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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즌 완전히 접고 새출발 할 것"...아이언맨 다시 날아올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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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윤성빈은 다음 시즌 불참을 결심했다. 도약을 위해 휴식하기로 했다. 우상조 기자

윤성빈은 다음 시즌 불참을 결심했다. 도약을 위해 휴식하기로 했다. 우상조 기자

"4년 전 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이번엔 너무 조용한데요. 귀국한 뒤 일주일간 푹 쉬었어요. (웃음)"

스켈레톤 남자 국가대표 윤성빈(28·강원도청)은 베이징 겨울올림픽 마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작은 표정 변화도 없었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윤성빈은 올림픽 2연패의 기대를 안고 베이징올림픽에 나섰다. 하지만 그의 순위는 12위에 머물렀다.

낙담하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으로 윤성빈에게 연락했다.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윤성빈은 "지금 아쉬워하는 건 의미가 없다. 오히려 후련하다. 괜찮다"고 말했다. 23일 서울 서소문의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윤성빈은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밝히지 않았던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윤성빈은 평창올림픽 이후에도 줄곧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 그러다 하필 올림픽을 앞둔 올 시즌 부진에 빠졌다. 2021~22시즌 8차례 월드컵에서 단 한 번도 입상하지 못했다. 2012~13시즌 데뷔 이래 성적이 가장 나쁜 성적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컨디션 조절의 어려움을 고려해도 아쉬운 성적이었다.

평창올림픽에서 아이언맨 헬멧을 쓰고 달리는 윤성빈. [연합뉴스]

평창올림픽에서 아이언맨 헬멧을 쓰고 달리는 윤성빈. [연합뉴스]

갑작스러운 슬럼프에 윤성빈은 물론 스켈레톤 대표팀 전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윤성빈은 "예상 못 한 부진에 빠져서 처음엔 크게 당황했다. 시즌 초반엔 '지난 시즌 코로나로 훈련을 많이 못 한 후유증 때문'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는데, 돌이켜보면 핑계였다"고 밝혔다.

더 안타까운 건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윤성빈은 "코치진과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도무지 답을 못 찾겠더라. 몸 상태나 경기력에선 큰 문제가 없어 더 답답했다. 속상했지만, 장비 탓을 하고 싶진 않았다. 결국 (정상에서 멀어진)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가 베이징으로 출국하기 전 기자회견에서 "지금 성적으로는 메달 따기 어렵다"며 냉정한 자기 평가를 하자 일부 네티즌은 '해보지도 않고, 벌써 포기하는 거 아니냐'며 비난했다.

 평창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 썰매 금메달을 따낸 윤성빈은 최근까지도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 [연합뉴스]

평창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 썰매 금메달을 따낸 윤성빈은 최근까지도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 [연합뉴스]

윤성빈은 "디펜딩 챔피언인데 오죽하면 그렇게 말했겠나. 내가 평창에서 금메달을 예감했듯이 선수들은 대회 전에 이미 어느 정도 성적을 낼지 예상한다. 팬과 언론의 기대가 큰 건 알았지만, 악플 달릴까 무서워서 '희망 고문'을 할 순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 10년간 대회 출전을 앞두고 줄곧 '자신 있다'고 말해왔다. 현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데 공개 석상에서 부진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베이징올림픽을 마친 윤성빈은 당분간 썰매를 타지 않기로 했다. 그는 "돌아오는 2022~23시즌은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1년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데뷔 후 10년간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최근 번아웃(burnout·극도의 정신적 피로 상태)이 됐기 때문이다.

윤성빈은 최근 10년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국제 무대를 누볐다. 최근 번아웃 상태가 됐다. [AP=연합뉴스]

윤성빈은 최근 10년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국제 무대를 누볐다. 최근 번아웃 상태가 됐다. [AP=연합뉴스]

윤성빈은 "나는 항상 잘하고 싶고, 잘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선수였는데 최근 성적에 대한 열의가 줄었다. 제때 쉬지 못하면서 정신적 한계에 도달했다. 승부욕이 줄어든 것이 슬럼프의 요인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쉬면서 다시 경기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서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물론 윤성빈의 휴식은 일반인과는 다르다. 허벅지 둘레가 무려 65㎝인 그는 쉬는 기간 헬스장에서 살 예정이다. 윤성빈은 "몸이 약해지는 게 싫다. 집 근처 헬스장 두 군데에서 매일 3시간 정도 운동한다. 시즌 중엔 컨디션을 고려해 100%로 했다면, 지금은 아무 걱정 없이 200%로 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윤성빈은 고민 끝에 1년간 휴식하기로 했다. 다음 시즌을 불참한다. 우상조 기자

윤성빈은 고민 끝에 1년간 휴식하기로 했다. 다음 시즌을 불참한다. 우상조 기자

식단도 지킨다. 6일은 주로 닭가슴살 위주로 먹고, 하루 정도만 좋아하는 치킨 등을 마음껏 먹는다. 그는 "대한민국 닭은 내가 다 먹어치울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멋진 복귀를 위해 독하게 준비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윤성빈은 "내가 헬스장 가는 건 남들이 맛집 가는 것과 같다. 취미이자, 휴식"이라고 대답했다.

윤성빈은 베이징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아이언맨 헬멧을 쓰지 못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참가자의 모든 아이템에서 제3자의 어떤 특징적인 표식이 없어야 한다’ ‘어떤 항목도 제품⋅서비스 또는 올림픽 헌장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없다’ 등의 규정을 이유로 막았다. 결국 여분으로 챙겨둔 검은 헬멧을 써야 했다.

윤성빈은 다시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아이언맨 헬멧을 쓰고 다시 우승하는 것이 목표다. [연합뉴스]

윤성빈은 다시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아이언맨 헬멧을 쓰고 다시 우승하는 것이 목표다. [연합뉴스]

윤성빈은 수퍼히어로 영화 속 아이언맨처럼 다시 날아오르는 순간을 꿈꾼다. 그는 "운동선수는 결과로 말한다. 열심히 훈련했어도 결과가 나쁘면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다. 평창 금메달도 과거의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다시 아이언맨 헬멧을 쓰고 날아오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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