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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맛보니 못 끊겠어요"…알바비 모아 '플렉스' 하는 MZ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툭’하고 걸치기만 해도 패션에 포인트가 되잖아요. 명품은 유행도 안 탄다는 말도 맞는 것 같고….”
대학생 최모(24)씨가 명품을 선호하는 이유다. 그는 최근 부모님께 졸업 선물로 명품 가방을 사 달라고 했다가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가방 대신 한 달 50만원인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명품 벨트를 사기로 했다. 그는 유튜브 일상 브이로그(Vlog) 영상을 즐겨 보면서 명품에 눈을 떴다. 최씨는 “200만원 이하 명품은 ‘큰맘 먹으면 살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명품과 파인다이닝…‘프리미엄’에 빠진 MZ세대

유튜브에서는 10대, 20대 등 MZ에게 '입문 명품백'을 추천하는 영상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유튜브 캡처]

유튜브에서는 10대, 20대 등 MZ에게 '입문 명품백'을 추천하는 영상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유튜브 캡처]

동영상 공유 플랫폼 유튜브에서는 10대와 20대를 대상으로 한 명품 관련 동영상이 급증하고 있다. ‘10대 명품 추천’이나 ‘20대 명품 입문백’을 소개하는 동영상들 중에는 100만 조회를 훌쩍 넘긴 영상도 적지 않다.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고급식당 또는 요리를 의미하는 ‘파인다이닝(fine-dining)’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11만8000개가 넘는다. 한 네티즌은 “자리를 양도받아 겨우 갈 수 있었다”며 고급 식당에서의 음식 사진을 게시했고, 수많은 ‘좋아요’ 반응을 받았다.

인스타그램에는 '파인다이닝' 키워드를 단 게시물이 11만 8000개 넘게 올라와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인스타그램에는 '파인다이닝' 키워드를 단 게시물이 11만 8000개 넘게 올라와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유튜브, SNS 등에는 명품과 파인다이닝 등 MZ세대의 ‘플렉스(FLEX·과시형 소비)’ 현상이 늘고 있다. 직장인 황모(25)씨는 “예전에는 명품이 ‘올드’하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인플루언서의 SNS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명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에 두고 있는 명품 가방을 할부로 살지 돈을 모은 뒤에 살지 고민하는 중”이라고 했다.

직장인 신모(25)씨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가기 시작한 것도 유튜브 영상을 본 뒤부터다. 신씨는 “‘이런 좋은 음식을 먹는다’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실제 가보니 음식과 서비스가 좋아 한 달에 두세 번 친구들을 모아 함께 레스토랑을 방문한다”고 했다.

‘FLEX’ 유행…있어빌리티의 시대?

3일 서울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 명품 구매를 위한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뉴스1

3일 서울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 명품 구매를 위한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뉴스1

MZ세대들의 FLEX 문화는 소득 수준에 맞지 않는 소비나 지나친 과시로 비춰지기도 한다. 정모(19)씨는 한 달 아르바이트비 60만원 중 절반이 넘는 돈을 명품 구매에 사용한다고 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물건을 가졌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면서 “한번 ‘맛’을 보니 (명품 구매를) 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정씨는 “명품 구매를 위해서 불법 스포츠토토에 손을 댄 친구도 있다”고 했다. 명품이 있어서 부유해 보이는 상황을 ‘있어빌리티(있어 보인다+어빌리티)’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3일 서울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 명품 구매를 위한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뉴스1

3일 서울시내 한 백화점 명품관 앞에 명품 구매를 위한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비대면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SNS에서는 ‘타인과의 비교’가 더 강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SNS를 통해 관계망이 확장될수록 타인과의 비교가 실시간으로 이뤄진다”며 “여기에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우리의 삶은 여전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뉘어 있다”며 “지속가능한 소비 수준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궤도에 올랐을 때 태어나 좋은 상품과 서비스에 익숙하고, SNS에 친숙하기에 영향을 더 쉽게 받는다”며 “다만 SNS에선 ‘연출’이 있을 수 있으니 타인을 지나치게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타인이나 자신을 물질주의적 가치관으로만 판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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