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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60%의 대통령을 바라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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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53% 이상의 미국인이 미스터 바이든의 대통령직 수행 방식을 지지하지 않는다.’  지난 1일자 뉴욕타임스(NYT) 기사 앞머리 문장이다. 그 뒤에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하는 미국인은 약 41%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보다 이틀 전에 게재된 워싱턴포스트(WP)의 기사에서도 55%의 미국인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방식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두 신문이 대통령에게 흠집을 내려고 지지율 하락을 주요 기사로 다룬 것은 아니다. NYT와 WP는 민주당 지지 성향을 띤다.

사실 이게 정상적이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잠깐이면 몰라도 장기간에 걸쳐 절반 이상의 국민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찬성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의 제1 원칙인 다수결에 본질적으로 어긋난다. 내각책임제 국가에서는 집권세력의 의회 50% 장악을 정부 유지의 마지노선으로 삼는다. 집권세력에 내분이 생기거나 정당 간 연합이 깨져 50%가 무너지면 정부 구성을 새로 해야 한다. 아예 총선을 당겨 치르는 경우도 생긴다.

국정 지지 50% 미달은 심각한 일
과거가 이에 관대한 풍토 만들어
다음 대통령은 꼭 새 역사 열기를

우리는 대통령 지지율에 몹시 관대하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후반기 지지율이 줄곧 30%대 후반에서 40% 중반을 오르내렸는데 그게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대다수 언론도 44%로 약간 올랐다, 41%로 약간 떨어졌다는 식의 보도를 해왔다. 반대하는 국민의 비율은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반대가 51%에서 56%로 늘어났다는 식으로 제목을 뽑은 기사를 본 기억이 없다. 한국 대통령에겐 ‘제왕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절반 이상의 국민이 현직 대통령의 국정 운영 방식에 찬성하지 않는 게 보통의 일로 취급된다.

우리가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덜 예민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단임제라서 대통령이 다음 선거에 다시 나올 일이 없다. 같은 대통령제 국가라도 미국이나 프랑스에선 연임이 가능하니 처음 당선된 대통령의 지지율이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과거 한국 대통령들이 예외 없이 ‘지지율 폭망’의 과정을 거쳤기에 대통령 인기 추락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국민 성향이 생겼다. 또한 대선에서 40% 정도의 표만 얻어도 대통령이 될 수 있으니 ‘국민 50% 이상 지지’에 대한 인식이 미국 등과는 다르다.

한국 언론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중심으로(반대 여론 중심이 아닌) 보도하는 것에는 이례적 현상이기 때문인 면도 있다. 집권 막바지에 40% 초·중반을 오르내린다.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수치다. 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욕먹을 일에는 뒤로 숨으면서 광(빛) 나는 일에만 나섰기 때문이라고 혹평하는 이도 있고, 북·미 대결 위기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나름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했다고 칭찬하는 이도 있다. 문 대통령·민주당 고정 지지층의 결속, 야당의 무능과 꼰대스러움이 40%를 뒷받침해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여하튼 과거는 흘러갔고, 이제 역사의 새 장이 열렸다. 당장은 열 명 중 네 명 이상이 대통령 당선인에게 반감을 갖겠지만 집권 초기에는 지지율이 치솟을 것이다. 국민의 기대와 열망이 늘 그렇게 표출됐다. 부디 다음 대통령은 그런 초당파적 지지를 잃은 채 진영 내에 참호를 파고 그 안에 안주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독선과 불통의 정치를 피하고 중도층을 흡수해 60%가량의 안정적 지지를 임기 내내 얻기를 바란다. 인기에 연연한 정치를 하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유권자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제시한다고 표를, 마음을 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 대선에서 보여줬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집권 막바지에도 60%를 넘거나 그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얻었던 미국 대통령들이다. 우리도 그런 대통령이 있는 나라가 되기를, 적어도 지지율 50% 붕괴를 모두가 심각한 일로 생각하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