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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1초면 하남→인천공항 …시·공간 뚫은 게임엔진發 콘텐트 혁신

중앙일보

입력 2022.03.22 06:00

업데이트 2022.03.23 10:45

지난 10일 경기도 하남시 브이에이 2번 스튜디오. 120평(405㎡) 규모 내부엔 삼면이 엘이디 월 (LED wall)로 둘러쌓인 반원 모양의 무대가 있다. 천장과 바닥도 LED 월. 인천공항 배경을 띄운 LED 월 앞으로 다가가자 모니터링용 화면엔 공항 안을 걷는 모습이 구현됐다. 가상 배경과 실제 인물 간 이질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장면, 해의 위치, 공항 혼잡도(사람 수) 같은 배경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다. 카메라 이동에 따라 LED월에 구현된 배경이나 빛과 그림자의 위치 역시 자연스럽게 변했다.

지난 10일 경기도 하남시 브이에이 스튜디오 하남에서 고병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이사(오른쪽)가 박민제 기자에게 버추얼프로덕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두 사람 외에 모든 배경, 인물은 언리얼엔진을 통해 LED월에 구현한 가상 배경이다. [사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지난 10일 경기도 하남시 브이에이 스튜디오 하남에서 고병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이사(오른쪽)가 박민제 기자에게 버추얼프로덕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두 사람 외에 모든 배경, 인물은 언리얼엔진을 통해 LED월에 구현한 가상 배경이다. [사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무슨 일이야  

게임엔진 발(發) 기술 혁신이 영화·드라마 제작 환경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실시간으로 3차원 가상공간(메타버스)을 만들 수 있는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엔진을 활용해 영화·드라마를 제작하는 버추얼프로덕션(가상제작)이 크게 늘면서다. 특히 LED 월에 3차원 공간을 실시간으로 투영한 후 배우와 배경을 동시에 촬영하는 ‘인카메라 VFX’는 요즘 대작 영화·드라마 촬영장 필수 기술로 급부상 중이다.

언리얼 엔진은 당초 트리플A급으로 불리는 고급 그래픽 게임 제작에 쓰이는 도구였다. 현실과 구분 안 되는 극사실주의적 비주얼 표현이 가능한 성능 덕분에 최근엔 영화·드라마 등 다른 영상 콘텐트 제작에도 언리얼 엔진이 쓰이고 있다. 에픽게임즈에 따르면 언리얼엔진을 활용한 영화·드라마 건수는 지난해 전년 대비 150% 증가했다. 디즈니의 ‘만달로리안’을 시작으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매트릭스 리저렉션’‘프리가이’ 등이 언리얼 엔진을 활용한 영화다. 2020년 12곳이었던 전 세계 LED 월 촬영 스튜디오는 최근 250곳 이상으로 늘었다.

에픽게임즈코리아의 신광섭 엔진 비즈니스 리드는 “기존의 초록색 스크린 배경에서는 감독·배우들이 컴퓨터 그래픽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채 일단 촬영했지만, 이제는 촬영하면서 결과물을 확인하고 즉시 수정하며 연기하는 게 가능해졌다”며 “가상 배경도 실사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질이 좋아져서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프로덕션 스튜디오에서 가상 배경으로 띄운 첨성대[사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프로덕션 스튜디오에서 가상 배경으로 띄운 첨성대[사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국내에서도 경쟁

국내 콘텐트 기업들도 버추얼 프로덕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덱스터 스튜디오, CJ ENM, 웨스트월드, 자이언트스텝, 위즈윅스튜디오 등 쟁쟁한 회사들이 인카메라 VFX를 도입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가 대표적인 작품. 제작사인 웨스트월드 측은 “그린 스크린 촬영 때는 긴 렌더링 시간을 기다린 후 결과물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엔 조명, 카메라 위치에 따른 질감과 색감을 현장에서 즉시 수정하고 반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설립된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은 국내 버추얼 프로덕션 선두주자로 불린다. 아시아 최대 규모(1만 5000㎡) 버추얼 프로덕션(가상 제작) 스튜디오를 갖춘 브이에이 스튜디오를 지난해 6월 열었다. 메타버스 관련 솔루션을 통합 제공하는 사업 비전을 인정받아 최근 파라투스인베스트먼트와 1000억 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에 출연했던 배우 겸 모델 정호연씨는 ‘브이에이 스튜디오 하남'에서 강렬한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더블유 코리아 화보를 찍었다. [사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오징어 게임에 출연했던 배우 겸 모델 정호연씨는 ‘브이에이 스튜디오 하남'에서 강렬한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더블유 코리아 화보를 찍었다. [사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콘텐트 제작 혁명의 시작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선 ‘인카메라 VFX’는 버추얼 프로덕션이 만들 변화 중 극히 일부라고 설명한다. 버추얼 프로덕션을 실제 촬영과 병행할 경우 돈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① 버추얼 스카우팅 : 기존엔 시나리오가 나오면 콘티를 짜고 촬영에 들어갔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촬영할 이미지에 대한 감독의 구상을 공유하기도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감독, 카메라·조명·미술 감독의 생각이 제각각일 때가 많고, 이를 조율해 촬영하는 과정에선 시행착오가 많이 일어났다.
하지만 버추얼 프로덕션을 활용하면 감독의 구상을 손쉽게 시각화해 공유할 수 있다. 남산타워 같은 현실 공간을 가상공간에 똑같이 디지털 트윈으로 만들어 놓고 감독, 조명감독, 카메라 감독, 미술감독이 VR기기로 함께 접속해 장면을 설계하는 식이다.

② 버추얼 스테이지 퍼포먼스 : 대역 배우에게 모션캡처 슈트를 입힌 다음 동작을 데이터화해 가상 공간에서 구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실제 배우가 연기할 경우 러닝타임을 미리 정확하게 추산 가능하다. 고병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이사는 “가상 공간에서 미리 영화를 찍었더니 러닝 타임이 4시간 반이 나왔다”며 “이를 바탕으로 촬영 회차를 줄여 30억원 가량의 비용과 100여차 이상의 촬영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③ 버추얼 슈팅 : 촬영도 가상 공간에서 가능하다. 360도로 구현된 공간인 만큼 카메라 감독이 원하는 앵글과 각도를 정해서 가상공간의 대역배우 연기로 촬영본을 만들 수 있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자회사인 모팩 안현준 감독은 “버추얼프로덕션은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정해 원하는 결과물을 즉시 얻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실제 촬영 외에도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비효율을 크게 줄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프로덕션 스튜디오. 뒤에 있는 LED월 등에 오페라 극장 등 전 세계 어느 곳의 배경이라도 띄워 활용할 수있다. [사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프로덕션 스튜디오. 뒤에 있는 LED월 등에 오페라 극장 등 전 세계 어느 곳의 배경이라도 띄워 활용할 수있다. [사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홈쇼핑, 콘서트, 행사 어디든 활용가능

시대물,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공상 과학물 촬영에도 유용하다. 80년대 올림픽대로에서 차량 추격전을 벌인다면 스튜디오에 일부 세트를 구현한 다음 다른 차량을 언리얼 엔진을 통해 만들어 활용하는 식이다.
영화·드라마 제작에만 쓰이는 건 아니다. LED월과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하면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붙인 홈쇼핑, 콘퍼런스, 콘서트, 화보촬영, 숏폼 영상 제작도 가능하다. 실제 카카오가 지난해 개최한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if(Kakao) 2021’은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스튜디오에서 제작됐다. 각종 도표, 발표자료부터 라이언을 활용한 요소까지 스튜디오에서 한 번에 촬영을 마무리했다.

카카오 개발자 컨퍼런스 '이프 카카오'도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사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카카오 개발자 컨퍼런스 '이프 카카오'도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사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앞으로는, 메타버스

버추얼프로덕션의 미래 청사진엔 메타버스가 있다. 전 세계 유명한 유적지나 여행지 등을 가상공간에 지식재산(IP)으로 만들어 축적해 놓고 이를 콘텐트 제작자에게 제공하는 방식의 사업모델 등도 가능하다. 고병현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이사는 “실사 촬영이 가장 좋겠지만, 문제는 시간과 공간, 비용”이라며 “메타버스를 활용한 버추얼프로덕션이 이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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