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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획일적 치료·방역 한계, 세대별 맞춤형 전환 시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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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호 28면

러브에이징

지난 10일 영국 왕실은 73세 찰스 왕세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재(再)감염됐으며 증상은 가볍다고 발표했다. 그는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에도 감염돼 ‘가볍게’ 앓고 회복했고 이후 백신도 3회 접종한 상태였다. 그와 함께 사는 한 살 연상의 부인 카밀라 콘월 공작부인은 지금도, 2년 전에도 감염되지 않았다. 반면 2년 전 찰스 왕세자와 같은 시기에 코로나19에 감염됐던 보리스 존슨 총리(당시 56세)는 병세가 위중해져 중환자실 치료까지 받았으며 아내인 캐리 여사(당시 32세)도 확진돼 입원 치료를 받았다.

영국 최고 상류층 인사인 두 커플은 인종과 지역, 사회문화적 환경이 같다. 하지만 코로나19와 접촉했을 때 나타나는 신체적 반응은 미감염(카밀라), 경증(찰스), 중등증(캐리), 중증(존슨) 등 4인 4색(4人4色)이다.

찰스 왕세자·존슨 총리 부부 증세 제각각

한집에서 자란 형제자매도 질병에 대한 저항성과 취약성은 차이가 있다. 하물며 나이, 성별, 인종, 건강상태, 생활습관, 사회문화적 환경 등이 다를 땐 같은 병에 걸려도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나며 치료법도 증상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현대 의학은 특정 질병에 대해 표준 치료법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고혈압 환자에게는 혈압강하제를, 열나는 환자에게는 해열제를 쓰는 식이다. 하지만 같은 고혈압치료제도 혈압 조절이 잘 되고 부작용도 없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효과도 적고 부작용만 나타나는 환자도 있다. 소위 말하는 명의는 환자의 미세한 특징까지 간파해 최적의 처방을 내리는 전문가다. 21세기 현대 의학은 유전자 검사 등을 동원해 개개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 치료법을 제시한다. 명의의 혜안을 객관화시키는 셈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감염병도 마찬가지다. 환자 상태, 균의 종류, 침입 경로, 치료 시기 등에 따라 질병 경과는 판이하다. 예컨대 건강인은 경증으로 지나가는 약한 균도 노약자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치료제 역시 제때 투여해야 효험을 보며 때늦은 치료는 백약이 무효다.

그렇다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확진자 치료는 어떠한가. 팬데믹 시작 이후 최근까지 국내 확진자는 정부의 완고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생활 치료센터, 재택 치료, 입원 치료 등으로 분류됐고 치료도 방역 당국의 지침대로 진행됐다.

물론 신종 감염병의 정체를 모르던 팬데믹 초기에는 거리두기를 비롯한 강제성을 띤 획일적 방역 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 세계가 좋은 치료 경험을 실시간 공유하고 환자 데이터가 누적돼 2020년 가을 무렵에는 병의 실체도 알고 다양한 치료법도 제시됐다. 그때부터는 확진자 치료를 전문가 손에 맡기는 게 합리적이다. 그래야 환자 상태에 따른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코로나19 같은 호흡기 질환을 초기부터 진료할 수 있는 개원의도 많고 위중증 환자를 전담할 전문가 집단도 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누적 확진자가 165만 명에 달하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해 본 경험자가 많지 않다. 수많은 확진자가 생활치료센터나 재택 치료 대상으로 분류돼 비대면 관리를 받다가 상태가 악화하면 전담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 코로나19 치료를 ‘공무원 치료’라고 부르는 이유다.

문제는 확진자 중에 가벼운 감기 증상으로 시작했지만 차츰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면역체계가 교란돼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초기부터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검사를 통해 숨겨진 기저질환이나 폐렴을 찾아낸 뒤 필요하면 즉시 항바이러스 치료 등을 시작해야 한다.

생활치료센터나 재택치료 상황에서 체온이나 산소포화도 수치를 점검하는 식의 비대면 환자 진료는 병의 진행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치료 시기를 놓치기 쉽다. 회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던 필자의 지인(남, 56세)도 지난 12월 초 코로나19에 감염돼 재택 치료 중에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8일째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다. 만일 그가 발병 초기에 렘데시비르주사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받았다면 위중증 상태로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한국은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으로 하루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발생이 10만 명을 넘어섰으며 한동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오미크론 변이의 치명률이 직전에 유행한 델타 변이의 5분의 1에 불과해도 확진자 10만 명은 델타 변이 확진자 2만 명에 해당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방역 정책의 방향을 투명한 정보 공개와 우수한 의료 인프라 활용으로 급선회해서 보다 효율적인 치료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환자 상태에 따른 맞춤형 치료 체계가 정착될 수 있다. 팬데믹 3년째인 지금도 확진자가 제때 적절한 치료를 못 받는다면 이는 분명  심각한 문제다.

오미크론 기세, 날씨 따뜻해져야 꺾일 듯

코로나19 팬데믹은 백신 접종률이 100%라도 종식될 수 없다. 또 오미크론 변이의 기세도 한동안 확진자가 매일 수십만 명씩 발생하는 과정을 거친 뒤 날씨가 따뜻해지면 차츰 꺾이기 시작할 것이다. 독감처럼 환자가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위드 코로나 시대는 인간의 의지나 노력보다는  신종 바이러스가 사피엔스와 공존하고 싶은 접점을 찾았을 때 전개될 것이다.

코로나19는 나이 차별을 극심하게 하는 바이러스다. 17일 기준 국내 치명률만 보더라도 80세 이상은 20세 미만의 9400배, 20대의 2000배, 30대의 470배에 달한다. 100년전 유행했던 스페인독감이 청년층 희생자를 많이 발생시킨 상황과도 대조된다.〈표 참조〉 따라서 이제는 방역의 방향도 0세부터 100세까지 적용되는 획일적인 방역 대신 세대별 맞춤형 방역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오미크론 대유행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확진자 치료도 맞춤형으로, 방역 정책도 맞춤형으로 변신하는 선진적인 K 방역이 구축되기를 기대해 본다.

황세희 연세암병원 암지식정보센터 진료교수.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의 남자 읽기’ 등 다수의 칼럼을 연재했다. 2010년부터 12년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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