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성향 '오만 증후군' 푸틴, 러 지지율 70% 슬픈 비밀

중앙일보

입력 2022.03.19 00:10

러브에이징

‘높은 신분에서는 상식조차 발견하기 어렵고 휘황찬란한 신분에서는 그곳에 사는 하인들조차 거만하다.’

2000년 전 고대 로마 시대의 부패한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노래한 유베날리스의 시어는 권력 의지를 가진 사피엔스의 심연에 뿌리내린 오만과 타락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유베날리스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경구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는 수많은 사람의 생사를 좌우할 힘이 있으며 그의 정신 건강과 도덕성은 공공의 이익과 직결된다. 따라서 통치자 정신 상태를 객관적인 척도로 분석하고 공직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사이코패스, 모든 문화권에 2% 존재

하지만 아직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는 국가는 없다. 사실 최첨단 현대 의학도 1000억개 이상의 뇌세포가 복잡하게 작동해 나타나는 인간의 언행을 ‘예측’하지는 못한다. 그나마 민주국가에서는 선거를 통해 최고 지도자를 선택하고 주기적으로 교체하면서 권력의 오남용을 견제한다. 불행히도 전체주의 독재국가나 세습왕조에는 이런 안전장치조차 없다. 인류 역사를 피로 물들인 수많은 불행이 지도자의 병적인 정신 상태와 오판에서 초래됐지만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통치자의 만행이 현재진행형으로 자행되는 이유다.

지난달 24일 이후 국제 정세를 불안과 혼란으로 몰고 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마찬가지다. 미사일 공습과 지상군 투입으로 3일 만에 항복시키겠다던 푸틴의 호언(豪言)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결사 항전으로 3주를 넘기면서 허언(虛言)이 됐다. 국제사회는 고강도 경제 제재로 러시아를 국가 부도 위기로 몰고 가고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을 ‘전범(戰犯)’으로 규정했다. 폭격으로 어린이와 임산부가 숨지는 전쟁 참상이 실시간 지구촌에 전해지면서 공감 능력이 발달한 사람은 정신적 고통도 깊어지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문제는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킬 정도의 병적인 정신 상태를 가진 통치자를 향한 든든한 국민적 지지다. 70세 푸틴 대통령은 22년째 장기 독재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경제를 재건시킨 강한 지도자 이미지를 통해 국민 60% 이상의 지지를 받았고 전쟁 이후 지지율은 70%까지 상승했다.  물론 전쟁 후유증이 심각하면 상황은 급반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푸틴의 정신적·심리적 상태를 ‘오만 증후군(Hubris syndrome)’으로 본다. 큰 성공과 권력을 쥔 사람에게 나타나는데 충동적·파괴적·독단적·자아도취적 행태를 보이면서 과대망상에 쉽게 빠진다. 만일 반사회적 인격장애와 조울증까지 겹치면 죄의식도 없어진다. 현재 푸틴도 비밀 신무기까지 동원하면서 병원과 민가에도 반인륜적 맹공을 퍼붓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일은 폐쇄적 독재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인 미국의 전직 대통령 트럼프도 취임 전 이미 전문가 집단에 의해 병적인 나르시시즘,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편집증적 망상장애, 악하거나 미친 정신 상태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전에 병적인 정신 상태를 객관화시켜줄 전면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가난한 백인 노동자들의 콘크리트 지지 기반에 힘입어 트럼프는 4년간 온갖 기행을 저지르며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만일 코로나19 팬데믹이 없었다면 연임에 성공해 푸틴과 함께 지구촌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사피엔스의 뇌에는 무자비하고 오만한 사람에 대한 선호가 존재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사이코패스 뇌과학자』의 저자인 제임스 팰런은 거짓말 잘하고 공감 능력이 떨어져 불안을 못 느끼는 사이코패스적 특징이 위기 상황에서 생존하는 데는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전쟁처럼 절박한 상황에 부닥치면 보통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과 초조함에 떨기 마련이다. 반면 사이코패스 성향의 지도자는 감정의 동요 없이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한 뒤 적절하게 대처해 승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인류가 야만의 시대를 거쳐 문명의 세계에 진입한 이후에도 사이코패스적 냉철함은 군사·정치·경제 등의 방면에서 사회 발전에 기여했을 것이다. 실제 사이코패스는 모든 문화권에서 약 2% 비율로 존재한다. 만일 사이코패스적 특징이 인류 발전에 무조건 해악만 끼쳤다면 반복되는 진화 과정을 통해 사라졌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대중적 인기를 끈 지도자 중에는 연극적이고 자기애성이 강하면서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보이는 인격장애자가 드물지 않다〈표1 참조〉. 얼핏 유능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그들에게 강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싶은 원초적 본능이 발동되면 합리적 판단이나 객관적 사실은 설 자리가 없다. 여기에 집단 심리나 군중 심리까지 개입되면 심각한 인격장애자를 향해 병적인 애정이 쏟아질 위험성이 상존한다.

강자 옆에서 안전 추구하는 심리 위험

극단적인 경우에는 연쇄살인범 같은 중범죄자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범죄자 애호 심리(하이브리스토필리아·Hybristohpilia)’가 나타나기도 한다〈표2 참조〉. 이 역시 선사 시대부터 막연하게 무자비하더라도 강한 사람 옆에 있으면 안전할 거라는 본능이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병적인 정신 상태라 할 수 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거짓말을 일상으로 하고 공감 능력도 없으며, 자신의 언행에 무책임하고 타인에게 거리낌 없이 피해를 주는 인격장애인이나 범죄인을 추종하기는 어렵다. 항상 깨어있는 정신으로 자신의 언행을 객관화시켜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러시아의 도발로 초래된 우크라이나의 비극적 현실을 통해 인격장애가 있는 지도자가 한국은 물론 이웃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기를 전 국민이 끊임없이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할 것 같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다수의 칼럼을 연재했다.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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