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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젠더 갈라치기 정치, 발 붙이지 못하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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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구성원들이 회견에서 "청년 남심을 잡겠다며 대선 후보가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 글을 남기는 등 여성 혐오와 차별의 정치를 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뉴스1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구성원들이 회견에서 "청년 남심을 잡겠다며 대선 후보가 SNS에 '여성가족부 폐지' 글을 남기는 등 여성 혐오와 차별의 정치를 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뉴스1

20대 대선 결과가 초박빙이었던 이유 중 하나로 선거 막판 2030 여성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로의 결집이 꼽힌다. 깜깜이 선거 기간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에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앞선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표 결과는 불과 0.7%포인트 차이였다. 젊은 여성들이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게 후원금을 보내며 이해를 구할 정도로 ‘국민의힘 반대’를 위한 투표가 일어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앞장서 ‘이대남’(20대 남성)을 공략하려고 젠더 편 가르기를 한 데에서 초래됐다. 윤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 기간 기존 입장을 바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 공약을 SNS에 올렸다. 심지어 세계 여성의 날에도 이 공약을 재점화했다. 이에 편승해 여성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행태가 온라인에서 횡행했다.

한국 정치에서 본 적이 없던 양상에 당혹해하던 여성들은 투표일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반발했다. 선거일에 SNS에 올라온 ‘세상의 절반을 비하하고 혐오하며 부끄러운 줄조차 모르는 자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글이 대표적이다. 정치 세력이 대놓고 반(反)여성 정책을 내거는 데도 가만히 있으면 여성들은 추후 선거에서 영향력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방송 프로그램에 나온 국민의힘 선대위 인사는 20대 등 젊은 층 표를 얻기가 그동안 워낙 어려웠는데 이대남 겨냥 전략으로 그래도 선방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적절치 않은 행태라는 걸 알면서도 득표를 위해 했다는 자인과 다름없다. 하지만 젠더 갈라치기는 결국 국민의힘에 감표 요인이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윤 당선인은 20대 남성에게서 58.7%를 얻었지만 20대 여성의 58%는 이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부동산값 폭등 등으로 현 정부 정책에 반감이 컸던 젊은 층 표심의 상당수를 국민의힘 스스로 깎아 먹은 셈이다.

윤 당선인은 이번 선거로 더 깊어진 젠더 갈등을 수습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우선 젠더 관련 공약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여권 정치인들의 성 비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미흡한 점이 있었다. 이를 바로잡는 데에서 나아가 성평등위원회를 두는 등 다양한 불평등을 완화할 세밀한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 젊은 세대는 공통의 아픔을 갖고 있으면서 젠더별로 느끼는 두려움과 억울함이 있다.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는 일이 쉽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을 좋은 정책으로 돕지 못할망정 정치가 젠더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유권자는 이번에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경고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