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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대선후보 창피…트럼프 때처럼 이민 원할까 걱정" [단독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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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23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한 명예교수는 대선에 나선 후보들에게 "차기 대통령은 평화지향적이고 명민한 돌고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23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한 명예교수는 대선에 나선 후보들에게 "차기 대통령은 평화지향적이고 명민한 돌고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학자로 김영삼(YS)·김대중(DJ) 정부에서 각각 통일부총리와 교육부총리를 지낸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86)가 “차기 대통령은 강대국인 고래의 등쌀에 터지는 새우 대통령이 아니라 영민한 돌핀(dolphin·돌고래)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YS·DJ 정부 부총리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 #"등 터지는 새우 아닌 영민한 돌고래 필요" #"美,中,러시아 모두에 할 말 할 수 있어야" #"네거티브는 가장 천박,반드시 부메랑 맞아" #"文정권은 어버벙…히틀러 직전 독일 비슷" #"민주당 정체성 몰라,국민 인정 못 받아" #"자기들 적폐인지 모를정도로 청산 안돼"

지난 23일 진행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돌고래는 평화지향적이고, 커뮤니케이션도 잘하고, 몸은 범고래의 20분의 1밖에 안 되지만 가장 영민한 고래다. 새우 노릇하려고 눈치를 보거나, 강대국이 기침만 해도 벌벌 떨지 않아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한 명예교수는 “당장 5월에 취임하면 대만 해협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무력시위를 벌이는 식으로 충돌할 수 있다”며 “우리는 미국과의 군사동맹국이기 때문에 조인(join)하라는 요구를 받을 텐데, 선택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관련해서도 “너무 대국의식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를 베이징에 가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당당한 태도를 주문했다. 또 “100년 전 패권 강대국들이 지금은 우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거기에 값하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한 명예교수는 차기 대통령이 명심해야 할 대표적인 키워드를 묻는 질문에 “누구나 대통령이 되면 ‘역사에 남는 것은 평화, 민족끼리 싸우지 않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며 “현재의 후보들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전두환씨까지 모든 대통령들은 밀사를 보내면서까지 남북 관계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며 대선 후보들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우상조 기자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전두환씨까지 모든 대통령들은 밀사를 보내면서까지 남북 관계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며 대선 후보들에게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우상조 기자

그는 네거티브 공방으로 치닫는 현재의 대선 상황에 대해선 “후보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여야를 막론하고 창피하다”며 “(후보들 수준이) 일반 국민 수준보다도 낮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이민 가겠다고 했던 미국 국민처럼 한국이 그렇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인터뷰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명예교수 자택에서 1시간 50분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대선은 네거티브 공방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하다. 
“네거티브는 상대방이 자기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힘을 약화시키는 가장 천박한 방법이다. 이기기 위해서 상대방을 악마화 시켜야 한다. ‘도덕적으로 못된 놈이고, 지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이렇게 깎아내린다. 그런데 상대방을 악마화 시키면 반드시 부메랑 효과가 나온다. 사회과학의 철칙이다. 자기가 악마화시킨 화살이 자기한테 꽂힌다. 그러면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부끄럽다. 국민들이 다 기억하지 않나. 그래서 자충수다.”
현 정부는 소위 ‘촛불 정부’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데, 정권교체론이 높다. 
“집권당 입장에선 경합의 프레임을 잘못 짠 측면이 있다. 야당 쪽이 프레임을 짜서 집중적으로 (공격을) 한 게 효과가 나온 것이다. 역사적인 진실이 있어서 그렇게 됐다기보다 일종의 선거 전략의 우열에서 나온 것 같다. (구도가) 우수하다고 해서 반드시 도덕적으로 우위라는 말은 아니다. 네거티브를 더 잘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 부동산 값 올라가고 청년들이 앞길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야당이 정권교체론에) 불을 질렀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를 1919년 출범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 빗댔다. "그때처럼 흘러넘치는 자유의 공간이 자칫 악용되면 우리도 전체주의 쪽으로 갈 수 있다"면서다. 우상조 기자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를 1919년 출범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에 빗댔다. "그때처럼 흘러넘치는 자유의 공간이 자칫 악용되면 우리도 전체주의 쪽으로 갈 수 있다"면서다. 우상조 기자

문재인 정부는 ‘제왕적 정부’라는 비판도 받는다.
“오히려 반대다. 과거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위원장 때 정부 종합청사에 가면 주말마다 태극기 부대가 모여 대통령을 '사상이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고 소리를 지르는데도 예전과 달리 아무 대응을 하지 않더라. 문 대통령과 만났을 때 ‘왜 헌법이 보장하는 범위 안에서 합법적인 대통령의 권위도 행사 못 하냐’고 물었는데 가만히 계시더라. 그때 느낀 게, 이 정부가 히틀러가 나오기 전의 1920년대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과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어떤 점이 비슷한가.
“독일은 권위주의 문화인데, 바이마르 공화국에선 아무나 떠들도록 놔둬서 자유가 넘쳤다. 그래서 그 넘치는 자유에 싫증을 느낀 소위 독일 중산층 지식인들이 히틀러의 품에 안겼다. 히틀러는 쿠데타가 아닌 선거로 집권했다. 그래서 문 대통령께도 '자칫 잘못하다가는 극우 쪽이 이 넘치는 자유의 공간을 악용하면 우리도 전체주의로 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드렸다.”
현 정부가 오히려 너무 무르다는 것인가.
“그렇다. 이 정부를 얘기할 때 ‘어버벙하다’는 말을 많이 하던데, 그게 더 정확한 것이다. 너무 물렀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대통령 자신은 촛불 정신이 역사적으로 어떤 성격이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인식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실천했는가 하면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강경 야당이 지금 이 정부를 만만하게 보는 거다.”
정부 운영 방식은 어떻게 평가하나. 
“내가 부총리를 두 번 할 때만 해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해 ‘이런 사태가 났으니 내일 시간을 좀 내주십시오’ 하면 ‘10시에 들어와요’라고 해서 만났다. 이 정부에서 장관들이 대통령과 독대한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민주 대통령이라면 적어도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 번씩은 기자회견을 해야 하는데, 대통령의 모습은 청와대 수석 회의 때 모두 발언으로만 보인다. 문 대통령 보다 민주적인 가치관을 덜 갖고 있는 대통령도 그렇게는 안 했다.”
야당 후보는 민주당을 전체주의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그 얘길 듣고, ‘저 사람이 잘 모르는구나’ 했다. 언어 도착, 언어가 뒤집어지는 게 전체주의의 특징이다. 예컨대 조지 오웰의 『1984』에서 국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사랑성’이란 부서에서 잡아서 고문하지 않나. 어느 개인에 대한 얘기는 전혀 아니고, 태극기 부대가 가진 사고 구조에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이 시대의 징후인데 특히 백인 선진국에서 보수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급발동을 건 게 트럼프 아니냐.”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소득 불평등이 아니라, 자산 불평등이 문제"라며 "불로소득 구조를 손대야 한다"고 밝혔다. 우상조 기자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소득 불평등이 아니라, 자산 불평등이 문제"라며 "불로소득 구조를 손대야 한다"고 밝혔다. 우상조 기자

진보 학자 입장에서 민주당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승만 정부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와 친일 이데올로기가 합쳐져 무서운 주류 세력이 됐다. 그 주류세력은 한 번도 바뀌지 않고 내려왔다. 6·25 전쟁 이후 색깔논쟁의 본격화돼온 풍토 속에서 한국의 야당(진보정당)이 서야 할 자리는 중도적인 민주주의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보수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좀 더 자유를 보장하고, 못사는 사람들도 실패하면 다시 기회를 얻어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쪽이다.”
이 후보와 민주당의 역할이 부족한가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이야기하려 하면서도 제대로 못 하는 게 있다. 소득 불평등이 아니라 자산 불평등이 문제다. 내가 사는 이 동네에 5살 먹은 아이가 20억, 30억 되는 아파트를 서너채 갖고 있는데, 노력해서 성공할 사람들의 길이 없다. 불로소득 구조를 손대야 하는데, 이 후보도 거기까진 못 가고 있다. 민주당은 정체성이 뭔지 잘 모르겠다. 예전 이승만 정부 시절 야당이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고 할 때는 살신성인의 가치를 갖고 고생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정을 받았다. 지금의 민주당은 그런 인정을 받나.”
적폐 청산이 대선의 이슈가 됐다 
“적폐 세력이 자기가 적폐 세력인 줄 모를 정도로 (현 정부가) 적폐 세력을 (제대로) 청산 안 한 거다. 그러니 윤 후보가 민주당을 오히려 적폐 세력이라며 청산하겠다고 말한 것 아니겠나. 얼마나 적폐청산을 안 했길래 적폐적 유산을 갖고 있는 정당의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하겠는가 그 말이다.”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제는 국민의 수준이 올라갔다"며 "국민이 올려준 수준을 지키지 못하는 대통령은 실격돼야 한다"고 밝혔다. 우상조 기자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제는 국민의 수준이 올라갔다"며 "국민이 올려준 수준을 지키지 못하는 대통령은 실격돼야 한다"고 밝혔다. 우상조 기자

차기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나. 
“한국은 이제 민주주의가 안착한 정치 선진국이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됐고, 문화적으로도 완전히 성공적이다. 그럼 이제 이 수준에 맞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 국민보다 더 천박한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부끄럽겠나.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수치심을 느낀 미국 사람들이 캐나다 이민 가겠다고 했는데, 한국이 그렇게 될까 봐 걱정이다. 지금 후보들이 하는 말을 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창피하다. (누가 되든) 언론이 목탁 역할을 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클린턴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했는데, 어느 나라든지 먹고사는 문제가 국민들에겐 즉각적인 문제다. (그러나) 대통령 되고 나면 '역사에 남는 것은 평화다, 민족끼리 싸우지 않는 것이다'라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대통령이 밀사까지 보내 가면서 남북관계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이 가운데 남북 관계 개선에 진정한 뜻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 빼놓고 별로 없었다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은 장군 출신이지만 남북 관계가 풀렸고 오히려 내가 모시던 YS보다도 훨씬 실질적인 조치를 많이 했다. 이재명이든 윤석열이든 누가 되든 하라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했는데.
“2018년 9월 평양 방문 때 동행했다. 북한이 원하는 건 안보리 결의에 저촉 안 되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였다. 우리 대통령이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명 앞에서 박수를 받고 왔으니 ‘곧 하겠지’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워킹그룹을 만들어 실무자들이 하는 거다. 이건 대통령이 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 하나 못한다면 뭐 때문에 저 사람이 있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정말 실망했다.”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사진 오른쪽에서 네 번째)는 2019년 9월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의 수행단으로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사진 오른쪽에서 네 번째)는 2019년 9월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의 수행단으로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돌고래 대통령이 되라고 했는데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할 말은 해야 하지 않나. 
“지금 중국은 대국 의식에 빠졌다. 덩샤오핑에게 시진핑이 배워야 한다. 덩샤오핑이 열린 외교를 할 때 빛이 터져 나와도 숨기라는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를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시진핑은 빛을 막 더 비추려 하다 싸움이 붙은 거다. 우리도 그런 얘기를 베이징 가서 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대국의식 갖지 말라고. 중국, 미국, 러시아에 대해 할 말을 해야 한다.”
한때 자문했던, 이재명 후보에게 하고 싶은 말은. 
“평소 신문을 읽으면서 저 사람은 (성남시나 경기도 등) 로컬 이슈를 내셔널 이슈로 만드는 데 천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재능이지, 국가를 경영하는 리더로서의 리더십의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의 내셔널 이슈를 글로벌 이슈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지 모르겠다. 분단 상황에서 날마다 강대국 눈치를 보는 문화를 깨는 용기를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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