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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돼 길에서 낳을순 없다" 100만 임신 가족 SNS 생존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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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확진 산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 옮기는 간호사. 연합뉴스

확진 산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 옮기는 간호사. 연합뉴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조심하셔야 해요.”
임신 32주차 송모(32)씨가 ‘랜선 언니’ A씨(35)에게서 받은 SNS 메시지다. 송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뒤 출산 때 자신을 받아줄 병원이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에 휩싸이자 인터넷에 도움을 요청했다. ‘확진 임신부’ 경험자를 찾아 나선 것이다. 송씨는 1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보건소 연락은 잘 되지도 않고 답답한 마음에 경험자에게 조언을 구했다”며 “아이를 길이나 구급차에서 낳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 너무 불안하다”고 초조해했다.

애타는 확진 임신부…“이래놓고 임신 장려?”   

17일 오후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감염병 전문 응급센터에서 환자 이송을 마친 119 구급대원들이 장비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오후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 감염병 전문 응급센터에서 환자 이송을 마친 119 구급대원들이 장비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에 감염된 임신부가 분만할 병원을 찾지 못해 거리를 떠도는 사례가 최근 속출하면서 임신부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추정하는 임신부 숫자는 약 33만 명이다. 임신부 주변의 가족까지 고려하면 100만 명 안팎의 사람들이 비슷한 공포감에 떨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확진 임신부를 위한 분만 병상은 지난 7일 기준 27개 의료기관 내 160개가 있다. 정부는 병상 수를 252개까지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코로나19확산세에 따라 늘어난 확진 임신부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실정이다.

최근 확진된 34주차 임신부 조모씨는 “확진 임신부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이들이 거리가 먼 지방이나 구급차에서 분만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임신 내내 다녔던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조씨는 “지역 내 확진 산모 전용 분만실은 딱 하나라 병실이 차면 지방으로 가야 한다”며 “코로나19 사태가 2년을 넘어가는데 체계가 아직 잡히지 않은 걸 보면 임신을 독려하는 저출산 국가 맞나 싶다. 막상 임신부에 대한 대책은 없고 너무 무책임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인터넷·SNS가 생존 전략?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임신부들은 인터넷 등에 의존하며 자구책을 찾아 나서고 있다. 한 지역 맘 카페에는 지난 16일 “진통이 5~10분 간격으로 2시간째 이어지고 있어요. 확진자인데 주변에 출산 가능한 병원 있나요?”라고 묻는 글이 올라왔다. 38주차 임신부라고 밝힌 글쓴이는 출산을 앞둔 긴박한 순간에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지 못했다. 해당 글에는 “맙소사” “순산하셨길” 등과 같은 댓글이 잇따랐다.

당황스러운 상황을 보다 먼저 접했던 선배 임신부들의 조언 글도 넘쳐난다. 지역 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산부인과나 지자체 정책 등 유익한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식이다. 관련 글을 맘 카페에 올린 한 확진 임신부는 “누군가에게 중요한 정보이길 바랐다”고 적었다.

“울면서 전화…대책 마련 시급”

경기도 하남시의 코로나19 확진 임신부 전용 진료실. 김영철 하남시의사회 의장이 방호복을 입고 확진 임신부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하남시

경기도 하남시의 코로나19 확진 임신부 전용 진료실. 김영철 하남시의사회 의장이 방호복을 입고 확진 임신부를 진료하고 있다. 사진 하남시

현장에서는 확진 임신부를 임신 기간 받아주는 산부인과가 없어 임신부와 태아가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경기도 하남시 등 일부 지자체는 확진 임신부를 위한 전용 진료실을 지난 4일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를 다녀온 한 임신부가 “정말 감사하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최근 문의 전화가 인근 지역에서도 폭주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진료실은 지역 산부인과 의사의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다. 의료 공백을 느끼는 확진 임신부가 시 보건소 등에 진료를 요청하면 시가 마련한 음압병동에서 대면 진료가 이뤄진다.

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영철 하남시의사회 회장(하남제일산부인과 원장)은 “요즘은 임신도 어렵고 산모 연령대도 높아 확진 임신부들의 모든 사연이 애틋하다. ‘제발 도와달라’고 우는 분도 있다”며 “서울시나 경기도 남양주 등 다른 지역에서도 전화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확진된 임신부와 태아를 같이 살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최근 확진 임신부 분만 가산 수가를 300% 적용한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일반 산모들이 확진자를 꺼리기 때문에 그 정도로 확진 임신부를 받을 일반 산부인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정부의 현실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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