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위 높은 고백, 장르 없는 막춤…도발적 창작자들의 귀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7면

‘씽씽’의 400만 뷰, ‘범 내려온다’의 3억 뷰. 경기민요에서 출발한 이희문,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세운 기록이다. 이희문의 ‘씽씽’ 밴드는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 출연해 조회수 기록을 세웠고,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2020년 유튜브 조회수도 하나의 기록이 됐다.

무대 위의 ‘문제적 창작자’. 도발적 시도로 공연의 아이콘이 된 이들이 새 작품을 들고 돌아왔다. 18~20일 각각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 ‘강남 오아시스’와 ‘홀라당’이 그것이다.

주목받는 이들의 새 공연이 18~20일 동시에 열렸다. 민요에서 출발한 이희문의 ‘강남 오아시스’. [사진 이원아트팩토리]

주목받는 이들의 새 공연이 18~20일 동시에 열렸다. 민요에서 출발한 이희문의 ‘강남 오아시스’. [사진 이원아트팩토리]

◆‘아픈 가족사’ 열창한 이희문=“제가 생후 100일 때부터 강남에 살았어요.” 18일 저녁 S씨어터 무대에 선 이희문이 말했다. 1976년생인 그는 강남역이 논밭이었던 시절, 겨울이면 얼음을 얼려 스케이트를 타던 시대를 기억한다.

이희문은 지난 10여 년 동안 ‘힙한 국악’의 아이콘과 같았다.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이수자로서 무용가 안은미를 만난 2007년부터 새로운 장르와 결합을 시도했다. 재즈와 함께 한 ‘한국 남자’, 록음악의 ‘씽씽’ 등 행보마다 주목을 받았다.

그의 새 작품은 ‘강남 오아시스’. 전자 기타, 베이스, 드럼과 함께 무대에 섰다. 놀 줄 아는 원조 강남 키드의 화려한 기억을 기대했다면 그 예상은 틀렸다. 이희문의 강남은 쓸쓸하고 슬펐다. 그가 노래와 이야기로 털어놓은 강남의 기억 대부분은 ‘없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이희문은 여섯 살일 때 일본에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중심으로 지극히 자기 고백적인 무대를 만들어 내놨다. 아버지와 어머니 고주랑 명창의 만남을 소개하는 ‘엔벌이 타령’으로 시작해 저승으로 건너간 아버지가 돼 부르는 노래 ‘오아시스’로 끝나는 무대였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감성적인 무대였냐면, 그 예상도 틀렸다. 노래 가사는 직설적이었고 수위도 꽤 높다. 일본에서 노래로 돈을 벌어보려 했던 어머니, 비자 문제를 해결해주며 어머니를 꼬드긴 아버지, 또 아버지의 두 집 살림, 발길을 끊어버렸던 일까지 적나라하게 털어놨다. 이희문이 “아버지는 너무 무책임했어요. 나라면 그렇게 안 할 텐데. 아니 못 할 텐데”라고 말하는 순간 성이 난 드럼 소리가 들려온다. 이희문은 특유의 민요 발성으로 아버지를 원망하며 노래한다. “무책임해!”

이희문이 왜 돌연 이렇게 솔직한 자기 이야기를 하게 됐을까. 그가 청중에게 한 마지막 말에 힌트가 있다. “다 털어놓으니 후련하고 행복하네요.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꼭 하세요. 저의 오아시스는 지금, 여기입니다.” ‘강남 오아시스’는 올해 10월 중 세종문화회관에서 다시 공연될 예정이다.

주목받는 이들의 새 공연이 18~20일 동시에 열렸다.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컴퍼니 ‘홀라당’. [사진 앰비규어스컴퍼니]

주목받는 이들의 새 공연이 18~20일 동시에 열렸다.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컴퍼니 ‘홀라당’. [사진 앰비규어스컴퍼니]

◆예술춤 경계 허문 앰비규어스=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신작 ‘홀라당’에서 손잡은 파트너는 ‘일반인’이다. ‘범 내려온다’의 이날치 밴드, ‘하이어 파워(Higher Power)’의 콜드플레이 등 명성 높은 파트너들과 협업하며 독창적인 춤을 펼쳐 보였던 이들의 색다른 시도다. 공개 모집으로 모은 50여 명의 일반인이 안무, 음악·음향, 무대기술, 조명, 의상, 홍보·마케팅 등 총 6개 파트로 나눠 공연 제작 전반에 참여했다.

18일 첫 무대에 오른 19명의 무용수 중에서도 12명이 일반인이었다. 전문무용수들 사이에서 이들은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자유로운 춤사위를 선보였다. 음악 없이 “하나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고여덟” 구령에 맞춰 막춤을 추기도 했다.

심정민 무용평론가는 “대중 춤과 예술 춤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움직임”으로 규정하며 “현대무용의 대중적 수용력과 접근성을 높여준다는 측면에서 고무적인 시도”라고 평가했다.

공연 준비는 지난해 10월 시작됐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집단지성 프로젝트’를 표방하며 참가자를 모집했다. 신청한 50여 명을 모두 참여시켰다. 11월부터 줌 회의가 시작됐고, 춤 연습은 지난달 17일부터 꼬박 한 달 동안 주5일 진행했다.

‘홀라당’은 작품의 주제와 제목 등 굵직한 결정부터 모두 일반인들에게 맡겼다. 이들을 부르는 명칭도 일반인 참여자들 스스로 SNS 공개투표를 통해 ‘곶감’으로 결정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곶감으로서 이 프로젝트를 점령하겠다’는 뜻이다.

작품 제목 ‘홀라당’은 ‘홀(Whole)’ ‘라이크(Like)’ ‘당케쉔(Dankeschön)’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들었다. ‘홀로 있는 게 좋아, 감사해! 모두 함께 하는 것도 좋아, 감사해!’란 뜻을 담아 ‘개인주의의 시대, 그럼에도 함께 하는 것의 힘’이라는 주제를 보여주겠다는 포부였다. 그 의도대로 ‘홀라당’에선 군무와 독무가 무질서 속 독특한 조화를 이뤄냈다. 강렬한 이미지의 춤과 의상, 곳곳에 스며있는 유머 코드 등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정체성도 지키면서다.

김혜연 PD는 “공연 전반에 걸친 아이디어를 일반인 참여자들이 내고 전문가들이 이를 시행하는 역할을 했다”며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이 실제 구현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 재미있어하고 행복해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