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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이 즐거움으로…식당을 찾는 맛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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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호 21면

외식의 역사

외식의 역사

외식의 역사
윌리엄 시트웰 지음
문희경 옮김
소소의책

2003년 2월 25일, 프랑스 부르고뉴주 소도시 솔리유의 코트도르 호텔 객실에서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남자 시신이 발견됐다. 그는 이 호텔 레스토랑 주방장인 베르나르 루아조, 프랑스에서 이름을 날리던 요리사다. 그의 레스토랑은 1977년 ‘미슐랭 가이드’ 1스타를 시작으로, 81년 2스타, 91년 3스타에 선정됐다. 이후 12년간 3스타를 유지했다. 사건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죽기 얼마 전 ‘미슐랭 가이드’와 비슷한 ‘고미요 가이드’로부터 점수 삭감 통보를 받았다. 게다가 ‘미슐랭 가이드’도 별을 하나 뺄지 고민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일 중독자였던 루아조는 “완벽주의의 덫”에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잠깐, 미슐랭 가이드가 대체 뭐길래.

미슐랭 타이어가 마케팅 목적으로 20세기 초에 만든 안내서가 ‘미슐랭 가이드’다. 당시는 도로 상태가 나빠 타이어가 자주 손상됐다. 가이드는 손상에 대비해 타이어 정비소와 병원 등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책자였다. 그러다가 1926년 정보 제공 차원에서 레스토랑에 별을 붙이기 시작했다. 정식 등급체계로 굳어진 건 1933년이다. 전 세계 요리사가 ‘미슐랭 가이드’의 별을 위해 루아조처럼 목숨까지 건다. 그런데 식당 또는 음식을 품평하는 건 ‘미슐랭 가이드’만이 아니다. 상어 스테이크에 불만을 토로한 기원전 350년 시칠리아 시인 아르케스트라토스 이래, 동서고금에 음식 평론가가 넘쳐났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소셜미디어와 블로그 등을 통해 식당과 음식을 평가한다. 그리고 누구나 외식을 하기 전 평론이나 포스팅, 블로그를 뒤져본다.

영국 스타 요리사 고든 램지. 거친 주방 분위기를 TV프로그램으로도 선보였다. [사진 소소의책]

영국 스타 요리사 고든 램지. 거친 주방 분위기를 TV프로그램으로도 선보였다. [사진 소소의책]

사람들은 왜 굳이 집을 놔두고 식당을 찾게 됐을까, 바꿔 말하면 왜 외식을 할까. 외식 장소인 식당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바로 이 책 『외식의 역사』에 담긴 내용이다. 좀 더 정확히 한다면 ‘외식의 역사’ 쪽보다는 ‘외식업의 역사’ 쪽이다. 원서는 부제가 ‘외식의 역사(A History of Eating Out)’이긴 하지만, 제목은 ‘The Restaurant(식당)’이다. 유적이나 문헌을 통해 외식의 기원을 꼬집어 끌어내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저자는 고대 폼페이(1세기) 유적에서 발견된 ‘프리무스 여관’으로 얘기를 시작한다. 술집과 식당을 겸하는 이런 여관에서 폼페이 시민뿐 아니라 여행자가 외식을 했다고 한다.

근대 이전의 외식은 오늘날처럼 ‘즐거움’을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기보다, 여행자나 노동자 등이 ‘배고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었다. 저자는 책 초반에 이런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다 중세 영국을 다룬 4장부터는 ‘즐거움’ 쪽으로 초점을 튼다. 따라서 외식보다는 식당 이야기에 집중한다. 원제가 ‘식당’인 것도 그래서인 듯하다.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다. 영국을 상징하는 선술집(pub)이 급증한 이면에 영국 국왕과 로마 교황청의 싸움이 있었다고 한다. 프렌치 파인다이닝 식당의 확산 역시 프랑스 혁명의 산물이라고 한다. 산업혁명, 식민제국주의와 얽힌 얘기도 이어진다. 후반부에서는 20세기 이후 얘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앞서 얘기한 ‘미슐랭 가이드’도 그중 하나다.

저자는 영국의 음식 잡지 편집자이면서 신문에 식당 평도 쓰고 음식 방송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한다고 한다. 이 책은 거의 영국과 프랑스 중심의 서양 이야기다. 동양 쪽은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와 이미 전 세계가 즐기는 스시(그것도 회전 초밥에 한정) 정도다. 후반부 내용이 우리가 경험한 시기, 즉 20세기 후반 이후인데도 겉도는 듯 느껴지는 건, 우리가 즐겨왔던 외식의 맥락과 거리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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