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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중국읽기

왜 베이징올림픽 열릴 때마다 한중 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지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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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참 묘하다. 중국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한중 관계가 곤두박질치니 말이다. 지난 2008년 베이징에서 하계올림픽이 개최됐을 당시다. 중국인이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8월 8일 밤 8시에 맞춰 열린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은 입장 때 중국의 환대를 받지 못했다. 대만과 일본 선수단에 쏟아진 우렁찬 박수가 우리에겐 없었다. 한국과 일본이 맞붙은 야구 예선전에서 중국 관중은 일본을 열광적으로 응원했다. 양궁 결승전에선 우리 선수가 시위를 당길 때마다 중국인이 휘파람을 불며 방해했다. 중국은 왜 그랬나. 당시 우리 방송사 중 한 곳이 올림픽 리허설 장면을 먼저 보도해 개막식 김을 빼면서 중국 내 반한 감정을 촉발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한국은 한국대로 화가 났다. 폐막식 행사 중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 연회. 황제를 상징하는 용 모양의 수로가 그려진 무대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앉고, 반대편에는 올림픽에 참석한 각국 정상 등 고위급 참석자들이 자리했다. [AP=연합뉴스]

지난 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 연회. 황제를 상징하는 용 모양의 수로가 그려진 무대를 사이에 두고 왼쪽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앉고, 반대편에는 올림픽에 참석한 각국 정상 등 고위급 참석자들이 자리했다. [AP=연합뉴스]

그로부터 14년만인 2022년 베이징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또한 올해가 수교 30주년이란 말이 무색하게 한중 관계의 악재로 작용 중이다. 개막식에 등장한 한복으로 인해 중국의 한국문화 침탈 비난이 쏟아졌고, 경기 중엔 한국 쇼트트랙에 내려진 몇 차례 석연찮은 판정의 수혜자가 중국이 되며 ‘중화주의가 올림픽을 삼켰다’ ‘올림픽이 중국 체전이냐’는 거센 반발이 나왔다. 중국도 흥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복을 중국 것이라 우기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한국 선수와 응원단에 ‘구토 이모티콘’을 퍼부으며 격렬하게 맞섰다. 인류의 화합을 도모하는 스포츠 축제가 돼야 마땅할 올림픽이 또 한 번 한중 관계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나. 2008년과 올해 베이징올림픽 때 한중 충돌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두 우발적이라기보다는 감정이 누적된 결과로 보인다. 먼저 2008년의 경우다. 당시 중국 내 반한 감정을 촉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우리 방송사의 잘못이다. 한데 이는 뇌관을 건드린 것에 불과하다. 양국 간엔 이미 불을 댕기기만 하면 확 타오를 만큼 민간 정서가 극히 나빠져 있었다. 시작은 2004년 한국의 분노를 산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인에게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로 인식된다. 한국은 역사를 잃을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했고 중국은 수세에 몰렸다. 한데 이듬해 중국이 반격에 나설 명분을 만들었다.

지난 4일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치마 저고리와 댕기 머리를 등 한복 복장을 한 공연자가 개최국 국기 게양을 위해 중국의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치마 저고리와 댕기 머리를 등 한복 복장을 한 공연자가 개최국 국기 게양을 위해 중국의 오성홍기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2005년 한국이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에 등재하자 중국은 한국이 중국의 명절 단오절을 훔쳐갔다고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이후 한중 양국 간에는 전통문화의 각 분야에서 누가 원조(元祖)인가를 따지는 ‘문화 원조논쟁’이 벌어졌다. 한(韓)의학과 한(漢)의학 간의 한의(韓醫)와 중의(中醫)가 맞붙고 이어 신화(神話)와 인쇄술, 한자(漢字)와 혼천의(渾天儀) 등 문화 영역 곳곳에서 ‘내가 원조다’는 싸움이 생겼다. 이런 문화 원조논쟁이 지속하며 두 나라 국민 간 감정의 골을 깊게 하다가 마침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터져버린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얼음 석 자가 하루아침 추위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氷涷三尺非一日之寒)는 말처럼 올해 베이징동계올림픽 때 폭발한 한중 국민감정 역시 누적된 결과다. 그 뿌리는 201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THAAD) 보복으로 봐야 할 것이다. 2015년까지 밀월 관계를 구가하던 한중 관계는 2016년 1월 초 북한의 핵실험으로 파국을 맞는다. 동북아 정세를 흔드는 긴급 상황을 맞이했지만 한국 정상의 전화도 받지 않는 중국의 행태가 드러나며 겉만 번드르르 먹음직한 빛깔을 띠고 있지만, 실제 맛은 없는 빛 좋은 개살구와도 같은 한중 관계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지난 13일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계주 3000m 결승 직후 열린 플라워세리머니에서 금메달 네덜란드, 은메달 대한민국, 동메달 중국 대표팀이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뉴시스]

지난 13일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계주 3000m 결승 직후 열린 플라워세리머니에서 금메달 네덜란드, 은메달 대한민국, 동메달 중국 대표팀이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뉴시스]

6년이 되도록 풀지 않는 중국의 사드 보복에다 근년 들어 김치와 한복 등 한국 고유의 문화가 모두 중국에서 기원한 것처럼 선전하는 중국의 기막힌 ‘만물 중국 기원론’이 더해지며 한국 내 반중 감정은 역대 최고를 기록 중이다. 반면 중국은 점차 어려워지는 경제와 미국 등 서방의 압박에 대응하고자 하는 정치 논리에 따라 계속해 애국주의를 강조하면서 스스로 퇴로를 차단하는 것과 같은 위험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한중 관계가 좋아진다면 이상할 일이다.
그렇다고 한중 모두 이웃 관계를 이대로 방치해야 하나. 그건 아닐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양국 관계가 나빠지자 한중 모두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 교민은 ‘겸따마다’ 운동을 펼쳤다.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자는 캠페인을 벌였고 나름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당시 중국의 1인자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베이징올림픽이 폐막한 지 불과 13시간 만에 한국 방문에 나서는 성의를 보였다. 중국 국가주석이 재임 중 한국을 두 번씩이나 찾기는 당시 후 주석이 처음이었다. 그러한 양국의 노력을 바탕으로 한중 관계는 역사전쟁과 문화전쟁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황대헌은 지난 9일 열린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연합뉴스]

황대헌은 지난 9일 열린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연합뉴스]

하면 올해 베이징동계올림픽을 통해 확인한 한중 양국의 틈은 어떻게 메워야 하나. 누가 삽을 들 건가. 이와 관련 남자 쇼트트랙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황대헌이 지난 8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미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말이 시사하는 바 크다. “장애물이 반드시 너를 멈추게 하는 건 아니다. 벽을 만나면 돌아가거나 포기하지 말라. 어떻게 그 벽을 오를지 해결책을 찾고 그 벽을 이겨내라.” 황대헌은 이 말을 자신이 메달을 땄을 때가 아닌 실격 판정을 받았을 때 적었다. 한중 관계가 어렵다. 어렵지만 다 같이 방법 찾기에 나서야 한다. 그런 노력은 좋을 때보다 어려울 때 해야 맞지 않겠나.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 폐막식 때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선 한복 입은 여성 등장 #우발적보다는 악화한 양국 감정이 누적된 결과로 분석돼 #장애 만나면 피할 게 아니라 해법 찾자는 조던의 말 새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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