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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금강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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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사회에디터

장주영 사회에디터

한국인과 가장 친숙한 나무를 꼽으라면 단연 소나무다. 조상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쳤고, 소나무로 만든 가구나 도구를 사용했으며 죽어서도 소나무로 만든 관에 묻혔다. 수많은 문학과 미술 작품, 전설 등에도 소나무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의 모습은 올곧은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기도 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등장한다.

한국의 소나무 중에서도 금강송(金剛松)은 균열이 적으며 아름다워서 최고급 목재로 여겨진다. 금강산에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강원도 강릉·삼척, 경북 울진·봉화·영덕 등에 자생하고 있다.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붙었으며 지역에 따라 춘양목·황장목·안목송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최고급 목재로 여겨진 만큼 조선시대부터 국가가 직접 관리했으며, 궁궐이나 관청 등을 짓거나 국가 대사가 있을 때만 벌목했다.

경북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는 국내 최대의 금강송 군락지다. 500년이 넘은 보호수 2그루와 수령 350년으로 곧게 뻗은 미인송 등 1000만 그루 이상의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조선 숙종 때는 금강송을 함부로 베어내지 못하도록 봉산(封山)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1959년 정부는 이곳을 육종보호림으로 지정해 민간인 출입을 금지했다. 82년에는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했고, 현재는 제한적으로만 입산을 허용하고 있다.

이렇듯 귀중한 금강송 군락지가 하마터면 잿더미가 될 뻔했다. 지난 4일 시작된 울진 화재가 군락지 경계까지 번지면서다. 산림 당국은 군락지 인근에 저지선을 쳤지만, 8일엔 작은 불똥이 끊임없이 바람에 날리며 군락지를 위협했다. 가까스로 저지선을 지켜내면서 군락지로 옮겨붙는 불길을 막았지만, 자칫하면 수백 년 자리를 지켜온 금강송을 잃을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대통령 당선인은 5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집값 안정, 남북 긴장 완화, 코로나 방역은 물론 세대·젠더 갈등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작은 불똥이 수백 년 뿌리 내린 금강송을 위협했듯, 사소한 실수가 큰 혼란을 부를 수 있는 난제들이다. 정교하고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만 위하겠다’는 당선인의 초심을 임기 내내 지켜야 한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