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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는 대통령’ 용산시대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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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였던 ‘경무대’에서 시작해 74년간 이어져 왔던 ‘청와대 시대’가 막을 내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0일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내린 결단”이라며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용산 시대’의 개막을 공식 선언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서 열린 45분간의 기자회견에서 “청와대는 임기 시작인 5월 10일에 개방해 국민들께 돌려드리겠다. 국민들께 불편을 드리는 측면, 청와대를 온전히 국민께 개방해 돌려드리는 측면을 고려하면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결정을 신속히 내리고 추진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밝힌 뒤 조감도를 설명하고 있다. 또 “청와대는 임기 시작인 5월 10일에 개방하고 본관, 영빈관을 국민들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밝힌 뒤 조감도를 설명하고 있다. 또 “청와대는 임기 시작인 5월 10일에 개방하고 본관, 영빈관을 국민들의 품으로 돌려드리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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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한 결론을 내린 배경으로 윤 당선인은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국민의힘과 인수위 일각에서도 속도조절론 역시 이런 논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윤 당선인의 핵심 참모는 “이 문제는 완급 조절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당선인의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단 청와대에 들어가 현안이 밀려 들면, 대통령실 이전 문제는 업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회견문에서 이전 명분으로 주로 언급된 단어는 ‘소통’(7회)과 ‘공간’(8회)이었다. 소통은 대통령 집무실 주변에 조성될 ‘용산공원’이 핵심이다. 윤 당선인은 새 대통령 집무실 조감도를 직접 공개하고 “백악관과 같이 최소 범위에서만 펜스를 설치하고, 잔디밭에서 결혼식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 서울에는 없었던 50만 평의 공원을 시민들께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개혁TF 단장을 맡은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중앙일보에 “미국 백악관같이 시민들이 대통령의 집무실을 바라보며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 자체가 소통의 일환”이라고 했다.

올해 반환 예정인 용산공원 구역.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올해 반환 예정인 용산공원 구역.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공간’은 일하는 방식과 연결된다는 게 윤 당선인의 생각이다. 윤 당선인은 회견 도중 “공간이 그 업무와 일을 좌우한다”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현재(청와대)의 공간 구조로는 국가의 난제와 그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이전 업무를 맡은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은 “청와대란 제왕적 ‘공간’에 들어가면 다신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윤 당선인의 판단이다. 당선인은 ‘일단 청와대에 들어간 뒤 이전을 검토한 전임자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고 전했다. 새 집무실에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민관 합동위원회’를 설치하겠단 계획 역시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꾀하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윤 “용산 대통령실 앞 공원서 결혼식도 가능, 청와대 5월 10일 국민에 개방”

이날 발표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근무 인원은 임기 시작인 5월 10일 첫 출근을 용산 국방부 신청사로 하게 된다. 신청사에서 근무하던 국방부 관계자들은 인근 합동참모본부와 국방부 구청사로 이동한다. 합참 인력은 중장기 계획을 세워 남태령(서울-과천)에 위치한 수도방위사령부로 이전하게 된다. 당선인 측이 추산한 예산은 대통령실과 기존 입주기관 이전 및 대통령 공관 리모델링을 포함해 약 496억원이다. 윤 당선인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관저로 사용할 예정이다.

국민들과 분리돼 ‘구중궁궐’로 불려온 청와대의 이전 이슈는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반복돼 온 대선후보들의 단골 공약이었지만 경호 문제와 대체지 선정의 어려움 등으로 매번 무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취임 이후에도 추진했지만 2019년 1월 포기를 선언했다. 이런 측면에서 윤 당선인이 대선이 끝난 지 단 두 달 만에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고 첫 출근을 새 집무실로 하겠다고 밝힌 건 초유의 정치실험이다.

다만 ‘용산 시대’의 선언에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한 상태다. 우선 임기 개시까지 5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 핵심 안보시설인 청와대와 국방부를 차질 없이 옮기는 실무적 과제가 있다. 또 문재인 정부와의 협의, 청와대 이전비용은 인수위의 예비비 예산 범위를 벗어났다는 야당의 반발까지 넘어야 할 고비가 수두룩하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원장은 “윤 당선인이 현재 가진 정치적 자산 상당 부분을 투여해 정면 승부를 택한 것”이라며 “당선 열흘 만에 시험대에 올라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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