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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일리(1·2) 있는 선택

尹 택한 문파 '더레프트'…"민주 상실한 민주당 찍을수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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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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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새 기획 칼럼 시리즈 '나는 고발한다. J'Accuse...!'가 대선 이후 드러난 다양한 표심읽기에 도움이 되는 나는 고발한다 번외편 '일리(1·2) 있는 선택'을 14일부터 일주일 동안 매일 연재합니다. 1번이든 2번이든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무지하다고 비판하거나 악마화하는 대신 그 선택의 이유를 들어보며 상대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자는 취지입니다.
원조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로 지난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감사 인사를 전할 정도로 여론전에서 큰 공을 세웠던 문파 셀럽 '더레프트'가 이번 대선에서는 왜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아닌 윤석열 후보를 찍었는지 직접 그 이유를 밝힙니다. 더 많은 관련 칼럼은 중앙일보 사이트 나는 고발한다 섹션(www.joongang.co.kr/series/11534)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9대 대선 후 문재인 당선인이 직접 감사 인사를 할 정도로 더레프트는 핵심 문재인 지지자였다. 그랬던 그가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지난 19대 대선 후 문재인 당선인이 직접 감사 인사를 할 정도로 더레프트는 핵심 문재인 지지자였다. 그랬던 그가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지난 19대 대선 당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담긴 '파란을 이어가자'라는 포스터로 친문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까지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한 익명의 트위터리안 더레프트(@1theleft)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대한 전략적 지지는 이번 20대 대선 내내 줄곧 큰 화제였다.
현근택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이 지난 1월 더레프트를 포함한 소위 문파(문재인 대통령 지지자)가 이재명 후보의 거짓 딥 페이크 욕설 영상을 제작할 거라는 음모론을 제기하자, 더레프트는 곧바로 '나다, 짜근당원! 윤석열 찍으면 현근택 너 때문일 줄 알아라!'는 포스터를 만들었다. 설마 했던 일은 현실이 됐다. 문파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공개지지했고, 더레프트 역시 19대 못지않은 화력을 뿜으며 윤 후보를 지원사격 하는 포스터를 연이어 공개했다.

[더레프트 트위터 캡처]

[더레프트 트위터 캡처]

이에 민주당 진영은 신상털이로 맞섰다. YTN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이동형은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선거가 끝나더라도 똥파리들 실체를 밝혀야 한다, 조만간 신상이 드러날 것"이라며 더레프트가 지난 10여년간 밝히지 않았던 출생연도와 성별을 공개했다. 이에 원희룡 국민의힘 정책본부장이 더레프트 변호에 나섰다. 피아(彼我) 구분이 사라진 생경한 장면이었다. 대선이 끝난 후 수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더레프트의 선택 이유를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19대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이 SNS를 통해 직접 감사 인사를 했다. 대통령 본인과 개인적 만남도 있었나. 

"과거부터 지금까지, 현직 정치인 누구도 만난 적이 없다. 몇 차례 식사요청이 있었지만 모두 사양했다. 코로나 19 탓으로 청와대 관람도 한 번 못 해봤다. "

이재명 후보는 문 대통령의 민주당이 낸 후보다. 문파인데 왜 국민의힘 윤 후보를 지지했나. 

"정치는 서비스이고 후보는 상품이다. 투표 한장의 가치가 6787만원이라고 한다. 비싼 표로 잘못된 상품을 사면 안 된다. 이 후보는 전과 4범에 도덕적 결함이 차고 넘치는 정치인이다. 여기에 경선과정의 사사오입 논란, 박수 추대로 당원들 희망은 소멸했다. 민주가 상실된 민주당에서 당원들은 겉돌며 헤맸다. 수용할 수 없는 비논리성에 대한 저항이 윤 후보 지지의 형태로 나타난 거다. "

[더레프트 트위터 캡처]

[더레프트 트위터 캡처]

민주 상실한 민주당 

윤 당선인은 어떻게 평가하나. 

"아직은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다만 정치신인답지 않게 배우고 익히는 속도가 빠르다. 남다른 소통능력도 돋보인다. 우선은 기대를 갖고 있다. 뜻이 가파르되 겉보기와 달리 부드러운 면이 많은 분 같다. (TV 예능에서 선보인) 계란말이 만드는 솜씨는 배우고 싶다. "

윤 후보 공개 지지로 민주당 의원들과 김어준·이동형 등 민주당 스피커들로부터 신상털이 고초를 겪었다. 어느 정도인가.

"윤 당선인 배우자 김건희씨가 방송인 김어준씨에 대해 한 얘기가 있다. '자기의 사업가'라고. 그 의견에 동의한다. 유튜버나 팟캐스트 진행자들은 정치 자영업자다. 어떤 이념적 일관성이나 완결성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나 같은 손님이 요란한 포스터를 들고 나타나니 장사에 방해가 된 거다. 팔면 안 되는 상품을 팔면서, 그걸 지적하니 속이 쓰렸을 거다.

[더레프트 트위터 캡처]

[더레프트 트위터 캡처]

신변 위협이 상당하다. SNS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폭언과 욕설, 협박이 있었고 내 신상을 추적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주소·전화번호 모두 바꾼 지 오래라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가족 안위는 염려된다. 취재진 폭행, 당원 폭행, 정치인 폭행과 협박·저주 등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의 폭력성은 심각한 수준이다. 주의하면서 필요한 사안은 모두 법적 대응을 할 예정이다. "

폭력 심각…주소 전화 바꿔

문 정부 초기 문 대통령은 '양념' 표현으로 비판받았다. 이건 어떻게 생각하나. 

"성향에 따라 열성적 지지자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법의 허용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언론에선 구분하지 않지만 문 대통령 지지자와 이재명 후보 지지자는 결이 다르다. 이 후보 지지자들이 일상적으로 쏟아내는 협박·욕설·폭력은 ‘양념’이 아니라 ‘테러’다. 그런 자들의 광기 서린 눈동자에 비치는 대동세상(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 "

국민의힘 원희룡 본부장의 변론 도움을 받기로 한 이유는.

"신상 공개 위협을 받았을 때 원 본부장이 먼저 보호해주겠다고 나섰다. 내 트위터를 선팔(먼저 친구신청)했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연락했다. 지금도 바쁜 와중에 나를 포함해 민주당으로부터 고발당한 민주당원들의 법적 대응에 함께 해주고 있다. 아직 법적 다툼은 시작하지 않았지만 여러모로 감사한다. "

간발의 차이로 윤 후보가 당선됐다. 본인을 포함해 문파의 영향이 얼마나 될까.

"0.73%. 24만7077표 차이다. 민주당으로부터 ‘대깨문’ ‘한 줌’이라는 멸칭으로 모욕당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분노의 표출일 수도 있다. 또한 윤 후보가 지역주의를 넘어서길 바라는 호남 시민들의 가슴 시린 소신투표일 수도 있다.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한 평범한 시민들의, 작지만 간절한 열망이 담긴 표가 이뤄낸 승리이기도 하다. 나뿐 아니라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 모두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

대장동 수사 이뤄져야 

국민의힘과 민주당에 각각 바라는 바가 뭘까.  

"박빙의 승리가 주는 함의에 대한 숙고가 더 깊어야 한다. 승자 독식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이로운 넌(non) 제로섬을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 시대가 달라졌다. 국민의힘은 품격 있는 여당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원칙을 지키고 국민과 소통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국민은 혐오의 언어에 지쳐있다. 민주당의 패배를 반면교사 삼아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정당으로 발전해야 한다. 또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대장동 수사’와 ‘혜경궁 트윗’에 대한 재조사는 온전히 이뤄져야 한다. 민주당은 이번 패배를 발판으로 삼아 뼈를 깎는 쇄신을 하기를 바란다. "

처음 주목받은 2010년 이후부터 이번 대선까지 활약이 대단하다. 아무 보상 없이 왜 이런 일을 하나.

"지인들로부터 혼이 많이 났다. 뭐 하나 얻는 것 없이 왜 그러느냐는 질타가 이어졌다. 굳이 답변하자면 즐겁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수선해서 난처하기도 하지만 창작자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작품에 메시지를 담는 일보다 재밌는 게 또 있을까. 나는 디자이너도, 카피라이터도, 광고인도 아니다. 부족한 내 작품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같이 흥을 주고받는 게 즐겁고 감사할 따름이다. 또 누군가를 응원하는 일이 재밌기도 하다. '덕후'의 ‘덕질’인 셈이다."

난 디자이너 아니야 

더레프트 트위터

더레프트 트위터

본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나.

"나는 여전히 ‘더레프트’다. 하지만 진보의 스펙트럼은 넓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왼쪽일 수도, 오른쪽일 수도 있다. 좌우만 볼 게 아니라 위아래, 앞뒤도 봐야 한다. 어떠한 주의보다 사람이 먼저이고, 진영논리보다 상식이 먼저다. 진보라도 보수를 응원할 수 있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극단주의를 멀리해야 한다.
과거 대한민국은 지역주의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진영논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좌우·세대·성별 편 가르기로 이익을 얻는 건 기득권 정치인과 언론뿐이다. 공중파를 비롯해 중앙일보 같은 주류 언론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부 언론이 자기 진영을 위해 가짜뉴스를 마구 생산한 결과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5년 연속 최하위다. 그 결과 유권자들은 자극적인 유튜브를 신봉한다. 저렴한 언어와 진영논리 탓에 정치문화는 더 낙후됐다. 반성이 필요하다. 이번 대선은 국민 모두에게 진영논리 극복이라는 과제를 던져준 선거다. "

짧은 시간에 어떻게 다수의 고퀄리티 작품을 내놓는지 궁금하다.

"가장 중요한 건 ‘몰입’이다. 한 가지 테마를 정하면 밥 먹을 때도, 숨 쉴 때도, 걸어 다닐 때도 완전히 몰입한다. 거리에 널린 간판, 지나가는 자동차, 일상의 모든 순간이 하나의 기호이자 상징으로 바뀌고 건물은 각각의 레이어로 변환돼 머릿속에 들어온다. 아이디어 구상이 끝나면 제작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

민주당에 민주주의가 돌아올 때 다시 지지 

당분간 민주당 지지를 거둘 것인가.

"나는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민주당에 민주주의가 있다면 지지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정당도 지지할 수 없다. "

마지막으로, 여전히 문 대통령을 지지하나. 이낙연 전 의원이 대선 후보가 됐다면 어땠을까. 

"문 대통령을 향한 지지는 흔들림이 없다. 이낙연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나왔다면 응원했을 거다. 그러나 경선 때 사사오입 논란 없이 결선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선택받았다면 설령 그에게 반감을 가졌던 상당 수 당원들도 승복했을 거라고 본다. "

하고 싶은 얘기가 남았나. 

"혹시라도 '변심'이라는  표현은 안 썼으면 한다. 애초에 나같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이재명을 단 한번도 지지한 적이 없다.
또 이 인터뷰는 더레프트 개인의 의견일 뿐 문 대통령 지지자 전체의 의견을 반영하는 게 아니라는 걸 밝히고 싶다. '문파'는 모두 각 개인으로 존재할 뿐 대표자가 없기 때문에 혹여라도 내가 그들을 대표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