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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5조 팔 때 8조 샀다…동학개미 섣부른 ‘저점 베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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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증시 이탈이 심상치 않다. 외국인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하던 지난 3주간 코스피·코스닥 주식을 5조원 넘게 팔아치웠다. 개인 투자자가 8조원 가까이 쓸어담은 것과 정반대 행보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18일부터 지난 11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주식 5조968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코스닥 시장을 합치면 외국인의 순매도액은 총 5조4198억원에 달한다. 이에 코스피는 같은 기간 2744.09에서 2661.28로 3% 하락했다.

한국 주식 내다파는 외국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 주식 내다파는 외국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매도세는 삼성전자(-1조6987억원)에 집중됐다. LG에너지솔루션(-6060억원)과 현대차(-3888억원), LG화학(-3681억원), SK하이닉스(-3636억원)가 뒤를 이었다.

외국인 매도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외국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부터 국내 주식을 무섭게 팔아왔다.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54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지난해 11~12월 순매수로 돌아서는 듯했지만, 올해 들어 다시 ‘팔자’ 기류를 보였다.

그 결과 외국인의 주식 보유 비중은 쪼그라들었다. 지난 11일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2091조원) 중 외국인이 보유한 주식(666조원)은 31.86%를 차지했다. 2016년 2월 11일(31.77%) 이후 6년 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외국인 지분율은 2020년 2월 39.3%까지 늘었다가 줄곧 감소세를 보였다.

외국인이 한국 증시에서 발을 빼는 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에 따른 서방 국가의 러시아 제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예고 등 여러 악재가 겹친 결과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통화 긴축 우려가 유동성 확보와 위험자산 회피 심리로 이어져 외국인이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쪼그라드는 외국인의 코스피 주식 보유 비중.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쪼그라드는 외국인의 코스피 주식 보유 비중.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이 수출과 에너지 등 대외 의존형 경제구조인 데다,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선호 확대로 원화 가치가 하락한 점도 외국인 매도를 부추겼다. 외국인은 달러를 원화로 바꿔 국내 시장에 투자하는 만큼 원화값이 떨어지면 투자분에 대해 환차손을 입는다.

원화 약세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달러당 1188원대이던 원화값은 지난 11일 달러당 1232원으로 3.6% 하락(환율은 상승)했다. 지난 8일엔 2020년 5월 29일 이후 최저인 달러당 1237원까지 밀렸다.

한국 증시의 매력 부재가 외국인의 ‘셀(sell) 코리아’를 가중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글로벌투자분석팀장은 “최근 국내 증시에 기업 이익은 적은데 시가총액이 큰 기업이 잇따라 상장했다”며 “주식 수는 늘었지만, 주당순이익(EPS)은 증가하지 않는 시장이 외국인 입장에서 매력적이지 않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이 던진 물량은 개인 투자자가 받아내고 있다. 지난달 18일 이후 개인들은 국내 주식을 7조7816억원어치 사들였다. ‘저가 매수’에 나선 것이다. 외국인과 개인의 손바뀜이 가장 많았던 종목은 삼성전자(2조8897억원)다. SK하이닉스(6781억원)와 LG화학(5308억원) 등도 개인투자자가 쓸어담았다.

개미 군단의 ‘사자’가 계속되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개인의 실탄도 줄어든 모양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자금 성격의 투자자예탁금은 지난 10일 63조1372억원으로, 연초 대비 8조원 넘게 감소했다. 금리 인상기를 맞아 ‘빚투’(빚내서 투자)도 주춤해졌다. 같은 날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올해 들어 2조원가량 감소한 21조원대로 집계됐다.

전문가는 결국 코스피가 반등하려면 외국인의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당분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명지 삼성증권 투자정보팀장은 “지정학적 이슈도 부담이지만, 미국의 긴축 사이클에 대한 방향이 정해질 때까진 외국인 수급 개선을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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