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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택배노조 불법 손 놓은 정부, 결국 법원에 호소한 기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 노조원들이 22일 오전 경기도 광주에 있는 CJ대한통운 곤지암 택배터미널 진입을 시도하면서 각 지역 터미널로 물건을 보내는 간선 차량의 출차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연합뉴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 노조원들이 22일 오전 경기도 광주에 있는 CJ대한통운 곤지암 택배터미널 진입을 시도하면서 각 지역 터미널로 물건을 보내는 간선 차량의 출차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연합뉴스]

회사 “사옥 점거로 하루 피해 10억원”

정부 부작위가 빚은 ‘행정의 사법화’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이하 택배노조)의 파업 58일째와 본사 점거 14일째를 맞은 어제, 서울 서소문동 CJ대한통운 본사 앞은 어수선했다. 건물 벽에는 ‘나와라 CJ 총수 이재현’ 등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건물 앞은 노조 천막이 차지했다. 파업을 지지하는 진보당 플래카드도 보였다. 노조는 천막 앞 좁은 통로 바닥에 CJ 이 회장의 얼굴이 인쇄된 포스터를 여럿 붙였고, 행인들은 포스터를 무심히 밟고 지나갔다. 주변 건물 벽에는 ‘택배 국유화’를 주장하는 개인 명의의 파업 지지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CJ대한통운은 노조의 본사 점거 직후 “법치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하기 힘든 수준의 폭력과 불법이 자행되는 현장”이라고 밝혔는데,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노조의 떼법 행태는 더 심해졌다. 진보당 대선후보의 선거 유세 형식을 빌려 야외집회 인원을 299명으로 제한한 방역 수칙을 피해 가는 ‘꼼수 집회’를 이어 갔다. 주중 택배 물량이 가장 많은 화요일인 지난 22일엔 CJ대한통운 수도권 택배의 핵심인 곤지암 메가허브터미널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출차를 막았다. 곤지암 허브는 하루 약 250만 개 택배를 처리하는 아시아 최대 물류센터다.

장기파업의 피해는 커졌다. 회사는 노조의 사옥 점거로 인한 손해액을 하루 10억원으로 추산했다. CJ대한통운 전체 택배기사의 8% 수준에 불과한 택배노조 파업으로 대다수의 비노조원 일감까지 줄었다. 고객이 이탈하면서 편의점 택배는 급증했다.

택배노조는 어제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과 파업 이후 처음으로 공식 대화를 했지만 큰 진전은 없었다. CJ대한통운은 “법이 인정하는 사용자인 대리점 측과 대화하겠다는 택배노조 결정에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본사 점거와 곤지암 허브터미널 운송 방해와 같은 명백한 불법·폭력 행위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회사는 본사를 점거한 택배노조를 경찰에 고소했고, 정부에 엄정한 법 집행을 여러 차례 요청했다. 심지어 노조의 방역수칙 준수 여부를 점검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급기야 회사는 적법한 단체교섭의 주체가 아닌 택배노조의 사옥 점거는 쟁의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절차와 목적의 정당성도 결여됐다며 ‘노조의 업무 방해 행위를 금지하고 퇴거를 명령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정부가 택배노조의 사옥 점거에 팔짱을 끼고 못 본 체하니 참다 못한 회사가 결국 법원에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정치 갈등을 무조건 법정으로 가져가는 ‘정치의 사법화’도 문제지만 노조 눈치나 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행정부의 부작위가 빚은 ‘행정의 사법화’도 걱정이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일그러진 삼권분립의 시대를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