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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변희수 하사 사망 1주기…“혐오·차별 반대” 광장에 모인 사람들

중앙일보

입력

“차별은 살인이다. 소수자도 함께 살자.”
27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 모인 150여명은 이렇게 외치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 행사는 1년 전 군의 강제전역 처분에 저항하다 세상을 떠난 고(故)변희수 전 하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문화제’였다. 성소수자 단체와 개인, 이들과 연대하는 시민단체 등은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잘 살아줘서 고맙습니다”라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이날 추모제 곳곳에는 하늘색 패딩과 핑크색 가운 등의 의상을 착용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참가자 일부는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깃발인 ‘트랜스 플래그’의 색(하늘·분홍·흰색)을 이날 드레스코드(복장규정)로 삼았기 때문이다. 광장 일대는 “성소수자도 사람이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모두가 안전한 나라, 차별금지법으로 만들자” “가자 평등의 나라로”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故변희수 하사 사망 1주기 추모문화제에 온 참석자들. 함민정 기자

故변희수 하사 사망 1주기 추모문화제에 온 참석자들. 함민정 기자

“용기 있던 분, 희망 주신 분” 추모 물결

왼쪽부터 드래그퀸 아티스트로 활동중인 닉네임 산사(20대)와 썸머(30대). 함민정 기자

왼쪽부터 드래그퀸 아티스트로 활동중인 닉네임 산사(20대)와 썸머(30대). 함민정 기자

하늘색과 분홍색이 섞인 안개꽃을 들고 있던 천윤화(26·여·서울 마포구)씨는 “트위터에서 보고 왔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감동받았다”며 “변 하사는 용기 있는 분이었다”고 추모했다.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추모사를 쪽지에 적거나, 헌화를 했다. ‘트랜스 플래그’를 들고 공연을 보며 손뼉을 치거나 사진을 찍으며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드래그퀸(여장하는 남성 성소수자)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한 닉네임 썸머(30대)와 닉네임 산사(20대)는 각각 분홍색과 흰색 의상을 입고 참석했다. 반짝이는 속눈썹과 형형색색의 메이크업이 이목을 끌었다. 이들은 “변 하사 이전에는 트랜스젠더 여성 군인이라는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었다. 많은 성소수자들에게 희망을 주셨던 분”이라고 했다.

신촌역 일대를 지나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추모제 공연을 바라봤다. 드래그퀸 아티스트인 ‘허리케인 김치’가 부른 이선희의 ‘인연’ 노래를 듣던 시민 김모씨(56·여)는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심한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며 울먹였다.

33개 단체 연대…공대위 “사과하고 순직 처리하라”

이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등 33개 단체로 구성돼 추모식을 주최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국방부와 육군이 변 하사와 유가족에게 사과 한마디 전하지 않았다”며 “군은 위법 처분의 책임을 인정하고 변 하사를 순직 처리하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1월 변 하사는 성전환 수술을 이유로 강제 전역 조치를 받자 이를 취소해달라며 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첫 변론을 앞둔 지난해 3월 3일 숨진 채 발견됐다. 법원은 같은 해 10월 변 하사가 군을 상대로 냈던 전역 취소 청구 소송에서 변 하사 측 손을 들어줬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차별금지법 주장도

박재현씨가 변 하사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리멤버2021' 깃발. 함민정 기자

박재현씨가 변 하사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리멤버2021' 깃발. 함민정 기자

트랜스젠더를 향한 차별과 혐오는 현재 진행형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해 2월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91명 중 384명(65.3%)이 ‘지난 12개월 동안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트랜스젠더가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린 경우는 19%였으며 전체의 57.1%는 구직 포기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날 추모제 현장에서 만난 박재현(50대·남)씨는 “성소수자들의 구직에 차별을 두지 않게 하는 사회, 자유롭고 안전한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소수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씨는 변 하사를 추모하기 위해 ‘리멤버2021’라는 깃발을 지난해 만들었다고 한다. 트랜스 플래그의 상단 좌측에 한반도 모양의 지도를 넣은 모습이다. 박씨는 “(변 하사가 사망한 뒤에도)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며 “떠난 분들은 이 땅에 남은 분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위해 먼저 가신 거라 생각한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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