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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준원의 일리(1·2)있는 선택

"野 단일화 과정 굴욕적" 安지지자던 난 尹 찍을 수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최준원 전 국민의당 청년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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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새 기획 칼럼 시리즈 '나는 고발한다. J'Accuse...!'가 대선 이후 드러난 다양한 표심 읽기에 도움이 될 '나는 고발한다 번외편-일리(1·2) 있는 선택'을 14일부터 일주일 동안 매일 연재합니다.
1번이든 2번이든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무지하다고 비판하거나 악마화하는 대신 그 선택의 이유를 들어보며 상대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자는 취지입니다. 더불어민주당 민주당 텃밭 광주에서 2번을 선택한 회사원 김의현(필명)씨의 칼럼과 광주 출신 박은식 내과 전문의 글에 이어 합당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후보에 표를 주지 않은 국민의당 지지자의 글을 소개합니다. 더 많은 관련 칼럼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8일 부산에서 공동 유세를 벌인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배경은 지난 2월 이준석 대표가 안 대표를 비판한 페이스북 메시지. 그래픽=김은교 기자

지난 8일 부산에서 공동 유세를 벌인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배경은 지난 2월 이준석 대표가 안 대표를 비판한 페이스북 메시지. 그래픽=김은교 기자

지지하던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며 막판에 사퇴를 선언했지만 나는 끝내 윤 후보에게 표를 줄 수 없었다. 과정이 굴욕적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3일 안 후보가 여론조사 방식의 국민경선이라는 단일화 제안을 했을 때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페이스북에 부처님 손바닥 사진을 올리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는 게 아니라 역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는군”라는 글을 올렸다.

안 후보의 단일화 제안을 조롱으로 대응한 것이다. 이 대표는 한낱 정치평론가가 아닌 국민의힘 총의를 대변하는 직위임에도 불구하고 ‘고인 유지’ 발언을 비롯해 ‘ㄹㅇㅋㅋ’ 와 같은 SNS 발언으로 안 후보에 대한 모욕을 계속했다. 심지어는 단일화 이후에도 단일화라는 표현 대신 '사퇴 후 지지 선언'이라는 표현을 고집했다.

대의민주주의를 실시하기 위한 선거 기간에 상대 후보를 조롱하는 건 단순히 개인 간 설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까지 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런 행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진영 이익을 위해 불가피했다면 단일화 성사 이후라도 거친 언행으로 상처 입은 유권자에게 사과나 양해를 구했어야 하지만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리 정권교체라는 대의에 공감한다 해도 국민의힘이 통합의 정신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윤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단일화 방식의 비민주성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사진 페이스북 캡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사진 페이스북 캡처]

이뿐만이 아니다. 일방적 압박으로 이뤄진 '사퇴 후 지지 선언' 방식의 단일화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았다. 후보 대 후보로서 합당한 이유와 근거에 기반한 협상이 아니라 오로지 힘에 기댄 협상 방식은 중국 외교를 떠올리게 하였다.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느냐”라는 식의 외교 말이다.

아무리 소국이라도 국가 간 외교는 국제규범을 보여주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일방적으로 구단선(남중국해의 해상 경계선)을 선언하고 영토분쟁을 일으켰다. 이런 모습은 청년들의 반중 감정 이유 중 하나가 되었는데 국민의힘이 바로 이와 같은 ‘꼰대’의 모습을 보여줬다.

지위고하 여부와 상관없이 오로지 옳고 그름, 그리고 합당하고 타당한 이유를 중시하는 '과정의 공정'은 청년층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오죽하면 SK하이닉스에서 4년 차 직원이 전 임직원에게 성과급 지급 기준에 대하여 당당히 묻겠는가. 국민의힘은 30대 젊은 당 대표를 내세웠지만 정치 문법은 전혀 젊어지지 않았다.

여론조사를 활용한 국민경선 방식 단일화가 문제라고 생각하면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논하는 게 정도다. 하지만 내가 듣기론 이런 논의 자체가 아예 협상 테이블 자체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고 단일화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지난해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유세를 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뉴스1]

지난해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유세를 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뉴스1]

과정의 불투명성도 말하고 싶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이루어진 단일화와 비교해도 그렇다. 당시에도 시기와 방법 등의 이견 탓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큰 틀에선 단일화에 대한 큰 공감대를 공유한 상황이었다. 단일화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각 후보 측뿐만 아니라 유권자들까지 투명하게 알 수 있었고, 단일화 이후 공동운영에 대한 합의 역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신뢰할 수 있었다.

안철수의 언행 불일치에 실망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안 후보는 출마 당시 받은 단일화 관련 질문에 대해 “어떤 분이 총리나 장관으로 적합한 분인지 잘 관찰하겠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단일화는 없다"고 이야기했고 "반드시 완주하겠다"고 했다. 단일화 논의를 끝내기 위한 단일화 제안까지 끝내 결렬을 선언한 상황이었다. 안 후보가 평소 언행일치를 중요하게 생각해 총선 슬로건으로까지 사용했던 만큼 그 말은 지켜질 거라 생각했다.

이렇듯 안철수 지지 유권자 마음속에 단일화라는 세 글자가 전혀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하룻밤 사이에 밀실에서 이뤄진 단일화 결정은 그를 지지하던 유권자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물론 단일화 결정 권한은 전적으로 후보에게 있는 게 맞다. 그러나 누구에게 투표할지는 전적으로 유권자들 마음이다. 후보 간에는 어떤 담판을 통해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을지라도 유권자와의 신뢰는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부 국민의당 지지자는 그 결정에 동의해 윤 후보에게 투표했지만, 다른 일부는 국민의힘이 아닌 정당에 투표하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했다. 그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처음부터 단일화 여지를 남겨두었다거나 아름다운 방식의 단일화가 이뤄졌다면 얻을 수 있는 표 상당 부분을 깎아 먹었다는 것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애초에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었다면 발생조차 하지 않았을 불필요한 갈등이었다. 더불어민주당도 선거결과에 상관없이 정치개혁을 지속해서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안 후보 또한 결선투표제를 비롯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언급한 만큼 다음 대선부터는 이와 같은 잡음 투성이 후보 단일화가 반복되지 않도록, 유권자가 더욱 다양한 선택지를 기꺼이 고를 수 있는 바람직한 선거제도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