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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젠더·효율 뒤죽박죽된 ‘여가부 폐지’론…찬반 공방 과열

중앙일보

입력

“부처의 역사적 소명을 다 하지 않았는가….”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여성가족부 폐지와 관련해 날린 ‘직격탄’이다. 그의 발언은 지난 1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 한 줄 공약 실천 의사를 재확인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 여부를 두고 시민사회 곳곳에서 찬반(贊反) 공방이 거세다. 정치적 입장차나 젠더 갈등, 부처 효율성 등 논란이 과열되는 양상이다.

바른인권여성연합 등 47개 단체로 구성된 '찐(眞)주권여성행동'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바른인권여성연합 등 47개 단체로 구성된 '찐(眞)주권여성행동'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남녀 갈등 깊어져” vs “차별·폭력 용인해”

여가부 폐지 여부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 및 시민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여가부가 하는 일은 다른 부처에서도 할 수 있다’는 역할론뿐만 아니라 ‘2번남(기호 2번을 찍은 남성)용 공약’이라며 젠더 갈등 구도를 짚는 등 다양한 주장이 있다.

직장인 류모(35)씨는 “여가부의 각 기능은 전문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다른 부처에서 하는 게 효율적 관점에서 더 좋아 보여 폐지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30대 여성 A씨는 “여성 권리 증진 및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여가부를 폐지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계의 목소리도 엇갈리고 있다. 47개 여성단체로 구성된 ‘찐(眞)주권여성행동’은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가부는 페미니즘을 부추기고, 국민 세금을 좀먹는다”고 강조했다. 여가부가 존재하는 한 남녀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반면 여성단체 120여개가 연대한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은 성명을 통해 “여가부 폐지는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강화하고 용인하는 위험한 정책이다”며 공약 철회를 요구했다. 이들은 “젠더 관점이 반영된 성 평등 정부를 만들려면 여가부 폐지가 아닌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 인선 결과 발표를 마친 뒤 마스크를 쓰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 인선 결과 발표를 마친 뒤 마스크를 쓰고 있다. 뉴스1

성별 대립 등 과열 양상

여가부 폐지 찬반 공방이 이어지면서 진영 논리나 성별 대립 등으로 과열되는 모습이 빚어진다. 한 대학교 커뮤니티에선 일부 누리꾼들이 여가부 폐지를 반대하는 의견의 글에 ‘루저’ ‘페미’ 등 단어를 사용하면서 비난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여가부 폐지와 관련해 ‘민주당을 탓하라’며 정치권을 탓하는 댓글도 눈에 띄었다.

일각에선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 지원이 축소되거나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도 나온다. 네이버 ‘지식인’에선 대통령 당선인이 결정된 지난 10일부터 이날까지 여가부 폐지 관련 글이 300여개 올라왔는데 이 중 “한부모 가정인데 여가부가 폐지되면 지원이 끊기는가”라는 우려 섞인 질문도 있었다. 원희룡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여가부 폐지로) 한부모 가정 및 성폭력 피해자 지원 등 기능이 없어진단 건 괴담이다”고 일축했다.

정부서울청사 내 여성가족부 현판 모습. 연합뉴스

정부서울청사 내 여성가족부 현판 모습. 연합뉴스

전문가들 “사안 자체 냉정하게 바라봐야”

전문가들은 다원주의에 입각해서 여가부 폐지라는 쟁점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성을 갖추고, 여가부 폐지라는 쟁점 자체를 냉철하게 봐야 한다”며 “‘다른 사람의 입장을 분쇄하겠다’는 태도를 버리고 미래지향적으로 어떤 게 득이 될지 냉정하게 봐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가부 폐지를) 남성과 여성을 나눠 남녀 문제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가족·취업·육아 등 사안별로 냉정하게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외면하려 하지 말고 이기주의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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