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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지역주의 약화 조짐…수도권 집중 해소 기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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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부 청사가 들어선 세종시. 김성태 기자

정부 청사가 들어선 세종시. 김성태 기자

영·호남 "밀어주기 안 해" 반응도

2030 '이해 투표' 신호탄되나

지방 일자리 방안으로 평가하자

“정권교체를 위해 무조건 찍는다? 전 그런 성향 아니에요. 정책을 좀 보고 말의 신빙성이 있는지 봐야죠. 무조건 어느 당이라는 건 2030세대에선 갈리는 것 같아요.” (부산 자갈치시장 30대 상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부턴 여기도 무조건 찍어준다는 생각은 약해졌다고 봐야죠. 국민의힘이 호남에서 20% 이상 얻겠다고 한다던데, 만약 당선될 경우를 생각하면 그게 나쁘지만은 않죠.” (광주 60대 택시 기사)

 대선 민심 취재차 찾아간 지역에서 접한 반응이다. 영·호남은 국민의힘과 민주당 계열이 강세였던 곳이라 해당 정당 후보 지지세가 강했지만, ‘묻지 마 지지’와는 다른 목소리도 꽤 들을 수 있었다. 대구에서 만난 30대는 이쪽저쪽 표를 주는 충청이 발전한 것을 보라며 자신은 일부러 민주당을 찍는다고 했다. 부산과 광주에서 만난 일부 시민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특정 정당 정치인들을 밀었더니 당선후 지역 발전을 챙기지 않더라고 지적했다.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지역주의 투표 약화 조짐은 감지된다. 정기 조사를 해온 한국갤럽이 지난달 25~27일 1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호남,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TK(대구·경북)에서만 50~60%대 지지를 받을 뿐 나머지 대부분 지역에선 큰 격차를 보이지 않았다. 양 정당의 텃밭이던 두 지역에서도 80~90%가량 몰표를 주던 때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전 지역에서 10% 안팎을 얻는 것도 다변화를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경향에는 거대 양당 후보가 본인이나 가족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는 등 비호감도가 높은 상황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정치 구도가 바뀐 측면도 있다. 역대 대선에선 민주화와 산업화를 상징하는 후보와 세력이 번갈아 당선됐다. 하지만 정치 무대를 좌지우지하던 거물급 정치인이나 특정 지역을 근거지로 내세울 만한 인물이 더이상 없다.

 이런 환경 변화는 지역 투표 대신 세대나 젠더 투표 양상을 선보이고 있다. 변수로 떠오른 2030이 대표적이다. 국내 선거에 ‘이해 투표’가 발현하는 신호일 수 있다. 이들은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가산점 등에 민감한데 비해 지역에 따른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다. 이런 유권자의 비율은 갈수록 늘게 돼 있다.

 비수도권 주민들을 만나면 지지 정당과 무관하게 한목소리로 먹고살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서울에서 부산·대구·광주까지 KTX를 타면 2시간 30분 이내에 닿는다. 이렇게 국토가 좁은데 모든 자원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니 지방 살이가 팍팍하다. 지방에 일자리가 없으니 젊은이들은 수도권에 몰린다. 구매력이 없으니 지방 번화가는 죽은 거리가 돼 간다. 부동산값 폭등도 수도권 얘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구에서 미분양 사태가 났고, 주택보급률이 107%인 광주도 인구가 주는데도 공급은 2배를 초과하고 있다.

 이런 형편이니 정치인들은 지역을 볼모로 삼으려는 시도 자체를 말아야 한다. 유권자도 특정 정당을 밀어봤자 삶이 급격히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자.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특정 지역에만 예산을 집중 투입하는 건 불가능하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코로나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 지원금도 넉넉히 주기 어려운 재정 형편이라 그럴 돈도 없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는 국토 균형 발전은 그래서 중요하다. 집값과 일자리 등 첨예한 갈등은 지방에서 정착할 수 있는 경제·사회 구조가 갖춰지면 완화할 수 있다. 각종 공방에 묻혔지만 후보들은 지역 균형 발전 방안을 내놓았다. 이재명 후보는 행정수도 등 중부권 수도권에 더해 영·호남, 제주 등 남부권을 ‘경제 수도권’으로 조성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후보는 지역 접근성 제고, 지방의 재정 권한 강화, 지역 특성화 산업 육성을 큰 방향으로 내걸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인구 감소 시군구를 합쳐 혁신도시 70개 조성 및 국회·대법원 지방 이전을, 안철수 후보는 권한과 재정 지방 이전 및 특성화 대학 육성, 17개 시도 5대 광역경제권으로 개편을 제시했다.

 지금부터라도 지방에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 후보들에게 구체적인 계획과 실현 방안을 묻고 이를 판단 근거로 삼아보면 어떨까. 전국이 한 시간 남짓 거리로 바뀌는 행정수도의 실질화와 미래 산업의 지역별 유기적 배치, 해외처럼 지방에 자리잡은 대학촌 등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을 지방 지식인들이 연합해 요구하면 어떨까. 고만고만한 후보들과 세대 변화가 쏘아올린 이해 투표 신호탄이 의외의 긍정적 효과로 이어지도록.