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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도 방향도 ‘묻지마’, 콘클라베 장막 뒤엔 ‘친명’ vs ‘친낙’ 2파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민생개혁법안 실천을 위한 상임위원장 및 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민생개혁법안 실천을 위한 상임위원장 및 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의원은 출마한답니까?” “◇◇◇ 의원은 접었다네요.”

172석 거야(巨野)가 될 더불어민주당에선 의원들이 서로 원내대표 후보를 수소문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열흘 앞(25일 잠정)으로 다가온 원내대표 선거를 ‘콘클라베(Papal conclave·교황선출투표)’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지난 12일 결정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별도의 입후보 절차없이 선거 당일에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172명 의원 중 자신이 지지하는 1명의 이름을 적어 내는 방식이다. 같은 방식의 투표를 과반(87표 이상)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 윤호중 비대위는 이같은 큰 틀만 정했을 뿐 아직 결선투표 도입 여부 등 세부 시행 방침은 확정하지 못했다. 카톨릭에선 추기경단이 3분의 2이상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같은 방식의 비밀투표를 반복한다.

입후보 절차가 사라져 하마평이 돈 의원들 중 누가 진짜 출마 의사를 가졌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지난 13일 비대위는 의원 전원에게 “세부방침이 정해질 때까지 공개적인 출마 표명이나, 공약 등의 메시지는 삼가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따라 원내대표 선출을 희망하는 의원들이 SNS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약·비전을 제시하거나 선수(選數)별 모임이나 개별 의원을 찾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하는 풍경도 사라졌다.

이번 주중 세부방침이 정해지더라도 ‘홍보 자제령’은 선거일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김영주 선관위원장은 1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선거운동이 활발해지면) 계파색이 드러나는 선거가 되기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 선거 당일 1차 투표 후 다수표를 받은 이들의 정견발표 정도는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당내에선 깜깜이 선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도권 3선 의원은 “새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야당 민주당’의 밑그림을 그려야 하는 중책을 맡는다”며 “더 센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콘클라베 방식 탓에 자칫 인기투표가 될 수 있다. 친소관계가 표심에 결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물밑에선 계파갈등 심화…‘친낙’ vs ‘친명’ 대리전 될까

‘조용한 선거’를 치르겠다는 윤호중 비대위의 의도와 달리 물밑에선 이미 계파 간 격돌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는 게 복수의 민주당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사실상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전 대표 캠프의 총괄본부장을 지낸 박광온 의원(3선·수원 정) 대 이재명 전 경기지사의 비서실장을 맡았던 박홍근 의원(3선·서울 중랑을)의 양파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새 원내대표 출마의지를 타진하고 있는 박광온 의원(왼쪽)과 박홍근 의원. 연합뉴스

민주당 새 원내대표 출마의지를 타진하고 있는 박광온 의원(왼쪽)과 박홍근 의원. 연합뉴스

박광온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새 정부가 민주당의 가치를 훼손하려고 하면 단호하게 맞서 싸우는 한편 다수당으로서 책임있게 행동하도록 이끌 것”이라며 “새 정부의 여성가족부·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폐지는 동의할 수 없지만 과학기술 부문 확대 등에선 충분히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낙연계 의원들은 물론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등의 이력으로 친문(친문재인) 그룹 전반에서 받고 있는 신뢰가 박광온 의원의 기반이다.

박홍근 의원은 이 전 지사와의 거리를 급격히 줄인데다 당내 최대 의원 연구모임인 ‘더좋은미래’, 구 박원순계 등이 우군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박홍근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전 지사가 대선에서 약속한 정치개혁 등을 진정성 있고 속도감 있게 처리할 것”이라며 “원내수석과 예결위 간사를 하면서 야당과 협상해본 경험을 살려 민주당이 지켜야 할 것과 따져 물어야 할 것을 분명히 구분하는 리더십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새 원내대표 출마를 타진하고 있는 안규백(왼쪽) 의원과 김경협 의원. 연합뉴스

민주당 새 원내대표 출마를 타진하고 있는 안규백(왼쪽) 의원과 김경협 의원. 연합뉴스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4선의 안규백(서울 동대문갑) 의원과 이해찬 전 대표와 가까운 3선의 김경협(경기 부천갑) 의원은 ‘인물론’ ‘견제론’으로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안 의원은 “새로운 민주당을 위해선 각 계파를 포용할 수 있는 경륜 있는 원내대표가 필요하다는 분들의 지지를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원내대표 선거가 민주당 대선 경선 경쟁자들의 대리전 양상으로 흐르면 당이 쪼개질 것이라는 위기감을 호소하며 출마를 권유한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후보 과정이 없다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제3의 인물이 다크 호스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초·재선 그룹의 신뢰를 쌓아온 ‘원조 친노’ 이광재 의원도 도전 의사는 불분명하지만 자의반 타의반 다크 호스로 분류되고 있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초·재선 그룹에서 원내대표가 나올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의 이준호 대표는 “콘클라베 방식이라는 형식적 파격이 당장의 갈등 노출을 피하는 경로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당내 소통이 제한돼 대선 패배 후유증을 실질적 극복하는 데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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