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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 일정 당긴다…대선 전 거리두기 완화에 "정치방역 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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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 시내 한 식당에 거리두기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시스

서울 시내 한 식당에 거리두기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시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2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조기 완화를 시사하고 나섰다. 오는 13일까지 이어지는 현행 ‘사적모임 6인ㆍ영업시간 밤 10시’ 제한을 조기에 풀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확진자ㆍ사망자 수가 연일 최다치를 기록하는 등 방역 지표가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정부가 난데없이 거리두기 완화 카드를 내놔 논란이 일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일부터 이틀간 의료계ㆍ자영업자 단체ㆍ지방자치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하고, 일상회복지원위원회 전체회의를 잇따라 열어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르면 4일 오전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리는 중대본 회의에서 최종 확정ㆍ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중대본 브리핑에서 “오미크론의 빠른 전파력을 고려할 때 유행 확산 차단을 위한 거리두기 강화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확진자 자체를 억제하기보다는 중증ㆍ사망을 최소화하기 위한 관리에 주력하면서 실질적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과 내일 일상회복지원위원회 및 산하 방역의료분과위원회를 열고 현재 방역상황에 대한 평가와 거리두기 조정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며 “방역의료분과 전문가를 비롯해 관계 부처와 지자체, 자영업, 소상공인 등 여러 의견을 두루 듣고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달 1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관계자가 새 거리두기 조정안 문구가 적힌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뉴스1

지난 달 1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관계자가 새 거리두기 조정안 문구가 적힌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뉴스1

 앞서 김부겸 총리도 이날 오전 중대본 회의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서 현재의 방역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오미크론 대응 목표의 관점에서 조정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모아 나가도록 하겠다”면서 거리두기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사적모임 제한은 큰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라 늘리는데 이견이 별로 없고, 영업시간 제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놓고 격론이 오가고 있다”라고 전했다. 경제부처의 요구가 거셌다고 한다. ‘8인ㆍ11시’ ‘10인ㆍ12시’ 등의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현재 유행의 정점이 대선일 전후로 예상되는데, 중환자는 2~4주 후 추이를 봐야 한다. 현 상태에서 중환자가 최대 2500명 나올 것으로 예측되고, 2300~2500명까지는 감당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서 ‘10명ㆍ12시’로 더 풀면 중환자가 최소 10% 정도는 늘어, 의료 대응 한계치를 뛰어넘을 수있어 불안하다”라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앞서 확진자에 대한 역학조사와 밀접접촉자에 대한 격리를 중단했고, 방역패스를 폐지했다. 이에 더해 거리두기까지 대폭 완화되면 사실상 마스크 착용 외에 모든 방역 조치가 해제되는 셈이다.

전파력은 강하고 독성은 약한 오미크론 특성을 고려할 때 조만간 출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하지만 시점이 문제다. 최근 확산세가 더뎌지긴 했으나 이달 내 하루 확진자가 35만명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직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고 정점이 오지 않았다. 또 확진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치명률은 이에 반비례해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사망자 수는 연일 역대 최대치를 찍고 있다.

정부는 그간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극심해 방역을 풀어야 한다는 요구에도 “치명률이 떨어지더라도 확진자 수가 늘면 그만큼 피해가 커질 수 있어 유행의 정점까지는 방역 조치를 유지해야 한다”고 맞서왔다. 지난 24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코로나19의 엔데믹(풍토병) 전환에 대해 “전문가 의견, 그리고 방역 당국 의견을 들어 사회적 조치를 해나갈 텐데, 그렇다 하더라도 방역을 종료하기엔 코로나 종식은 이르다고 판단한다”라며 정점에 이르고 감소하면 출구 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며칠 만에 입장이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오미크론 지배하에서 장기적으로 거리두기 완화가 필요하단 입장이지만 당장 빗장을 푸는 데에 대해선 우려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자영업자 표를 의식한 정치적인 움직임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1일 대전 서구의 한 선별검사소를 찾은 시민들이 신속항원검사를 받기위해 대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일 대전 서구의 한 선별검사소를 찾은 시민들이 신속항원검사를 받기위해 대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전문가들이 모두 정점을 찍고 내려갈 때까지는 유지해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안 받아들여진다”라며 “정치적인 고려가 깔려있다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예방 가능한 중환자와 사망자를 담보로 ‘방역 도박’을 하는 것”이라며 “정점이 아직인데, 관리 가능하니까 방역을 푼다는 건 죽을 사람은 죽어도 된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치 방역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장관이 했던 말이 며칠 뒤 뒤집어지고 방역 당국의 말 바꾸기도 반복되고 있다”라며 “정치 방역이 아니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규 확진자 숫자나 기초감염재생산지수, 사망률 등이 계속 올라가며 지표가 악화하고 있다”며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에 계속 엑셀을 밟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확진자 관리에서 손을 떼겠다는 건데 방향성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방역 완화를 고려해 볼 수 있는 조건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할 때, 둘째는 중환자 발생률과 치명률이 매우 안정돼 지금보다 확진자가 더 많이 나와도 의료 체계에 문제가 없을 때, 세 번째는 고위험 환자에게 먹는 치료제 처방이 제때 이뤄지고 재택치료 중인 환자들이 안심하고 갈 수 있는 병원이 준비됐을 때다. 정 교수는 “지금은 세 가지 모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풀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지금 풀어도 큰 영향이 없을 것이란 반론도 있다. 김윤 서울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앞서 영업 시간을 밤 9시에서 10시로 연장했지만 그래서 확진자가 더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다른 나라에서도 오미크론 유행기에 적극적으로 거리두기를 한 나라가 없고, 일부에서는 전파력이 빨라 거리두기는 큰 효과 없다는 주장도 나왔던 만큼 지금 풀어도 된다고 본다”라고 했다. 그는 “다만 정점이 확인된 뒤라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풀 수는 있겠다”라며 “증가 속도가 둔화하고 있고 정점이 가까워져 오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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