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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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옷고름을 입에 물고 다소곳이 웃는 새색시의 미소는 수줍어 보이면서도 정신적·육체적 모든 희열을 담고 있는 속 깊은 표현이다.
또 백제·신라의 미소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반가사유상」의 달관의 미소와 몇 해 전 광주 황룡사 터에서 발굴된 치미(지붕 끝에 세운 장식기와)에 새겨진 해맑고 소박한 할아버지의 미소는 서양의 스마일 개념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깊고도 오묘한 맛을 느끼게 한다.
한국판「생각하는 사람」(로댕의 걸작 조각품) 인「반가사유상」의 미소는 일체의 애증과 선악·미추를 털어 버린 불구부정의 웃음이며 모든 무지와 인식을 넘어선 침묵이다.
세계 어느 곳에도「반가사유상」과 같은 미소를 띤 불상이 없다. 따라서「반가사유상」이라는 불상의 웃음은 바로 한국인의 미소이며 논리이전의 우주를 상징하는 몸짓인 것이다.
웃음이란 인간의 심성과 사회환경을 반영하는 하나의 척도다. 폭소·조소·고소 등 갖가지 인간의 웃음 중에서도 미소는 본시「침묵」을 동반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미소를 지을 때의 침묵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각과 이해로 가득 찬 원만함인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미소 뒤에 깔려 있는 침묵에는 논리적 인식과 설명이전의 느낌이며 직관이라는 오묘한 뜻을 담고 있다는데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수줍은 새색시의 미소 속에는 성애를 통한 창조(출산)의 기쁨까지도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해질 무렵 부엌문을 열고 들판에서 돌아온 낭군을 향해 던지는 새색시의 미소나 밤의 잠자리를 거두고 아침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들어가며 옷고름을 지그시 깨문 채 허공을 향해 던지는 미소에는 세속을 절감한 태초이전의 본체자성이 번뜩이고 있는 것이다.
파안대소 같은 환한 웃음이 자주 터져 나오는 삶의 공동체도 그립지만 우리네 선 조들이 보여주었던 어떠한 인공이나 가식이 덧붙여지지 않은 순박한 달관의 미소를 새삼 되살려 보는「미소짓기 운동」이라도 벌였으면 싶다. <글=김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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