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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이번엔 기표된 5만장 부실 보관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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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부천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7일 우편투표함에 있어야 할 관외 사전투표 우편물 5만 개가량이 사무국장실 플라스틱 박스 안에 쌓인 채로 발견됐다. 발견된 관외 사전투표 우편물은 지난 4~5일 기표한 용지로 추정된다. 사무국장실 CCTV는 종이로 가려져 있었다. 공직선거법 제176조에 따르면 우편투표함·사전투표함은 영상정보처리기기가 설치된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투표함에 넣기 전 우편투표물에 대해서는 따로 규정이 없지만, CCTV를 막은 채 보관한 건 위법 소지가 있다. 현장을 확인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부정행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관리가 허술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에서도 “안이하다. 법에 따라 안전하게 투표용지를 관리해야 할 선관위가 이를 방기한 점은 어떠한 변명도 통할 수 없다”(박찬대 선대위 수석대변인)는 비판이 나왔다. 선관위 관계자는 “관외 우편투표물은 참관인 입회하에만 투표함에 넣을 수 있기 때문에 통상 특정 장소에 잠시 보관했다가 당일 오후 투표함에 넣는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제주선관위 사무국장실에서도 관외 우편투표용지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선관위, 확진자 투표 뒷북대책 … 노정희는 사과 표명 없었다

부천시선관 위사무국장실 천장에 설치된 CCTV를 종이로 가린 모습. [사진 국민의힘]

부천시선관 위사무국장실 천장에 설치된 CCTV를 종이로 가린 모습. [사진 국민의힘]

“본래 보관돼 있어야 할 사전투표 보관실이 아니라 CCTV도 없어 관리실태를 확인할 길조차 없다”는 설명이다.

노정희

노정희

중앙선관위는 7일 노정희 선관위원장 주재로 긴급 전원회의를 열고 3·9 대선 본투표일에는 코로나19 확진·격리자 임시기표소를 없애고 오후 6시 이후 일반 유권자처럼 투표함에 직접 투표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선관위는 지난 5일 사전투표에서 확진·격리자는 임시기표소에서 기표하면 관리요원이 용지를 대신 투표함에 넣는 이른바 ‘전달식 투표’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소쿠리 투표함’ 등 부실 논란을 부르자 방법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선관위 측은 “오후 7시 반까지 투표소에 도착해 대기표를 받으면 이후에도 투표하도록 조치하고, 투표 관리 인력과 기표소도 최대한 늘리겠다”고 말했다.

선관위 안팎에선 “뒷북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익명을 원한 전직 선관위 인사는 “결국 인원과 기표소를 늘리겠다는 땜질식 대책이다. 확진자 투표 우려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있었는데, 왜 엉성한 대응으로 부실선거 논란을 자초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전투표를 전후해 선관위 내부 익명 게시판에도 “실무를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는 식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일반 유권자 투표가 지연될 경우 오후 6시 이후 투표하는 확진자의 투표 시간도 덩달아 늦어질 거란 우려도 나온다. 선관위 측은 “3500개가량인 사전투표소에 비해 본투표소는 1만4464곳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분산 효과로 지연이 심각하진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부천시의회 의원들이 7일 부천시선관위 사무국장실에 관외 사전투표 우편물 5만여 개가 보관된 것을 목격해 선관위 측에 시정을 요청했다. [사진 국민의힘]

국민의힘 부천시의회 의원들이 7일 부천시선관위 사무국장실에 관외 사전투표 우편물 5만여 개가 보관된 것을 목격해 선관위 측에 시정을 요청했다. [사진 국민의힘]

선관위는 이날 대책 발표 후 브리핑에서 각종 논란에 대해 해명에 나섰다. 1번(이재명)이나 2번(윤석열)을 찍은 투표용지가 아직 투표하지 않은 확진자에게 배부된 데 대해 김재원 선거국장은 “투표용지 운반 봉투를 재활용하다 보니 관리 요원이 깜빡하고 봉투에서 투표지를 꺼내 투표함에 넣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선거인에게) 교부됐다”고 설명했다.

사전투표소에서 용지를 출력한 뒤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의 본투표 참가 가능성에 대해서는 “해당 선거인이 선거 관리 요원에게 미투표 사실을 알리고 떠났거나, 출력된 투표용지가 누구 것인지 확인된다면 투표하도록 검토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수의 투표소가 용지 출력만 하고 투표하지 않은 선거인 신상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수 확진자가 본투표를 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신분 확인 뒤 투표하지 않고 귀가하면 본투표를 할 수 없다고 공지만 했어도 됐을 사안인데, 선관위 측의 안이한 판단이 화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노정희 위원장의 대응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사태가 터진 지난 5일 출근하지 않아 논란에 휩싸였던 노 위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본선거 대책 마련에 집중하겠다”고 했지만, 부실 투표 논란에는 침묵했다. 이날 긴급회의 이후에도 선관위 간부에게 질의응답을 맡기고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노 위원장이 8일 투표 독려 메시지를 내면서 대국민 사과의 뜻을 밝힐 수도 있다”고 전했지만 실제로 이뤄질진 미지수다.

정치권에서는 “세계 16위 민주국가이자 방역 모범국으로서 부끄럽다”(이낙연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 “선관위가 선거관리위가 아니라 선거관여위라는 비웃음을 사고 있다”(권영세 국민의힘 선대본부장)는 비판이 나왔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득표율 3~4%포인트 이내의 승부가 벌어진다면 당선 불복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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