직 변화.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통상교섭본부 조직 변화.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통상 조직 놓고 산업부ㆍ외교부 30년 갈등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통상 조직은 상공자원부(현 산업부)ㆍ외무부(외교부)ㆍ농림수산부(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 부처에 국 단위로 흩어져 있었다. 여러 부처에 산재해 있는 통상 업무를 경제기획원(기획재정부) 대외경제조정실이 총괄 지휘하는 구조였다.

이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실패, 세계무역기구(WTO) 등장 등으로 일원화된 통상 전문 조직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졌고, 김영삼 정부 초기인 94년 통상산업부가 출범했다. 각 부처에 산재해있던 통상 조직을 통상무역실로 묶여 산업부 아래에 설치했다. 중앙부처 이름에 ‘통상’이란 단어가 이때 처음 등장했다.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가 터지며 통상 조직은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경제부처에 과도하게 쏠린 권한이 위기를 불러왔다는 비판이 커지면서다. 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며 경제부처 ‘슬림화’가 추진됐고, 그 일환으로 통상 조직이 산업부에서 외교통상부 산하로 옮겨갔다. 지금의 통상교섭본부도 그때 만들어졌다.

통상교섭본부 ‘핑퐁 게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 광우병 사태로 촛불 시위가 일었다. 통상교섭 조직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고,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조직 개편으로 이어졌다. 통상교섭본부가 산업부로 다시 옮겨가며 현행 산업통상자원부 체제가 자리 잡았다.

통상 조직을 둘러싼 산업부와 외교부 갈등은 이처럼 3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자기 부처로 통상 조직을 가져와야(또는 유지해야) 한다며 두 부처는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윤석열 정부가 새로 들어서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천막 기자실을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천막 기자실을 방문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결국 밥그릇 싸움…차가운 외부 시선

하지만 이런 산업부와 외교부 공방을 바라보는 전문가 시각은 냉랭하다. 박명섭 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통상이 무역 거래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기업 밑단부터 경제 안보까지 미치는 영향이 매우 광범위해지고 복잡해졌다”며 “단순히 통상 조직을 산업부가 가져가느냐, 외교부가 가져가느냐로 해소될 과제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통상 조직이 어디 있느냐 간에 현안이 생겼을 때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함께 갖춰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통상 업무를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데, 산업부ㆍ외교부 모두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직까진 윤 당선인 측에서 통상 조직 이전 여부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내놓진 않았다. 가동에 들어간 인수위 정부 조직 개편 TF의 판단에 달려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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