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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당선인 “한·미·일 공조 강화” 기시다 “북핵 등 긴밀 협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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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9호 04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사무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사무실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1일 미국·중국·일본 측과 잇따라 접촉하며 외교 행보를 이어갔다. 윤 당선인은 이날 첫 일정으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오전 10시부터 15분가량 통화했다. 전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한 데 이은 외국 정상과의 두 번째 통화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윤 당선인은 한·일 양국이 동북아 안보와 경제 번영 등 힘을 모아야 할 미래 과제가 많은 만큼 협력하자고 당부했다”며 “또 양국 현안을 합리적이고 상호 공동 이익에 부합하도록 해결해 나가고 취임 이후 한·미·일 3국이 한반도 사안에 대한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과 기시다 총리는 이른 시간 내 만나도록 노력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일본 NHK와 교도통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통화 뒤 기자들과 만나 “윤 당선인에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함께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며 “윤 당선인도 ‘한·일 관계를 중시하고 있으며 관계 개선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북한 미사일과 핵 개발 문제,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등에 대해서도 윤 당선인과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는 따로 언급되지 않았고,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합심해서 풀어보자는 취지의 대화가 주로 오갔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직후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와 통화했던 상황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반응이 나왔다. 당시엔 아베 총리가 위안부 합의에 대한 이행을 강조하자, 문 대통령이 상반된 입장을 밝히는 등 차가운 기류가 흘렀다.

정치권에서는 또 문 대통령이 취임 첫날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과 통화하고 둘째 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총리 순으로 통화한 것과 달리 윤 당선인이 미국·일본 순서로 통화한 것을 두고 “한·미·일 관계를 복원하려는 의지”라는 해석도 나왔다. 윤 당선인은 대선후보 시절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겠다”며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전제로 하는 한·일 관계 개선’을 공약했다.

윤 당선인은 기시다 총리와의 통화 후 오전 11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접견했다. 윤 당선인이 한·미·일 관계 복원을 강조하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추가 배치를 공약하는 등 한·중 관계의 기류 변화가 예고되는 상황에서 이뤄진 접견이라 정치권의 이목이 쏠렸다.

싱 대사는 시 주석이 전날 보내온 축전을 윤 당선인에게 전달했다. 시 주석은 축전에서 “대통령 당선에 진심 어린 축하와 따뜻한 축언을 표한다”며 “양국은 가까운 이웃이고 중요한 협력 동반자”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 당선인은 “책임 있는 중국의 역할이 충족되길 우리 국민은 기대한다”며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양국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고 김 대변인이 전했다.

윤 당선인은 또 이날 싱 대사에게 중국이 최대 교역국임을 강조했다. 윤 당선인이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 중국이고, 중국의 3대 교역국이 우리”라고 하자 싱 대사는 “내후년에는 2대 교역국이 될 수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이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은 싱 대사에게 “검찰에 있을 때부터 한·중 사법 공조를 할 일이 많아서 싱 대사를 봐왔다. 늘 친근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은 이후 오후 2시30분부터 크리스토퍼 델 코소 주한 미국대사대리를 접견했다. 윤 당선인은 “한국의 유일한 동맹 국가가 미국”이라며 “서로의 안보를 피로써 지키기로 약조한 국가”라고 강조했다. 이에 델 코소 대사대리는 “올해는 한·미 수교 140년이 된 해로, 한·미동맹이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화답했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바이든 미 대통령이 오는 5월로 예상되는 ‘쿼드(Quad)’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할 때 한국에도 들러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시 주석이 윤 당선인에게 보낸 축전에서 사용한 ‘초심’이란 표현이 외교가에 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대선 기간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한 윤 당선인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시 주석은 이날 싱 대사를 통해 윤 당선인에게 보낸 축전에서 “올해는 양국 관계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라며 “중국은 한국과 함께 수교의 초심을 굳게 지키고 우호 협력을 심화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안정적인 발전을 촉진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수교의 초심을 지키자’는 말이 표면적으론 우호 관계를 유지하자는 뜻이지만 윤 당선인의 한·미동맹 강화 기조를 감안할 때 이를 주시하고 있는 중국이 던진 견제구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드 문제와 관련해 상황 변경을 일으키지 말라는 경고의 뉘앙스가 담겼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사드 도입을 결정한 뒤 시 주석이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한다’는 뜻의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정상회담에서 언급한 것과 이날 ‘초심’ 발언이 같은 맥락이란 분석도 나온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이날 사설을 통해 “한국은 사드 배치를 내정이나 주권 문제로 간주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편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글로벌타임스는 “사드 체계는 한국의 방위 한도를 초과했으며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이는 한국을 더 불안정한 상황에 빠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 당선인의 승리로 사드 기조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부각되자 사전 대응에 나선 셈이다. 그만큼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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