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신 이상반응 쫓는 역학조사관…환자들은 그를 ‘변호사’라 불렀다

중앙일보

입력

“웃으면서 저를 변호사라고 부르는 분도 있어요.”
하얀 마스크로 얼굴 대부분을 가린 그는 자기 일이 변호사 업무와 닮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그의 사무실엔 각종 논문과 외신 기사 더미가 쌓여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은 뒤 나타난 이상 반응을 다룬 것들이다. 그는 “백신 이상 증상 사례를 볼 때마다 안타까워서 최대한 백신과의 인과성이 인정될 수 있게 관련 자료를 닥치는 대로 수집한다”고 했다. 일부 환자들은 자신을 대신해 이상 증상과 백신 간의 인과성을 증명하려는 그를, ‘변호사’라 부른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와 씨름하고 있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출신 김형두(34) 역학조사관 얘기다.

지난 2020년 인하대학교병원 전공의 시절 김형두씨. 사진 본인 제공

지난 2020년 인하대학교병원 전공의 시절 김형두씨. 사진 본인 제공

의료봉사로 품게 된 의사의 꿈

지난 2010년 김형두(오른쪽)씨는 인도 첸나이로 의료봉사를 떠났다. 의사라는 직업에 매료된 순간이라고 김씨는 회고했다. 사진 김형두씨 제공

지난 2010년 김형두(오른쪽)씨는 인도 첸나이로 의료봉사를 떠났다. 의사라는 직업에 매료된 순간이라고 김씨는 회고했다. 사진 김형두씨 제공

김씨는 대학생이던 2010년 인도 첸나이로 떠난 의료 봉사활동이 의사를 꿈꾸게 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당시 낯선 이국에서 성심껏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에 매료됐고 의전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힘겹게 흰색 가운을 입었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병원에서 인턴을 하면서 매일 수많은 아픔과 만났다. 여기저기 다친 채 실려 오는 환자를 보며 이 일이 의지만으로는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일이 나와 맞는 걸까.” 방황하던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동국대 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과장이던 안연순 교수였다. 안 교수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도 명예롭지만, 병을 예방하는 일도 가치 있다”며 같이 아픔을 줄여보자고 제안했다. 병동에서 일하며 만난 산업 재해 피해자의 사연이 떠올랐다.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싶었던 그는 직업환경의학과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김형두씨(우측 아래)는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를 졸업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의국에서 조촐히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사진 김형두씨 제공

지난해 김형두씨(우측 아래)는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를 졸업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의국에서 조촐히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사진 김형두씨 제공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고엽제 피해자 등등. 세상엔 그가 모르는 아픔이 많았다. 언론보도로 주목을 받는 건 극히 일부분이었다. 그마저도 잊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유년기에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한 남성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알 수 없는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의병 제대할 정도의 증상이었지만 뚜렷한 원인관계가 밝혀지지 않아 힘들어했다. 김씨는 이들의 의무기록과 증상을 모아 정리했다. 독성간염이 의심되는 사례는 특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아픔의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될 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고 싶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역학조사관으로 이어간 꿈  

김형두씨가 자택에서 역학조사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코로나19 여파로 역학조사관 회의는 대부분 비대면으로 저녁에 이뤄진다. 회의는 일반적으로 1주일에 평균 2~3회 정도 진행한다고 한다. 사진 김형두씨 제공

김형두씨가 자택에서 역학조사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코로나19 여파로 역학조사관 회의는 대부분 비대면으로 저녁에 이뤄진다. 회의는 일반적으로 1주일에 평균 2~3회 정도 진행한다고 한다. 사진 김형두씨 제공

지난해 초 김씨는 코로나19라는 또 다른 아픔과 만났다. ‘인천시 역학조사관’이란 직책을 맡으면서다. 앞서 인천시는 작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출신 역학조사관을 공중보건의로 모집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관련 역학조사가 중요해질 거라 판단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한 김씨는 지원서를 냈고 인천시청으로 일터를 옮겼다.

김씨는 주로 보건소로 접수된 백신 이상 반응 사례를 심층 조사한다. 백신 접종자의 의무기록을 살피고 진료 의사, 환자와 면담한다. WHO, 미국 CDC, 외국 사례보고 등을 토대로 백신 접종과 이상 증상이 관련 있는지를 판단한다. 질병관리청이 최종 판단을 내리기 위한 역학조사서를 만드는 게 그의 일이다.

지난해 김지용씨(오른쪽)가 대한작업치료사협회 부회장과 함께 재활에 힘쓰고 있다. 사진 김두경씨 제공

지난해 김지용씨(오른쪽)가 대한작업치료사협회 부회장과 함께 재활에 힘쓰고 있다. 사진 김두경씨 제공

그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은 뒤 쓰러진 김지용(27)씨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지용씨는 지난해 3월 직장에서 AZ 백신을 맞은 뒤 쓰러졌다. 재활병원 근무자였기에 우선 접종을 받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정부는 인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회초년생의 사연이 안타까웠던 김형두씨는 팔을 걷어붙였다. 해외 AZ백신 관련 연구를 샅샅이 살폈고 인과성 입증을 위해선 어떤 서류가 필요할지 지용씨 가족과 머리를 맞댔다. 수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정부는 지용씨를 중증환자 의료비 지원대상으로 다시 판정했다.

김씨는 2년 뒤 공중보건의 생활이 끝난 뒤에도 백신 이상 증상을 파고들겠다고 했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백신 이상 반응 등을 연구할 계획이다. 지난 11일 더는 진로를 고민하지 않는다는 그의 목소리엔 힘이 가득했다. “코로나19 백신이란 이  새로운 존재가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몰라요. 그걸 연구하다 보면 또 다른 질병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