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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우크라이나 사태 국제연대, 정부 여당은 왜 동참 주저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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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8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 및 평화적 해결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우상조 기자

28일 오전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재한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 및 평화적 해결 촉구하는 내용의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우상조 기자

국제사회 고강도 제재에 한국만 소극적

높아진 위상 걸맞은 국제적 책임 다해야

‘G10 진입’ 자화자찬은 다 어디로 갔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명분 없는 전쟁 행위의 중단을 촉구하는 세계인들의 연대가 확산되고 있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화염병으로 러시아 탱크에 맞서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지지를 보내는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엊그제 서울 남산타워를 비롯, 뉴욕·파리·로마 등 지구촌의 랜드마크 건물 외벽은 우크라이나 국기 문양의 조명을 밝히며 반전 메시지를 보냈다. 심지어 자국 러시아에서까지 반전 시위가 일어났고, 정치적으로 푸틴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운동선수 등 유명인들도 동참했다. 러시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기 운용 부대에 특별 경계명령을 내렸다. 위험선을 넘나드는 러시아의 비이성적 행동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시민사회만 나선 것이 아니다. 국제적 제재는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서방국들은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축출키로 합의했다. ‘금융 핵폭탄’으로 불릴 만큼 강력한 이 제재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 때에도 꺼내들지 않았던 카드다. 미국의 리더십에 마지못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러 제재에 나서고 있다. 원유의 26%,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하는 유럽연합 국가들은 원자재 공급 차질에 따른 당장의 피해도 감수하겠다는 결연함을 보이고 있고, 일본은 액화천연가스(LNG) 비축량 방출을 약속했다. 러시아의 침공이 전쟁의 명분을 찾을 수 없는 국제법 위반인 동시에 탈냉전 후의 국제질서에 대한 심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대열에서 세계 10위의 경제강국 한국 정부만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초 외교부 고위 관리가 밝힌 대로 “제재 동참은 없다”고 했다가 침공이 현실화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동참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늘 한 박자씩 늦고 마지못해 따라가는 모양새가 역력하다. 미국 상무부가 대러 수출금지에 동참키로 한 파트너 국가 32개국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한국은 빠졌다. 국제사회가 탐탁히 여길 리 없다.

정부의 신중한 자세는 남북 철도 연결사업 등에 필요한 러시아의 협력을 고려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 정세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읽힌다. ‘균형 외교’를 표방하며 친중, 친러시아 성향을 보여온 문재인 정부의 외교 노선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이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행동에 담긴 본질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단견일 뿐이며, 대한민국이 견지해야 할 원칙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우크라이나의 초보 정치인이 러시아를 자극했다”며 인과관계를 뒤집는 발언을 했다. 표현력 부족이라고 사과했지만 이미 전 세계로 퍼져 국제적 망신을 당한 뒤였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구촌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힘이 약한 인접국의 주권을 강대국이 무력으로 위협하는 행위에 맞서는 국제사회의 연대에 우리가 동참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사실상의 G10 국가’라며 자화자찬하던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왜 이번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