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 논평이 저주의 경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팩트의 경연대회가 되어야 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은 지난 21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비공개 선대위 본부장 회의에서 내부를 향해 이같이 일갈했다.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이 위원장은 이어 “매력적인 선거운동, 국민 눈높이에 맞춘 선거운동을 해야지 ‘사교클럽’식 비난은 안 된다”며 “지나친 충성심이 오히려 선거를 망친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 캠프 대변인단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배우자 김건희 씨를 ‘무속 신앙’ 연관설로 두드리는 과정에서 뱉어낸 과격한 표현들을 지적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다른 회의 등을 통해서도 선대위 내부에 “절제력이 없는 분들은 방송에 출연해서는 안 된다” 등의 ‘막말 주의보’도 내렸다고 한다. 방송에 출연한 선대위 관계자들에게서 가수 안치환씨의 ‘마이클 잭슨을 닮은 여인’와 관련해 “(김건희 씨가) 감사해야 할 일 아니냐”(이경 대변인)는 등의 막말이 쏟아지자 나온 경계령이었다.
지난 13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윤 후보와의 단일화 조건을 제시한 것에 일부 의원들이 “안철수 후보님 또 철수하는 겁니까”(진성준 의원) 등의 조롱성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서도 “안 후보 지지층을 조금이라도 흡수해야 하는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1일 회의에선 현안 대응과 관련해서도 이 위원장이 “광주 복합쇼핑몰 문제에 우리가 대응을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할 말이 없으면 ‘검토라도 해보겠다’고 해야 했던 거 아니냐”고 따졌다고 한다. 한 회의 참석자는 “이 위원장이 ‘전남지사 시절 복합쇼핑몰을 허가해준 적이 있다’면서 캠프의 현안대응 방식이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 캠프 본부장급 의원은 23일 중앙일보에 “그간 아무도 지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 위원장이 무게감 있게 잡아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9일부터 이 후보 캠프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 해결 나선 이낙연
이 위원장의 쓴소리는 캠프 내부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난 15일 광주 서구 ‘아이파크 붕괴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유족들과 면담을 했다. 피해보상금 협상 난항에 유족들이 난색을 보이자 이 위원장은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본사를 찾아가 정몽규 회장을 만났다.
이 위원장은 “빠른 시일 내에 유가족을 만나 인간 대 인간으로 사과도 드리고 야단도 맞으시고 그분들 말씀도 경청하시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예상을 뛰어넘는 사과와 대담한 대처 이런 것이 신뢰를 회복한다”고 당부했다. 이 위원장의 충고를 들은 정 회장은 사고 42일 만인 지난 22일 유족과 보상 합의를 마쳤다. 광주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의원은 “유족들이 광주 지역의 다른 의원들의 분향소 출입은 막았지만, 이 위원장에게는 자리를 내주고 허심탄회하게 입을 열었다”고 전했다.
이낙연계도 전면…“李 당락 이낙연 앞길에도 영향”
이 위원장은 지난 21일 이 후보 찬조연설 ‘1번 타자’로 나섰다. 그는 “노를 저어보지 않은 사공에게 배를 맡길 수 없다” “망치를 든 사람을 못을 찾게 되어 있다”는 등 특유의 비유화법으로 윤 후보에 대한 이 후보의 비교 우위를 주장했다. 공식선거운동 개시 뒤 이 위원장은 광주(15일)→원주·수원(16일)→인천(17일)→광주·전남(18일)→서울(21일)→부산(22일)→서울(23일) 등 전국 곳곳을 누비며 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 위원장이 나서자 선거운동에 미온적이었던 이낙연계 인사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졌다. 지난 21일엔 심야 홍영표·박광온·김종민 의원 등 이 위원장 경선캠프 출신 인사들은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회의를 했다. 이 위원장과 가까웠던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윤 후보를 공개 지지해 파장이 일었던 날이었다. 한 참석자는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방향을 잡아서 선거운동을 하자는 결의를 모았다”고 말했다.
이낙연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총괄선대위원장 권유를 받았을 때 주변에서도 ‘이겨도 욕먹고, 지면 독박만 쓴다’는 반대가 만만찮았지만, 이 위원장은 결국 수락했다”며 “이젠 이 후보의 당선과 이 위원장의 정치적 미래가 별개의 것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치평론가 엄경영 시대전환연구소장은 “이 후보가 호남에서 85% 가까운 득표에 성공한다면 그 상당 부분이 이 위원장의 공으로 평가될 것”이라며 “그래서 이기면 1등 공신이 되고 지더라도 당 수습의 키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