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디오게임에 밀린 '레고' 살렸다…인문학에 꽂힌 혁신기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스티브 잡스가 2010, 2011년 애플 발표회 때 배경으로 했던 장면. 교양 학문과 기술이 교차하는 곳에서 창조성이 나온다는 걸 강조하는 의미다. [중앙포토]

스티브 잡스가 2010, 2011년 애플 발표회 때 배경으로 했던 장면. 교양 학문과 기술이 교차하는 곳에서 창조성이 나온다는 걸 강조하는 의미다. [중앙포토]

90년대 말 '인문학의 위기'란 말이 퍼지기 시작한 이후 20년이 지나고 기술의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인문학의 힘에 주목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특히 정보통신(IT) 등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한 혁신 기업들이 오히려 인문학을 강조하는 사례가 많다.

네이버는 인공지능(AI)이 독거 어르신 안부를 체크하는 '클로바 케어콜' 서비스를 지난해부터 시범 운영했다.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에게 AI가 전화를 걸어 대화를 하며 정서 케어까지 맡는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인문학에 기반한 'AI 윤리'다. 연구자들은 윤리적, 정서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발언을 걸러냈다. 서비스 이용자들의 90%는 '위로를 받았다'고 답했다.

자율주행차 기술에도 인문학이 필요하다. 자율주행차의 법률과 윤리는 물론, 응급상황을 판단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현대차는 자율주행차가 긴급차량을 인식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자율주행차 스스로 구급차 등 긴급차량에게 길을 양보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글로벌 혁신 기업도 마찬가지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2011년 아이패드Ⅱ를 선보이면서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애플의 DNA에는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인문학과 결합한 기술이 있다"고 말했다. 비디오게임에 밀려나던 '레고'를 살려낸 것도 인문학이었다. 레고의 부활에 성공한 컨설팅회사 레드 어소시에이츠는 인간의 삶을 관찰하는 인문학을 통해 기술 너머의 가치를 찾아냈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1월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아이오닉5(IONIQ 5)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11월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아이오닉5(IONIQ 5) 차량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강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은 "상품과 제품이 기술 그 자체만의 경쟁력으로는 생존하기가 어렵게 됐다"며 "인간이 소외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일수록 인간 중심의 가치가 반영된 제품과 기술이 주목받는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융합 연구가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예를들어 고려대와 KAIST, 한국외대가 참여해 전염병의 의학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특성까지 연구한 '통합전염학'이 주목받고 있다. 보건·의학 연구자뿐 아니라 사회학·언어학·기호학 등 인문학 연구자까지 참여해 다양한 형태의 전염병 이슈에 대응할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도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부는 과학기술 중심 연구와 차별화되는 '인문사회학 중심 융복합 연구'를 본격 지원하는 것을 올해 학술연구 지원사업의 추진 방향으로 정했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2018년 24건이던 인문사회 기반 융합연구 과제 수는 2021년 59개로 늘었다.

특히 인문사회 연구교수 지원은 단기지원보다 장기지원에 예산을 늘렸고 융복합연구 신규 예산을 지난해 14억여원에서 올해 24억여원으로 확대했다. 인문사회분야의 대학 부설연구소를 선정해 융합 연구를 하도록 하는 사업도 올해부터 시범 도입할 예정이다.

정종철 교육부 차관은 "기초학문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현장 목소리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다"며 "대학을 중심으로 한 연구생태계 회복을 위한 정책 지원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