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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진보·보수 아우르는 대북 정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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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재홍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정재홍 국제외교안보에디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기간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에 기반해 원칙과 일관성 있는 남북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중심 외교’가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대북 굴종이 아닌 강력한 국방력에 기반한 평화를 강조했다. 문 정부가 지난 5년간 남북 관계 개선에 정성을 들였음에도 올해 아홉 차례에 걸친 북한 미사일 도발은 대북 정책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김성한 외교안보정책본부장(전 외교부 제2차관)은 최근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대북 정책에서 비핵화가 최우선 순위이고, 한·미 동맹은 절대 훼손돼선 안 되며, 북한 인권 문제를 등한시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북한과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오는 5월 들어설 새 정부가 북한 비핵화에 정책의 초점을 두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한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한 항상 생존의 위협에 시달린다. 문제는 비핵화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느냐이다. 북한은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때 수십만 명이 굶어 죽었음에도 핵무기 개발을 지속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미사일 실험에 따른 국제사회 제재와 코로나19 국경 봉쇄로 인한 경제난 속에서도 핵·미사일을 고도화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정권 안보를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고도 개발한 핵·미사일을 포기하게 하는 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북한 비핵화 위해선 협상이 현실적
국민 동의해야 대북정책에 힘 실려
진영 가리지 않는 인재 발탁 중요

북한이 지난 1월 30일 시험발사 한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북한은 올해 들어 아홉 차례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지난 1월 30일 시험발사 한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북한은 올해 들어 아홉 차례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

북한 비핵화를 위해 김정은 정권이 붕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고난의 행군 시기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 정권 붕괴설이 한국과 미국 등에서 유력하게 제기됐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가 김정은 정권의 체제 안정성이 높아 붕괴 가능성이 작다고 평가한다.

북한 비핵화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실현되는 게 현실적이다. 북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해제, 경제 지원을 맞바꾸는 형식이 될 것이다. 그런데 북한 입장에서 애써 개발한 핵무기를 일시에 다 내놓으라고 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먼저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을 동결하는 대가로 대북 제재를 어느 정도 풀어주는 식의 협상이 필요하다. 이후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고 핵 사찰을 어느 정도 허용한다면 대폭적인 대북 제재 해제와 경제 지원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체제에 편입된다면 경제 발전 재원을 더욱 쉽게 마련할 수 있다.

이런 비핵화 협상에 대해 많은 국민은 북한이 기존에 개발한 핵을 그대로 두고 핵·미사일 동결과 대북 제재 완화와 경제 지원을 맞바꾸는 건 용납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나 북한이 천신만고 끝에 개발한 핵을 일시에 폐기할 거라고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끌려다니는 정책으로 일관한 것은 잘못이었으나 대화와 협상을 통한 비핵화를 달성하겠다는 전략은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대북 정책에서 국방력을 강조했는데 이에 못지않게 대화·협상에도 힘을 실어야 한다. 보수 정권이 원칙을 지키면서도 북한과의 대화·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보수·진보의 지지를 받는 힘 있는 대북 정책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한국의 대북 정책은 정권에 따라 왔다 갔다 하며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진보 정권에선 북한에 유화적이었던 반면, 보수 정권에선 강경해졌다. 그 결과 대북 정책의 성과가 쌓이지 못하고 남북 대결이라는 원점으로 회귀했다. 비핵화를 포함한 대북 정책은 한반도 평화·번영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중요한 정책이 정권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건 큰 문제다. 대북 정책의 방향을 놓고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국민 합의가 필수적이다. 그래야 정권 교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일관된 정책이 가능하다. 여론 수렴을 위해 국민 공론화 조사를 벌이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이를 실행하려면 진보와 보수를 망라한 실력자들이 새 정부의 외교안보팀에 포진해야 한다. 보수 진영에서만 사람을 발탁하면 인재풀이 협소해지고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참신한 정책을 펴기 어렵게 된다.

새 정부는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아 실패한 현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진보·보수를 포용한 통합 정부가 바람직하다. 현실적으로도 보수 일변도 정책은 국회를 장악한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되기 쉽다. 5년은 길지 않다. 성급하게 정책을 실현하려 하기보다 국민 합의를 기반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한 뒤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게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