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특허·노벨상·펜데믹…불꽃튀는 '유전자 가위' 연구의 드라마 [BOOK]

중앙일보

입력 2022.03.04 14:00

업데이트 2022.03.04 18:52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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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브레이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조은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20년 노벨화학상은 두 명의 여성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프랑스 출신으로 유럽의 여러 대학·연구소를 거친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그리고 미국 UC버클리대 소속의 제니퍼 다우드나였다.

이들의 공로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로도 불리는 정교한 유전자 편집기술(크리스퍼-Cas9)을 개발한 것. 유전자의 특정 부분을 겨냥해 잘라낼 수 있다니, 유전병을 비롯한 질병 치료에 엄청난 신무기 개발이 이어질 수 있을 터. 두 사람에 앞서 이 상을 받은 여성은 1911년의 마리 퀴리부터 겨우 5명뿐이었다.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 ⓒBBVA 재단,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 ⓒBBVA 재단,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스티브 잡스의 전기 작가로 유명한 월터 아이작슨의 신작 『코드 브레이커』는 크리스퍼 연구의 최전선에서 경쟁하고 협력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제니퍼 다우드나, 유전자 혁명, 그리고 인류의 미래'라는 부제대로 중심인물은 다우드나. 하와이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시련과 성취가 그려지는 점에서 그의 전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과학자들도 들러리나 조연은 아니다.

저자는 그와 협력 또는 경쟁을 하는 과학자들의 성장 과정과 업적은 물론 앞서 중요한 선행연구를 한 과학자들 이야기부터 차례로 펼쳐 크리스퍼 연구 전체를 큰 그림으로 그려낸다.

특히 경쟁자들 사이의 불꽃 튀는 경쟁은 긴박감 넘치는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MIT와 하버드대가 공동 설립한 브로드 연구소의 중국 태생 미국인 과학자 장펑, 멸종된 매머드의 부활을 꿈꾸는 괴짜 과학자로도 유명한 하버드대의 조지 처치 등과 다우드나가 경쟁하는 대목은 캐릭터의 구체적인 묘사와 더불어 몰입을 더한다.

장펑. ⓒJustin Knight,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장펑. ⓒJustin Knight,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조지 처치. ⓒSeth Kroll,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조지 처치. ⓒSeth Kroll,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하루라도 먼저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학술지 편집자나 심사위원을 압박하고, 때로는 덜 유명한 학술지를 택하는 전략은 기본. 연구의 선점을 주장하기 위해 일지를 기록하거나, 성과가 나오기 전에 아이디어만으로 특허 신청을 해보기도 한다.

실제로도 경쟁은 치열했다. 다우드나-샤르팡티에 연구팀의 크리스퍼-Cas9 논문이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건 2012년 6월. 이후 반년여 만에 이를 인간 세포에 적용한 연구 결과가 이어졌다. 장펑과 조지 처치부터 다우드나와 한국의 김진수 연구팀, 그리고 동물 세포에 적용한 한인 2세 케이스 정의 연구까지 포함해 2013년 1월에만 5편의 논문이 나왔다. 저자는 이를 크리스퍼 연구 등 많은 발명·발견이 위대한 개인의 독자적 성과가 아니라 "많은 집단에 의해 동시에" 이뤄진다는 의미라고도 설명한다.

제니퍼 다우드나가 실험중이 모습. ⓒAnastasiia Sapon,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제니퍼 다우드나가 실험중이 모습. ⓒAnastasiia Sapon,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특히 다우드나 측과 장펑 측은 특허출원 경쟁에서도 치열하게 맞붙어 다년간의 법적 소송을 벌인다. 한데 코로나19 팬데믹은 경쟁의 방향도, 방식도 좀 바꿔놓는다. 각 연구팀은 앞다퉈 만든 진단법을 대가 없이 공개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협력에 상당히 의미를 두는데, 사실 협력이라면 다우드나와 샤르팡티에의 공동연구 자체가 극적이다. 한 번도 같은 기관에 속한 적 없는 두 사람은 2011년 푸에르토리코의 학술행사에서 생전 처음 만났고, 불과 1년여 뒤에 노벨상감이 될 논문을 발표한다. 양쪽 연구진은 그사이 각자 밤낮이 다른 유럽과 미국에서 맞교대하듯 24시간 실험을 이어갔다.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 ⓒMiguel Riopa,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제니퍼 다우드나. ⓒMiguel Riopa,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경쟁과 협업에 더해 이 책에는 윤리적 문제라는 또 다른 드라마가 나온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나 에단 호크·우마 서먼 주연의 영화 '가타카'가 이미 예고한 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유전자 조작을 거친 출생은 새로운 차별과 계급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치료 목적의 체세포 유전자 편집과 달리 생식계열 편집은 그 결과가 자자손손 대물림된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가 더욱 커진다.

책 '코드 브레이커'에 수록된 사진. ⓒTom & Dee Ann McCarthy,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책 '코드 브레이커'에 수록된 사진. ⓒTom & Dee Ann McCarthy,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야심 찬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는 2018년 실제 쌍둥이 자매 출생으로 이어진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배우자 한쪽이 에이즈 양성인 부부의 체외수정 배아에서 HIV바이러스를 제거했다)으로 학계의 비판을 한몸에 받고 중국 당국에서도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이 책을 독파하려면 DNA와 RNA의 역할을 비롯해 몇몇 과학적 설명을 이해하는 관문을 넘어야 하는데,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대학에서 본래 문학과 역사를 전공한 데다 베스트셀러로 이름난 이 저자가 과학적 설명을 전문가들만의 난수표처럼 썼을 리 없다.

책 '코드 브레이커'에 수록된 사진. ⓒAndriano_CZ,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책 '코드 브레이커'에 수록된 사진. ⓒAndriano_CZ,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화이자 백신 개발의 피실험자로 자원하는가 하면 인간 세포 유전자 편집을, 물론 다우드나 팀원의 도움을 받는 것이지만 직접 해보기도 한다. 대학이나 연구소에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조사이어 재이너 같은 바이오해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디지털 코드의 프로그래머들이 그렇듯, 유전자 코드를 다루는 생명공학자도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 다우드니에 이끌려서든, 크리스퍼가 궁금해서든 완독의 재미가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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