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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때 자신감 주는 나만의 스타일, 그게 유니폼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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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호 18면

‘애슬레저 룩’ 선구자 닐 바렛

밀라노를 기반으로 활약중인 패션 디자이너 닐 바렛.

밀라노를 기반으로 활약중인 패션 디자이너 닐 바렛.

남자의 옷은 크게 수트와 스포츠웨어로 나눌 수 있다. 일할 때 적합한 옷이거나, 운동할 때 좋은 옷이거나.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패션 업계에는 ‘원마일웨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일상복과 운동복, 심지어 홈웨어까지 경계가 없는 옷차림을 말하는데, 그 뿌리는 ‘애슬레저 룩’에서 찾을 수 있다. 애슬레틱(athletic·운동)과 레저(leisure·여가)의 합성어인 애슬레저는 운동하기에 적합하면서 일상복으로 입기에도 편안한 옷차림을 말한다. 그런데 이게 말로는 쉽지, 실제 옷으로 구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움직임이 편한 추리닝을 비즈니스 미팅에서 입는다? 어깨 패드가 단단한 테일러링 수트를 입고 운동을 한다?

둘 다 멋진 그림으로 다가오진 않는데, 스포츠와 테일러링이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를 접목해 30년간 새롭고 흥미로운 현대 스타일의 남성복을 만들어온 디자이너가 있다. 영국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닐 바렛이다. 1999년 론칭한 브랜드 ‘닐바렛’의 수장이자 애슬레저 룩의 선구자,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할리우드의 멋쟁이 브래드 피트,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이 매니어를 자청하는 닐바렛은 ‘옷 좀 입는다’는 패션 피플 사이에서도 ‘나만 알고 싶은 브랜드’로 통한다. 화려한 로고나 독특한 문양이 없어도 ‘완벽한 스타일’ ‘기본에 충실한 옷’이라는 소리를 절로 듣게 하는 패션 DNA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닐 바렛만의 패션 DNA는 조부와 증조부가 군복 재단사 출신이라는 가업, 런던의 유명 학교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영국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하고 프라다·구찌 등 명품 브랜드에서 쌓은 커리어를 통해 확립된 것이다.

22년 FW 컬렉션. 기본에 충실한 테일러링과 핏, 스포츠웨어의 편리한 기능성을 조합한 ‘애슬레저 룩’이 특징이다. [사진 닐바렛]

22년 FW 컬렉션. 기본에 충실한 테일러링과 핏, 스포츠웨어의 편리한 기능성을 조합한 ‘애슬레저 룩’이 특징이다. [사진 닐바렛]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이 한창이던 지난 1월 17일 닐 바렛의 2022 FW 남성복 패션쇼가 열렸다. 브랜드 처음으로 진행한 온라인 쇼였는데, 온통 핑크색으로 칠해진 방에 차례로 등장한 남자모델들은 무빙워크를 걸으며 다가올 새로운 가을·겨울 의상들을 수십 벌 선보였다. 6개월간 준비한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고 잠시 휴식 중인 디자이너 닐 바렛에게 ‘현대 남성들을 위한 진짜 옷’에 관해 물었다. 다음은 닐 바렛과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번 22 FW 컬렉션을 ‘보편적인 유니폼(A universal uniform)’이라고 정의했다. ‘유니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군복·교복처럼 획일화된 옷이 먼저 떠오르는데 굳이 ‘유니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있나.
“나는 남자들이 ‘데일리 유니폼’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말하는 ‘유니폼’은 정형화된 어떤 디자인이 아니라 각자의 기분과 스타일에 따라 매일 입을 수 있고, 입었을 때 자신감을 주는 옷을 의미한다. 나는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발견하면 똑같은 것을 여러 개 구매하는 편인데 매일 옷을 고르는 수고를 덜면서도 나만의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옷을 독특하게 입는 사람들조차도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그렇다면 그게 그 사람의 유니폼이다.”
22년 FW 컬렉션. 기본에 충실한 테일러링과 핏, 스포츠웨어의 편리한 기능성을 조합한 ‘애슬레저 룩’이 특징이다. [사진 닐바렛]

22년 FW 컬렉션. 기본에 충실한 테일러링과 핏, 스포츠웨어의 편리한 기능성을 조합한 ‘애슬레저 룩’이 특징이다. [사진 닐바렛]

여전히 블랙과 네이비 컬러가 주를 이룬다.
“블랙&화이트에 한 가지 내추럴 컬러(베이지·아이보리·라이트그레이 등)를 더하는 게 디자인의 순수함을 유지하는 가장 멋진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패션쇼에서 핑크색 배경의 방을 꾸민 이유도 닐바렛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컬러이자 의상을 돋보이게 하는 팝한 컬러이기 때문이다.”
‘닐바렛 스타일’을 정의한다면.
“핵심은 ‘하이브리드’다. 테일러드 코트에 항공점퍼 소매를 부착하거나, 데님 재킷에 레이스 소재의 해군 칼라를 매치한 의상처럼 다양한 형태의 언어를 결합하고, 새롭게 조합해서 현대 남성을 위한 새롭고 편안한 유니폼을 제안하는 것이다.”
22년 FW 컬렉션. 기본에 충실한 테일러링과 핏, 스포츠웨어의 편리한 기능성을 조합한 ‘애슬레저 룩’이 특징이다. [사진 닐바렛]

22년 FW 컬렉션. 기본에 충실한 테일러링과 핏, 스포츠웨어의 편리한 기능성을 조합한 ‘애슬레저 룩’이 특징이다. [사진 닐바렛]

군더더기 없는 테일러링, 나일론 소재를 사용한 밀리터리 스타일, 러닝화를 연상케 하는 스니커즈, 고급스러운 보머 재킷, 활동성이 좋은 반바지와 스웨트 셔츠. 깔끔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닐 바렛 패션의 주요 키워드들이다. 닐 바렛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설립한 이래 줄곧 특유의 심플한 디자인 철학을 발전시켜왔다. 이는 구찌·프라다를 거치면서도 일관되게 지켜온 그만의 패션 철학이다. 그는 구찌에서 프라다로 이적해 처음 선보인 남성복 컬렉션에서 기존 남성복 시장에 없던 ‘미니멀리즘’을 제시했다(미니멀리즘의 대가로 불리는 패션 디자이너 질 샌더의 데뷔는 이 컬렉션 다음이었다). 또한 그 유명한 프라다 나일론 소재를 이용한 남성복을 처음 소개했고, 수트에 테크노 스트레치 원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테일러링에 스포츠웨어 요소를 추가한 닐 바렛의 하이브리드 수트 개발은 ‘프라다 스포츠’라 불리는 리네아 로사 라인 론칭으로 이어졌고, ‘럭셔리 애슬레저 룩’ 탄생의 출발점이 됐다.

20~30년 전 테일러링 수트와 스포츠웨어의 만남을 고민했다는 건 혁신적이다.
“테일러링에 관해서는 내가 알고 행하는 많은 것들이 할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이다. 하지만 패션에서 남성들의 격식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달라졌고, 이는 남성복의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져야 했다. 편안하고 스포티한 요소들이 가미될 필요를 느꼈고, 패션업계에서 ‘애슬레저’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전부터 이 새로운 개념의 남성복에 몰두해 왔다. 컬러만큼이나 신경 쓰는 게 원단의 선택인데 그 핵심은 형태와 기능의 조화를 찾는 일이었다. 옷이란 날렵하고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체형을 돋보이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인 만큼이나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바로 내 몸에 맞는 핏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른 체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몸에 잘 맞는 핏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잘 늘어나는 원단이 필요하다. 테일러링과 스포츠의 만남은 이 고민에서 시작됐다.”
22년 FW 컬렉션. 기본에 충실한 테일러링과 핏, 스포츠웨어의 편리한 기능성을 조합한 ‘애슬레저 룩’이 특징이다. [사진 닐바렛]

22년 FW 컬렉션. 기본에 충실한 테일러링과 핏, 스포츠웨어의 편리한 기능성을 조합한 ‘애슬레저 룩’이 특징이다. [사진 닐바렛]

가장 모던한 옷을 만들면서도, 스스로를 늘 ‘전형적인 영국인’이라고 소개한다.
“워커홀릭이기 보다는 사랑하는 친구·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길 좋아하기 때문이다. 기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그것 또한 무언가 하고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2015년 한국 방문시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는지 궁금하다.
“한국 남성들의 패션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고 트렌드에 민감한 것 같아 보였다. 스트리트·모던·클래식 등 다양한 스타일을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조언은.
“스스로에게 정직하기를 바란다. 내가 정말 괜찮아 보이는지 아닌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알아야한다. 이후에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고 단점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람의 옷차림은 보통 주변 또래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나만의 관점을 유지하고 옷을 입는 즐거움을 느끼길 바란다. 이것은 독특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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