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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도 일당 15만원" 일꾼 없는 농촌 서글픈 '유학생 농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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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충북 괴산의 한 하우스에서 외국인계절근로자로 입국한 외국인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사진 괴산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충북 괴산의 한 하우스에서 외국인계절근로자로 입국한 외국인이 농사일을 하고 있다. [사진 괴산군]

“90㎞ 거리서 일꾼 공수” 속 타는 농가들

경북 영양군에 사는 정모(51)씨는 다음달 파종을 앞두고 근심이 크다. 오는 5월쯤 외국인 계절근로자 7명이 농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밭 고르기, 비닐 씌우기 등을 혼자서 해야 해서다. 정씨는 5만6100㎡ 규모 농장에서 고추·수박 농사를 짓고 있다. 농장 규모가 제법 크지만, 영농철만 되면 일꾼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곤 한다.

그는 “마을 주민 대부분은 나이 70세를 넘긴 고령이라 일을 맡길 수 없다”며 “농번기에는 영양군에서 90㎞나 떨어진 대구나 구미, 의성에 있는 인력사무소에 부탁을 하는데 이마저도 일당에 웃돈 3만 원을 더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씨 농장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오는 4월 20일에 한국에 들어온 후로도 2주간 격리를 해야 한다. 정씨는 “원래 4월 말에 고추 파종을 마쳐야 하지만, 외국인 투입 시기에 맞춰 일정을 일주일 정도 늦췄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또다시 일꾼 구하기 전쟁이 시작됐다. 날이 갈수록 농촌 인구는 줄고, 고령화가 심해지는 탓이다. 정부는 영농 현장에서 매년 “일손이 부족하다”는 한탄이 쏟아지자, 외국인 계절근로자를 올해 2배 확대했다. 자치단체가 나서 외국인 유학생을 농촌 현장에 보내는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제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가 충북 제천의 한 농가에서 ‘생산적 일손봉사 사업’을 통해 농가 일손을 돕고 있다. [사진 제천시]

제천시종합자원봉사센터가 충북 제천의 한 농가에서 ‘생산적 일손봉사 사업’을 통해 농가 일손을 돕고 있다. [사진 제천시]

봄바람 불자 ‘일꾼 구하기 전쟁’ 

충남 청양군은 최근 순천향대와 외국인 유학생 농촌인력교류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순천향대에 재학 중인 외국인 대학생 1200여 명을 휴일과 방학 기간 농가에 투입한다는 내용이다. 학생들은 농촌 봉사활동을 하며 청양군의 관광문화자원 체험, 외국어 교육 등 재능기부 등을 한다.

전창완 순천향대 연구산학부총장은 “농촌의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학생들이 번갈아 가며 농사일을 돕도록 했다”며 “외국인 학생들은 우리 농촌의 현실을 이해하고 문화교류의 폭을 넓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청양군 인구는 2017년 3만2800명을 기록한 이후 매년 500여명씩 줄어들고 있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떠나면서 지금은 3만390명까지 감소한 상태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 666만1000명이던 우리나라 농가 인구는 2000년 403만1000명으로 200만 명 넘게 줄었다. 2005년 343만4000명, 2010년 306만3000명, 2015년 256만9000명, 2020년 231만4000명 등으로 30년간 65% 정도 줄었다. 전체 농가 인구에서 만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970년 4.9%에서 2019년 46.6%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5월 강원 양구군 농산물가공지원센터에서 우즈베키스탄 계절근로자 60여 명이 각 농가에 투입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강원 양구군 농산물가공지원센터에서 우즈베키스탄 계절근로자 60여 명이 각 농가에 투입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인 근로자 1만1550명…지난해 2배 확대

충북 진천에서 벼농사를 짓는 장모(55)씨는 “시골에 사람이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의존하는 형편”이라며 “지난해 일당 9만 원 정도 했던 외국인 품삯이 올해 14~15만 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그는 “농사는 다 때가 있기 때문에 인력 수요가 한꺼번에 겹친다”며 “올해는 또 얼마나 웃돈이 오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 외국인 계절근로자 입국 규모를 1만1550명으로 확대했다. 지난해 상반기(5342명)의 2.1배 수준이다. 법무부는 앞서 전국 88개 자치단체(3575개 농ㆍ어가, 44개 법인)에서 희망 인원을 신청받았다. 한 농민은 “코로나19로 인해 2년 동안 외국인계절근로자를 받지 못했다. 올해는 정상 운영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달짜리 외국인 단기 일자리도 공급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다음 달부터 320명 규모의 ‘공공형 계절근로’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이 사업은 농가에 1개월 미만의 단기 근로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올해 전북 무주(100명), 전북 임실(40명), 충남 부여(100명), 경북 고령(80명) 등에서 단기 외국인 계절근로자 일을 돕는다.

농축산부 관계자는 “기존 외국인 계절근로자 고용 제도는 3개월(C-4) 또는 5개월(E-8)간 직접 고용하는 방식만 허용돼 1개월 미만의 단기 고용인력이 필요한 농가는 활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코로나19 발생 후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단기 고용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강원 양구군 농산물가공지원센터에서 우즈베키스탄 계절근로자들이 농민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강원 양구군 농산물가공지원센터에서 우즈베키스탄 계절근로자들이 농민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알선인, 수수료 15% 떼가…“인건비 부담 줄여야” 

농촌 일손 부족 해결을 위해 각 자치단체는 대개 농번기 공무원 일손돕기를 추진한다. 전남도의 경우 도 홈페이지에 농촌일손돕기 알선 창구를 마련해 인력을 투입한다. 각급 기관 단체 300여 곳이 희망지역을 선택하면 일손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충북도는 자원봉사 개념의 ‘생산적 일손봉사’ 사업을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개인이나 기관·단체 회원들이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서 하루 4시간 일하고 봉사 수당 2만5000원을 받는다. 전남 나주에는 농산업인력중개센터 3곳이 운영되고 있다. 농협과 농업회사가 확보한 일손을 별도 수수료 없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이 같은 농산업인력중개센터는 전국에 70개가 있다고 한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운영비를 지원하는 공공주도 농산업인력중개센터를 현재 70곳에서 140곳 이상으로 늘리면 일손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며 “중개센터가 운영되면 사설 알선인이 10~15% 정도 떼가는 수수료도 없어져 농가 인건비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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