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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구니 투표함…선관위발 최악 사전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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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 부실관리 논란이 3·9 대선 막판 중대 변수로 돌출했다.

확진자 폭증에 따른 사전투표 참여 규모에 대한 예측부터 실패했고 관리 미흡, 유권자 홍보 부족 등 선거관리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낸 선관위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초박빙 판세 속에 나온 이 같은 혼란이 선거 불신 논란을 키우며 대선 후 부정선거나 불복 논란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은평구 선관위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6시쯤 은평구 신사1동 주민센터에서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가 진행되던 중 유권자 3명이 ‘기호 1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기표란에 이미 도장이 찍힌 투표지가 담긴 봉투를 받았다. 이를 받아든 유권자는 강하게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투표가 잠시 중단됐다. 은평구 선관위 측은 “단순 실수”라고 했다. 확진자가 직접 투표함에 넣는 게 아니라 참관인 등을 통해 투표함에 넣는 방식을 취하다 보니 이미 투표를 마친 다른 사람에게 받아든 봉투를 잘못 배부해 생긴 혼선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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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는 확진자·격리자의 투표지를 본인이 직접 투표함에 넣는 대신 참관인 등 투표소 관계자에게 건네게 하고 해당 인사가 이를 모아 투표함에 넣는 방식을 도입했는데, 이는 현장 곳곳에서 큰 혼란을 일으켰다. 감염 위험을 줄이겠다는 의도였지만 본래 공직선거법 157조 4항은 ‘선거인은 기표 후 투표지를 접어 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투표지를 참관인 등에게 전달토록 한 선관위 방침 자체가 선거법 위반이란 주장이 나온다. 선관위의 이번 방침은 거의 홍보도 되지 못했다.

확진자 사전투표 난리난 날, 선관위원장 출근도 안했다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지난 5일 전국 곳곳에서 코로나19 확진·격리 유권자들이 겪은 투표 절차 사진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기표된 투표지. [연합뉴스]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지난 5일 전국 곳곳에서 코로나19 확진·격리 유권자들이 겪은 투표 절차 사진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기표된 투표지. [연합뉴스]

이 때문에 5일 전국의 사전투표소 곳곳에서는 확진·격리 유권자들이 “내 투표지를 왜 남에게 주냐”고 항의해 투표 관리인 등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 탓에 투표가 일시 중단된 곳도 있었다. 서울 중랑구에서 확진자 사전투표를 한 A씨(34)는 “기표한 용지를 투표함에 못 넣게 하는 건 확진자를 차별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임시 투표함으로 쓰인 가방. [연합뉴스]

임시 투표함으로 쓰인 가방. [연합뉴스]

확진자·격리자 투표지를 담은 ‘임시 투표함’이 지나치게 부실했다는 비판도 많다. 선거법 151조 2항은 ‘선거구별로 2개의 투표함을 사용할 수 없다’고 돼 있다. 투표소 1곳당 투표함 1개만 두게 했다고는 하지만, 임시 투표함으로 종이박스에 사인펜으로 ‘확진자용’이라고 써놓고 박스 입구를 훤히 열어 놓거나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는 경우가 허다했다.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투표지를 담아 거둬가는 일도 있었다. 비밀투표 원칙 훼손 논란이 나오는 대목이다.

확진자들이 오랜 시간 추위에 떨며 투표소 밖에 대기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경기도 용인시 성복동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에 참여한 이모(41)씨는 “오후 6시에 일반 유권자 투표가 종료될 때까지 바깥에서 기다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임시 투표함으로 쓰인 종이박스. [연합뉴스]

임시 투표함으로 쓰인 종이박스. [연합뉴스]

여야는 혼란을 자초한 선관위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선관위와 당국은 9일 본투표에선 확진자들의 불편과 혼선이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다만 선거 공정성 논란으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며 야권에서 제기하는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 사퇴론에 “정치 공세”라며 선을 그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에 대해 “공작에 능한 사람들이 국민의힘 지지층을 분열시키려는 획책이다”고 주장했다.

임시 투표함으로 쓰인 쇼핑백. [뉴스1]

임시 투표함으로 쓰인 쇼핑백. [뉴스1]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이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지난 5일 선관위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은 것도 논란이다. 5일 오후 10시쯤 국민의힘 김웅·김은혜·이영 의원 등은 경기도 과천 중앙선관위 청사를 항의 방문했는데, 노 위원장은 없고 사무총장 등만 있었다고 한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위원장은 왜 없느냐”는 의원 물음에 선관위 측은 “노 위원장은 비상근직이라 없다”고 답했다. 노 위원장이 법적으로 비상임직이긴 하지만 확진자 폭증세 속에 치르는 사전투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가 모두 각별한 대비를 강조해 온 만큼 노 위원장이 선관위에 나와 상황 파악을 직접 챙겼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대혼란이 벌어졌는데 중앙선관위원장이 사무실에 안 나온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논란에 유감을 표하고 “선관위가 그 경위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상세하고 충분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공정성 논란이 생기지 않게 만전을 기해 달라”고 주문했다. 대한변협은 신속한 조사와 엄중한 조치를 촉구했다.

선관위는 이날 오전 입장문을 내고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높은 참여 열기와 투표관리 인력 및 투표소 시설의 제약 등으로 인해 확진 선거인의 사전투표 관리에 미흡함이 있었다”고 사과했다. 다만 “절대 부정의 소지는 있을 수 없다”며 부정선거 의혹에는 선을 그었다.

선관위는 논란이 계속 확산되자 이날 오후 10시쯤 추가로 입장문을 내고 “안정적인 선거관리에 대한 국민의 믿음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 “확진 선거인이 자신이 기표한 투표지를 직접 투표함에 투입하는 방법 등을 포함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7일 개최되는 전체 위원회의에서 확정한 후 발표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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