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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중거리 쏴도 공동 규탄 ‘외면’했던 정부...이제와 동참 왜?

중앙일보

입력

미국 등 11개국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북한의 전날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동참했다. 미 유엔대표부 웹사이트

미국 등 11개국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북한의 전날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동참했다. 미 유엔대표부 웹사이트

유엔에서 미국 주도로 11개국이 북한의 지난달 27일 준중거리 추정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주도의 대북 규탄 성명은 올해 들어 네 번째다. 그런데 지난 세 차례의 성명에는 불참했던 한국이 이번에는 참여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美 바로 옆에서 北 규탄한 韓

이번 공동성명에는 미국을 비롯해 알바니아, 호주, 브라질, 프랑스, 아일랜드, 일본, 뉴질랜드, 노르웨이, 한국, 영국이 참여했다. 공동성명 발표는 미국이 했는데, 조현 유엔대표부 대사는 성명을 읽은 제프리 드로렌티스 미 유엔대표부 특별정무담당 선임고문 바로 왼쪽에 섰다. 이처럼 유엔에서 한‧미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개적으로 북한을 규탄한 것 자체가 수년 만이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과 국방과학원이 2월 27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공정계획에 따라 중요시험을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신문은 발사체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촬영한 지구 사진도 공개했다. 뉴스1

북한 국가우주개발국과 국방과학원이 2월 27일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공정계획에 따라 중요시험을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신문은 발사체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촬영한 지구 사진도 공개했다. 뉴스1

성명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북한의 행동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며 이번에는 호주, 뉴질랜드, 한국도 합류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실제 한국이 유엔에서 올해 들어 이뤄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데 동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월 30일 중거리 미사일인 화성-12형을 발사했을 때도, 1월 초 연이어 극초음속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도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적극 동참하는 대북 규탄 성명에서 빠졌다.

정부, “대화” 이유로 계속 불참  

외교부는 그간 이에 불참한 이유에 대해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와 대화 재개를 위한 모멘텀(동력) 유지 필요성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했다”(1월 11일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는 이유를 일관되게 댔다. 북핵 위협의 당사국인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불법 행위를 규탄조차 하지 못하는 데 대한 비판이 이어져도 개의치 않는 듯한 태도였다.

그랬던 정부가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이다. 특히 유엔 차원에서 나오는 공동성명은 한국 정부보다 북한을 비판하는 수위가 높다. 북한의 지난달 27일 미사일 발사만 하더라도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는 “깊은 유감”만 표명했지만, 유엔 공동성명은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라며 수차례 비판했다.

미국 등 9개국은 지난달 4일(현지시간) 북한의 중거리미사일 화성-12형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은 동참하지 않았다. 미 유엔대표부 웹사이트

미국 등 9개국은 지난달 4일(현지시간) 북한의 중거리미사일 화성-12형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은 동참하지 않았다. 미 유엔대표부 웹사이트

성명은 또 “우리는 모든 회원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를 준수하기를 촉구한다”며 제재 유지 원칙도 거듭 강조했다. “안보리 제재는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것을(CVIA) 의무로 규정한다”면서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가 피해온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 개념이다.

갑자기 “심각성 고려했다” 돌변

그런데도 이번 성명에는 동참한 이유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발사와 이로 인한 심각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올해 들어서만 벌써 열 번째다. 외교부의 이런 입장은 ‘그러면 그간 아홉 번을 발사하는 동안에는 심각하지 않다고 봤다는 뜻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화성-12형과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도 그냥 넘기더니, 왜 이제야 대북 규탄에 동참하는지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결국 대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의 도발 재개 등으로 안보 이슈에 민감해진 여론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가하는 위협에 대한 객관적 평가보다 국내정치적 요소를 더 고려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추측대로라면, 이런 입장 변화는 정상적 행보임에도 국제사회가 보는 한국의 ‘진정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대러 ‘제재’도 한다는데…

이는 정부의 러시아 관련 대응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에 동참한다면서도 여전히 독자 제재에는 선을 긋는 모순된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경제제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적극 동참하겠다”며 전략물자의 대러 수출 금지 등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런 수출통제 조치는 이미 미국과 유럽 연합(EU) 등이 취한 독자 제재를 이행하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준수하지 않을 경우 한국 기업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분야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1일 한국의 이런 조치를 “환영한다”고 트윗을 올렸다. 그런데 “한국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적 경제 조치를 준수(to implement further economic measures)하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표현했다. 한국이 취한 조치를 ‘제재’(sanction)가 아니라 규정 준수 수준으로 본다는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앞서 미 상무부는 미국의 대러 반도체 등 수출 금지 제재에서 면제를 인정해주는 제재 동참 파트너 32개국을 발표했는데, 한국은 여기서 뺐다. 비슷한 맥락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찰스 미셸 유럽이사회 의장도 이날 트윗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선 국제 연대를 소개하며 한국을 언급했다. 다만 역시 제재라는 표현 없이 “한국이 금융 분야에서 러시아를 제한하는 조치(measures)를 발표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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